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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Jun 03. 2022

마지막 학기를 시작하며

2018년 후에 세종학당 3학기

2018년 9월, 여행을 다녀와서 3학기 개강을 준비하며 교실을 좀 꾸며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이 너무 그냥 일반 교실 같아 보여서 뭔가 '한국어 교실'이라는 특색을 좀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후에 세종학당은 후에대학교 국제교류처 건물을 같이 쓰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꾸밀 수가 없었다. 후에 세종학당 전용 교실로 쓰는 교실 1,2만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그나마도 붙였다 떼도 손상이 안 가는 창문에만 뭔가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전에 한국에 갔다 왔을 때 한국에서 사 온 한복 접기 세트를 모두 접어서 붙였다. 문화 수업을 할 때 썼던 남녀 평상복 한복도 있었고, 용포와 관복, 구장복, 여자 당의도 다 있는 세트였다. 한복 접기 세트 구성도 좋았고 설명도 잘 되어 있어서 만들기 어렵지 않았고 재미있었다. 이렇게 만든 한복 종이접기 세트와 예전에 파견 오기 전 반크에서 받은 한국 홍보 자료 중 한국 지도를 사무실과 교실 입구 창문에 붙였다.

('VANK (prkorea.com)' 여기에 회원 가입을 하고 한국 홍보 자료를 신청하면 받을 수 있다. 코이카 파견 때도 세종학당 파견 때도 신청했다. 수업 시간에도 활용하고 학생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기도 했다.)



개강 전까지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그렇다고 한가한 것은 아니었다. 후에 세종학당의 제일 큰 행사, 베트남 전국 글짓기 대회 및 문화행사 준비 때문이다. 이번에도 한글날 즈음에 행사를 열 예정이었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 각 학당에 공문을 보내고 참가 인원을 파악하는 등 준비를 했었고 우리 학당도 글짓기 예선전을 해서 대표 학생을 선발했다. 이번에는 글짓기 대회 겸 K-POP 대회도 할 예정이었다. 각 학당에서 글짓기 대회와 K-POP 본선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인솔 교사와 같이 후에로 온다. 글짓기 대회는 학당 별로 예선 대회를 해서 초급, 중급 대표 학생을 뽑고, K-POP 대회는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의 조회수와 좋아요 수대로 본선 진출자를 뽑는 방식이었다.


나와 김 선생님은 방학에 글짓기 대회 예선을 하고 대표 학생을 뽑아 글짓기 연습을 시켰다. 대회 주제가 무엇일지는 우리도 몰랐기에, 매주 학생들에게 주제를 주고 글을 써 오게 했다. 중급 학생들에게는 '한국과 베트남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 '앞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누구나 알고 있는 베트남, 나만 알고 있는 베트남' 등 조금 수준이 있는 주제로 연습을 시켰고, 초급 학생들에게는 '나의 꿈', '내가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 '내가 좋아하는 한국 문화', '여행 경험' 등 비교적 쉬운 주제를 주었다. 학생들이 원고지에 글을 써 오면 틀린 것을 수정해 주고 다시 쓰게 했다. 마지막에는 실전처럼 연습해 보기도 했다.


또 행사를 도와줄 자원봉사자들을 뽑았는데,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면접을 봐야 했다. 한국인 선생님들을 도와줘야 할 때가 많아 중급 학생들 위주로 뽑으려고 했는데 초급 학생들도 많이 지원을 해서 조금 놀랐다. 지원 이유를 물어보니 한국 관련 행사에 참여하고 싶고 한국인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라고 했다.


이번에는 작년까지와는 다르게 각 세종학당 인솔 교사로 오시는 교원들과 간담회도 새로 하기로 했다. 작년에는 내가 글짓기 대회 감독을 맡았는데, 이번에는 김 선생님이 대회 감독을 하고 글짓기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내가 교원 간담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간담회 진행을 맡은 것은 처음이라 잘할 수 있을까 조금 긴장이 되었다. 그렇게 대회 준비를 하면서, 나에게 있어 후에 세종학당에서의 마지막 학기인 2018년 3학기를 시작했다.

 

개강식을 시작하기 전


그런데 개강하자마자 교통사고를 당했다. 보행자 신호등 초록불에 길을 건너고 있었는데, 코너에서 두 명이 탄 오토바이가 나를 향해 슝 하고 왔다. 나는 오토바이가 나를 알아서 피할 수 있게 그 자리에 멈췄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내 앞 뒤로 오토바이들이 피할 곳 없이 지나가고 있어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보행자 신호등이 초록불이었지만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들에게 신호등은 그냥 참고용일 뿐이다.) 그런데 그 오토바이가 속도를 줄이지도, 방향을 틀지도 않고 그대로 나한테 오는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거리였고, 그래서 나를 피해서 가라고 멈췄던 것인데 운전자는 피할 수 없는 거리가 되어서야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며 핸들을 급하게 꺾었다. 나는 오토바이가 나를 향해 올 때 머리가 백지장이 되어서 몸이 굳어 버려 피할 수 없었다. 천만 다행히도, 운전자가 핸들을 꺾어서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았고 팔만 핸들과 사이드미러에 맞았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보다 더 걱정됐던 건 오토바이였다. 오토바이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쌩쌩 달리는 곳에서 오토바이가 쓰러졌고, 사람은 두 명이 타고 있었다. 무서웠다. '저 두 사람이 크게 잘못되면 어쩌지?' 싶었다. 다행히도 두 사람은 바로 일어났고 2차 사고도 나지 않았다. 오토바이는 사이드미러인지 무엇인지가 좀 깨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운전은 가능해 보였다. 두 사람은 일어나서 나를 힐끔 보며 주춤거리더니 곧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길을 갔다.


2차 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하자마자 통증이 느껴졌다. 팔이 부러진 적은 없지만, 이거 팔이 부러진 거 아닌가 싶은 통증이었다. '병원에 가 봐야 하나? 지금 일요일이고 밤이라 응급실에 가야 할 텐데 운영요원 선생님한테 도와달라고 할까? 아니 지금 연락하는 건 너무 죄송한데 그냥 내일까지 참아 볼까? 그런데 참다가 후유증 심하게 오는 거 아냐?' 갖가지 생각이 들었고 화도 났다. 가해자가 쓰러지고 일어났을 때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죄책감과 혹시 신고당하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담긴 듯한 눈이었다. 그런데도 나한테 한 마디 사과도 없이 갔다. 아니, 도망간 것이다. 그쪽 잘못이 100%였고 사고를 본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니 본인들도 다치고 오토바이도 망가졌는데 재빨리 갔지. 사과는 하고 갔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외국인이라 말이 안 통할 거라 생각했어도 최소한 시도는 했어야 하지 않나? 아픈 팔을 부여잡고 일단 집으로 왔다. 너무 아팠지만 오늘은 파스와 냉찜질, 진통제로 어떻게든 버텨 보고 내일까지 아프면 아침에 바로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큰 문제가 아니길, 그리고 제발 더 큰 후유증이 없길 바랐다. 다행히 통증은 다음 날부터 서서히 가라앉았고 피멍이 군데군데 크게 든 것 말고는 다른 문제는 없었다.


베트남에서 흘러가는 시간이 하루하루가 아쉬우면서도 이런 일을 당하니 빨리 귀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등은 장식이고 갑자기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오토바이 등 혼란한 베트남의 교통 문제 말고도, 언어가 안 통하는 문제 믿음이 안 가는 현지 병원 시설 문제로 다쳐서 아프고 무서운데도 병원에 가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게 서러웠다. 아무리 깨끗하게 살아도 1주일에 최소 한 번은 불쑥불쑥 찾아보는 검지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를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후에를 조금 더 즐기고 싶은데, 가끔은 한국으로 가고 싶다. 이중적인 마음으로 시작한 마지막 학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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