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학기에 내가 맡은 수업은 세종한국어4, 세종한국어 회화3, 비즈니스 한국어1 반이었다. 다른 교재는 이미 수업을 해 봤었지만 비즈니스는 처음이기에 수업 준비에 신경을 제일 많이 썼다. 교재인 <바로 배워 바로 쓰는 비즈니스 한국어> 교재는 국외 한국 회사에서 한국인과 일하는 학습자들을 위한 교재로, 회사에서 각 상황별로 많이 쓰이는 어휘와 어법을 정규 교재인 <세종한국어>와 연계해서 알려준다. 후에 세종학당 때, 베트남에서의 한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학생들에게 한국의 회사 문화와 한국 회사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을 가르칠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세종학당의 정규 교재인 <세종한국어>는 이런 부분이 많이 나오지 않는 것이 항상 아쉬웠다. 그런데 이런 아쉬운 점을 <비즈니스 한국어>에서 보완해 줬다. 그리고 회사에서의 호칭 문화 등 한국 회사를 다니는 외국인들이 꼭 알아야 하는 문화를 알려주기도 했다.
<바로 배워 바로 쓰는 비즈니스 한국어1>
1권은 초급 단계, 2권은 초중급 단계이고, 각 단원의 목표 어휘와 문법이 어렵지 않아 학생들이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그래도 비즈니스라서 좀 딱딱할 때도 있었고 학생들이 어려워할 때도 있었지만 재미있는 순간들도 많았다. <비즈니스 한국어1> 3과에서는 '부서와 직급'을 배우는데, 회사의 직급 체계를 배운 후부터 학생들과 상황극을 할 때는 웃음 포인트가 있었다. 그건 내가 부하 직원이 되고 학생들이 상사가 되는 것이었다.
<바로 배워 바로 쓰는 비즈니스 한국어1> 3과 연습 문제
"최 주임, 회의실을 예약해 줄래요?"
"네, 알겠습니다 린 부장님!"
내가 진짜 부하 직원이 된 것처럼 학생들에게 깍듯하게 말하면 다 같이 웃음이 터졌다. 가끔 대화 중에 승진을 하기도 했다.
"최 주임, 출장 계획서는 오늘까지 제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부장님."
"그럼 수고해요, 최 대리."
"어? 부장님 저 방금 주임에서 대리로 승진했습니까?"
"네? 아, 네! 승진했어요. 축하합니다!"
"우와 감사합니다 부장님!"
<세종한국어> 책도 그렇지만 <비즈니스 한국어> 책도 연습 문제가 많이 없었다. 익힘책이 있긴 했지만 문제가 많이 없고 그마나도 항상 숙제로 내 줬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풀 수 있는 문제를 더 만들어서 보여 줬다.
추가로 만든 문제
다른 반 학생들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이었지만, 비즈니스 학생들은 거의 회사 생활을 해서 그런지 더 열심히 공부했다. 1~2주에 한 번은 작문 숙제가 있었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숙제를 보고 흐뭇했던 적이 많다. 교재에 있는 글 보다 길고 더 다양한 표현을 쓰곤 했기 때문이다.
학생이 LG전자에서 일한다고 가정하고 쓴 글
그런데 비즈니스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고민한 것이 있다. 학생들에게 한국 회사 문화의 부정적인 면도 알려줘야 하나 하는 것이었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된 이유는 2017년 후에 세종학당에서의 일 때문이었다. 2017년 8월 어느 날 저녁, 내가 가르쳤던 떰(가명)이라는 학생이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저 선생님한테 물어볼 게 있어요."
"네. 무슨 일이에요, 떰 씨?"
"저는 지금 한국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어제, 우리는 같이 식당에 갔어요. 식사 같이 하면서 많은 한국 사람, 베트남 사람이 맥주와 술을 마셨어요. 하지만 저는 술을 못 마셔요. 그래서 안 마셨어요. 저는 이것은 보통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우리 사장님은 안 좋은 것 같은데요. 혹시 저는 실수를 했어요? 좀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학생이 보낸 메시지를 거의 그대로 옮김)
이 메시지를 받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이가 많은 한국 사람들 중에서는 회식할 때 술을 싫어해도 윗사람(사장님, 부장님...)이 마시라고 하면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좀 있어요. 떰 씨 사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다음에는 술을 마시면 아파서 못 마신다고 하세요."
"네 알겠어요. 저는 그냥 조금 슬퍼요. 생각 많이 했어요."
내가 한 대답이 좋은 대답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 사회 생활을 할 때, 특히 회사 생활을 할 때는 아무리 술을 못 마셔도 다 같이 마실 때 술을 거절하는 것은 안 좋게 보지만, 베트남에서는 술을 못 마시는 사람에게 억지로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떰 씨도 뭐가 문제인지 몰랐던 것이다. 비즈니스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한국 회사에서 다니거나, 앞으로 일할 생각이 있는 학생들이다. 술을 억지로 권하는 문화는 바뀌어야 할 문화지만, 한국 회사라는 사회에서 한국인들과 같이 일을 하려면 좋든 안 좋든 그 사회의 문화를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교재에서는 이런 내용까지는 다루지 않았고 나도 교재에 있는 내용만 가르쳤다. 하지만 비즈니스 한국어를 가르칠 때 이런 부정적인 문화도 가르쳐야 하는지는 아직까지 고민되는 문제이다. 요즘에는 많이 개선되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도 이런 분위기의 회사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