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나중에 가도 괜찮아
2021년 문화원 세종학당 1학기
"여러분, 오늘은 우리 세종한국어4 마지막 수업이에요. 그동안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어땠어요? '얼마나 -는지/(으)ㄴ지 모르다'를 사용해서 대답하세요."
"한국어 공부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몰라요."
"아... 어려웠어요? 조금 슬프네요."
성취도 평가를 한 주 앞둔 <세종한국어4> 1학기 마지막 수업. 마지막 단원 14과의 목표 문법인 '얼마나 -는지/(으)ㄴ지 모르다'를 복습하는데, 학생의 대답을 듣고 내가 슬픈 표정을 연기하며 말했다. 그러자 학생들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아니에요 선생님. 조금, 조오금 어려웠어요!"
"저는 얼마나 어려웠는지 몰라요. 그런데 또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몰라요."
"한국어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몰라요."
"맞아요. 여러분은 4권을 공부하면서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그렇죠? 이제 다음 주에 시험을 볼 거예요. 시험 준비 열심히 하고 모두 합격하세요!"
세종학당은 학기가 끝날 때마다 성취도 평가를 한다. 합격하면 다음 단계로 진급, 못하면 유급이다. 원래대로라면 재단에서 1년에 두 번 배부하는 성취도 평가 문제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평가를 해야 한다. 그런데 베트남에 있는 이 선생님은 학당에서 평가를 진행할 수 있지만 나와 윤 선생님은 한국에 있어서 온라인으로 시험을 봐야 하는 게 문제였다. 읽기와 듣기 문제는 어떻게 보여 주고 쉽게 커닝할 수 있는 문제는 어떻게 예방해야 할까. 또 학당에서 시험을 본다고 해도 코로나에 걸려 학당에 오지 못하는 학생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었다.
그런데 2021년 5월 말부터 베트남에서 코로나19 문제가 심해지더니, 성취도 평가를 보는 6월 말 7월 초에는 하노이도 대면 수업을 못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이번 학기는 말하기와 쓰기 평가만 보기로 했다. 원래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모두 평가해야 하지만, 세종학당재단에서도 코로나 시국이라 학당 사정에 맞춰서 성취도 평가를 하는 것을 인정해 준다고 들었다.
말하기 평가는 1:1 방식이다. 줌(ZOOM)에 대기실 기능을 걸어 놓고 차례대로 한 명씩 회의실로 들어와서 시험을 보게 했다. 뒷 차례 학생에게 문제를 알려 주면 안 된다, 커닝하지 말라고 했지만 과연 제대로 지켰을까? 버벅거리며 대답을 끌면서 눈길은 계속 카메라가 아닌 어딘가만 뚫어지게 보고 있는 학생을 보면 미안하지만 믿음이 가질 않았다. 쓰기는 PPT로 문제를 보여 주고 답안지에 20분 동안 답을 쓰게 했는데, 카메라 렌즈를 책상과 학생이 쓰고 있는 모습이 다 보이게 조절하게 했다. 하지만 학생이 있는 장소를 모두 볼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렌즈 사각지대 어딘가 있을 커닝 페이퍼를 잡아낼 수 없었다. 어떤 학생은 자기 얼굴과 책상이 화면에 모두 보였지만, 어떤 학생은 책상에서 쓰는 모습이 다 보이는 대신 학생의 얼굴이 안 보였다. 학생들을 믿는 선생이 되어야 하는데 평가 때만큼은 온전히 믿을 수가 없다. 그래도 평가는 대부분 학생의 원래 실력대로 나왔고,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본 성취도 평가가 무사히 끝났다. 성취도 평가가 끝나고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다음 학기에 선생님은 베트남에 올 거예요?"
"글쎄요,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저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베트남도 코로나가 위험해요. 선생님 조심하세요."
"고마워요. 여러분도 코로나 조심하고 건강하세요."
2학기에는 하노이에 가서 수업을 할 수 있을까? 이대로라면 2021년은 한국에서 온라인으로만 근무를 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게 안 좋지는 않았다. 2021년 초에 베트남은 코로나19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도 상관없고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베트남으로 가고 싶었는데 비자 문제 때문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조금 답답했다. 나를 빼고 대부분의 베트남 파견 교원은 현지에 간 상황이라서 더 그랬다. 그런데 2021년 여름에는 베트남에 일일 감염자가 10,000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남부, 특히 호찌민 쪽이 대부분이었지만 하노이 감염자도 점점 많아졌다. 모두가 격리되었고, 밖에 나가려면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했다. 나는 베트남이 너무 좋아서 가고 싶은 마음보다는 학생들과 직접 만나서 대면 수업을 하며 직접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는데, 어차피 대면 수업을 못한다면 베트남에 간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겠나 싶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건강과 안전이었기에 베트남에 가지 못하는 것은 이때 와서는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베트남은 나중에 가도 된다. 그냥 하루빨리 베트남도 한국도 코로나19가 잠잠해지기를 바랐다.
성취도 평가가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이라도 '특별학기'로 수업을 운영한다. 이 선생님은 쓰기 수업을, 나는 <여행한국어> 수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도 <비즈니스 한국어>처럼 전에 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수업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세종학당에서 수업하는 게 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하는 것보다 좋다. 대학교 한국어학당은 기관에서 정해 준 수업만 하지만, 세종학당에서는 과목 선택의 자유가 있고, 이렇게 새로운 수업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학당마다 차이가 있다. 어떤 학당에서는 교원이 수업을 선택할 수 없다고 하는데, 후에와 베트남 문화원 세종학당은 수업에 관련해서는 교원이 결정하거나 교원의 의견을 반영해 준다.
여행한국어는 화/목 오후 2~4시 반과 저녁 6~8시 반으로 나누고 각 반 10명만 받기로 했는데, 내 선택을 곧 후회했다. 신청 시작 당일에만 17명이 신청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대부분 저녁반을 원해서 저녁반 인원이 금방 찼다. 화/목에 시간이 안 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느냐 문의해서 뒤늦게 수/금 반도 열까 했었는데, 이미 공지가 다 나간 후라 바꾸지 못했다. 다음 특별학기는 반과 인원 수는 더 늘려야 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