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어 교원 May 28. 2022

안녕 나의 여름 휴가

2018년 후에 세종학당 3학기

샘 투옌 람 리조트는 외관은 정말 예뻤지만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일단 방 안이 곰팡이도 들고 청소도 제대로 안 되어 더러웠고, 시내까지 셔틀버스가 운행이 되는데 시내로 갈 때는 15분 걸리고 돌아올 때는 다른 곳을 돌아와서 40분이 걸리는 이해가 안 가는 운행을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불편했던 것은 조식이었다. 조식을 먹는 장소가 요일마다 달랐다. 숙소에 도착한 다음 날에는 같은 샘 투옌 람 리조트인데 등급이 더 높은 리조트에 셔틀버스를 타고 가서 조식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이미 그 리조트 손님만으로도 북적북적한데 우리까지 들어가니 자리가 없었다. 자리를 찾아 계속 돌아다니다가 간신히 앉아 조식을 먹었는데 그나마도 리조트로 돌아가는 셔틀버스를 타야 해서 여유 있게 먹지 못했다. 둘째 날 조식은 내가 예약한 리조트에서 먹었는데, 정원 한가운데 식당이 있고 정원을 훤히 바라보며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냥 여기서만 조식을 먹지 왜 다른 리조트로 가서 조식을 주는지 이해가 안 갔다.


호텔 조식


셋째 날에는 전날 달랏 시내 신투어리스트 여행사에서 예약한 달랏 일일 투어를 갔다. 처음 간 곳은 바오다이 황제의 여름궁전이었다. 바오다이 황제는 베트남의 마지막 황제인데, 여름마다 이곳에 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여름 궁전은 황제가 머물던 곳답게 건물도 예쁘고 정원도 예뻤다. 건물 안은 바오다이 황제가 살았던 때의 모양을 보존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여러 장식품을 다 빼고 가구만 남겨둔 상태이다 보니 많이 허전해 보였다. 경복궁과 창덕궁을 봤을 때 넓고 웅장한 건물에 비해 주인 없는 가구 몇 개만 있는 내부는 휑해 보여 망한 왕조의 쓸쓸함이 느껴졌었는데, 그게 여름 궁전에서도 느껴지는 듯했다. 황제와 가족이 여름 궁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시절의 유산은 이제 세월의 흐른 흔적만을 담은 관광지가 되었다. 시간의 흐름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황제는 베트남이 공화국이 되면서 1950년쯤에 프랑스로 갔고 그 후에는 베트남에 평생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여름 궁전을 구경하며 한 번도 보지 못한 황제의 가족들이 이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눈앞에 그려 보았다.


바오다이 황제 가족의 여름 궁전


바오다이 황제의 여름 궁전을 구경한 후에는 달랏 성당과 다란타 폭포를 구경했다. 다란타 폭포를 구경하기 전에 달랏 산에서 내려다본 경치가 아주 멋졌다. 달랏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데, 구름이 낮게 떠 있어서 하늘과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달랏 성당, 달랏 전경, 다란타 폭포


다란타 폭포로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는 레일바이크를 이용했다. 다낭 바나힐에서도 레일바이크를 재미있게 탔었는데, 여기는 바나힐보다 더 재미있었다. 한 번 더 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폭포는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컸다.


다란타 폭포로 올라가는 레일바이크


산에서 내려와서는 점심을 먹으러 신투어리스트 옆에 있는 식당에 갔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내가 옆에 앉은 한국인 아주머니께 옆에 있는 휴지 좀 달라고 한국어로 말을 걸자 아주머니가 조금 놀라며 내가 한 마디도 안 해서 베트남 사람인 줄 아셨다고 말하셨다. 같이 여행하는 일행 중에는 그 아주머니를 포함해서 한국인이 몇 명 있었는데, 그분들은 계속 말을 했지만 나는 여행하는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말을 안 한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없어서 안 한 것이지만, 학기 동안 수업하느라 목을 많이 썼으니 휴가 동안에는 목을 잘 안 쓰고 싶어서 말을 아낀 것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한국말을 하자 깜짝 놀라는 아주머니를 보니 살짝 재미있기도 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아주 큰 꽃집을 구경한 후 달랏에서 유명한 꽃 정원에 가는 일정이었지만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정원은 가지 못했다. 여기 오기 전에 달랏이 꽃 정원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바오다이 여름궁전과 같이 그곳을 꼭 가 보고 싶었는데 가지 못해서 아쉬웠다. 대신 자수 박물관에 가게 되었다. 자수 박물관에서 자수로 만든 작품도 구경하고 직접 작품을 만드는 것도 구경했는데, 자수만으로 그림보다 사실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후에에도 자수 박물관이 있어서 몇 번 구경한 적이 있는데, 구경할 때마다 새롭고 신기했었다.


마지막으로는 달랏 기차역에 갔다.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된 기차역이라고 한다. 기차를 배경으로 내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찍어서 그냥 포기했다. 기차역도 예뻤고 기차역 안 커피숍의 커피 향도 너무 좋았다. 커피 향에 이끌려 커피숍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왔고, 결국 예정보다 이른 3시 반에 투어가 끝났다. 그래도 달랏을 충분히 구경한 것 같아 만족했다. 달랏 시내 카페 겸 식당에서 음료와 스테이크를 먹으며 호텔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우산이 없었기에 제발 셔틀버스를 탈 시간이 될 때까지 비가 그치기를 바랐지만 달랏 날씨는 내 마음을 몰라줬다. 식당에서 셔틀버스를 타는 곳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였지만 천둥까지 동반한 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갔다. 결국 달랏에서의 마지막 밤을 비와 천둥번개와 같이 보내야 했다.


여행 마지막 날에는 후에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다시 호찌민으로 가야 했다. 호찌민에서 달랏으로 올 때는 비행기를 타고 왔지만, 다시 호찌민으로 갈 때는 슬리핑 버스를 타고 갔다. 베트남의 슬리핑 버스를 체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좀 지저분할 것 같다는 예상과 달리 슬리핑 버스는 깨끗하고 편해 보였다. 하지만 버스에 타고 편하다는 생각은 바로 떨쳐버렸다. 세상에, 무슨 경적을 1분에 한 번 울리는 것이다. 슬리핑 버스인데 경적 소리 때문에 잘 수가 없었다. 도대체 경적을 왜 이렇게 많이 울리는 것일까.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가야 해서 좀 자고 싶은데 이어폰도 없고, 스트레스만 잔뜩 쌓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네이버 베트남 여행 카페에 슬리핑 버스는 원래 이렇게 경적을 많이 울리는지, 왜 그러는지 물어보는 글을 올리자 오토바이들 때문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졸음운전을 하는 오토바이들을 깨우기 위해서, 그리고 버스라서 오토바이를 잘 못 보기 때문에 오토바이 보고 알아서 피해 가라는 의미로 경적을 울린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경적 소리 때문에 다시는 베트남에서 슬리핑 버스를 타고 싶지 않아 졌다.


슬리핑 버스


호찌민에서 후에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호찌민이 멀어져 갈수록 아쉬운 마음이 커져 갔다. 즐길 만큼 즐겼지만 베트남에서 보내는 마지막 휴가였기 때문이다. 이제 후에로 돌아가면 3학기 개강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학기가 베트남에서, 후에 세종학당에서 나의 마지막 학기였다. 아직 후에에서의 시간은 4개월이나 남았지만 벌써부터 떠나는 것을 생각하면 슬퍼졌다. 정이 너무 많이 들었다. 떠나기 싫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나의 계약 기간이 올해 말까지인 걸. 떠날 때 떠나더라도 마지막 학기를 후회 없이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후에로 돌아왔다.


즐거웠던 나의 여름휴가, 안녕!


매거진의 이전글 방학 시작! 호찌민 달랏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