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어 교원 Nov 07. 2022

코로나19 이후 첫 대면 행사

2022년 문화원 세종학당 1학기

7월 초가 되자 바빠졌다. 매년 하는 세종학당 말하기 쓰기 · 대회도 있었고, 성취도 평가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취도 평가는 오프라인으로 해서 작년보다는 편했다. 작년에는 온라인으로 해서 세종학당재단에서 배부한 읽기 듣기 시험지를 구글 설문지로 다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말하기 · 쓰기 대회는 코로나19 이후 문화원에서 하는 첫 대면 행사라서 신경이 많이 쓰였다.


먼저 쓰기 대회를 진행했다. 쓰기 대회는 학생들이 문화원에 와서 글을 쓰고 제출하고 가게 했는데, 회사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일정을 고려해 날짜를 다르게 해서 두 번 진행했다. 결과 발표는 말하기 대회 때 같이 했다.


말하기 대회는 성취도 평가가 끝나고 토요일에 했다. 나도 그렇고, 김 선생님과 원 선생님도 말하기 대회를 그냥 대회가 아니라 학생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행사로 하고 싶었다. 작년에는 비대면으로 해서 딱 말하기 대회만 한 것이 좀 아쉬웠다. 후에 세종학당 때는 이런 대회를 하면 k-pop 경연 대회나 장기자랑도 같이 하고 다과도 나눠 먹어서 분위기가 즐거웠는데 말이다. 사실 원래 이번 말하기 대회도 비대면으로 할 예정이었지만, 나와 김 선생님이 대면 행사로 하자는 의견을 내서 바뀐 것이다. 우리는 말하기 대회를 어떻게 진행할지 계속 의논했다.


"말하기 대회 때 문화 행사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부스를 설치하는 건 어때요? 한 부스에서는 공기놀이를 하고, 다른 데서는 투호 던지기 하고..."

"좋네요! 그럼 담당은 어떻게 할까요? 제가 두 부스 다 담당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아, 저는 사회를 봐야 하니까 부스 담당은 못하겠네요."

"작년 수료식처럼 퀴즈 대회를 하는 건 어떨까요?"

"퀴즈 대회는 말하기 대회 끝나고 심사위원들이 심사할 때 하면 좋겠어요."

"그럼 퀴즈 대회 경품하고 문화 행사 경품을 뭘로 할지 짱 선생님한테 물어봐야겠네요."


계속 논의한 결과, 말하기 대회 전에 투호 놀이를 하고 한 번이라도 성공한 학생에게 상품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말하기 대회가 끝나고 심사위원들의 점수를 계산하는 동안 투호 놀이를 한 번 더 하고 퀴즈 대회도 하기로 했다. 대회 전체 진행은 김 선생님이, 투호 놀이와 퀴즈 진행은 내가 하기로 했다.


그런데 성취도 평가 시작 이틀 전 일요일, 감기 기운이 좀 올랐다. 나는 일요일과 월요일이 휴일인데 쉬는 닐 아파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혹시 몰라 자가 키트로 코로나19 검사를 해 보니 음성이었다. 그냥 지나가는 몸살이겠거니 하고 감기약을 먹었지만 다음 날인 월요일에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미딩에 있는 한인 병원에 갔다. 진료 전에 신속항원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제발 코로나19가 아니기를 빌었다. 바로 내일 대면으로 성취도 평가를 봐야 하는데 코로나 양성이 뜨면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병원으로 가면서 병 때문이 아니라 '만약 내가 코로나19면 성취도 평가는 어떻게 해야 되지?' 하는 생각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20분 동안 정말 힘들었다. '양성일까? 양성이면 어떡하지? 성취도 평가는 어쩌고 말하기 대회는? 내가 대면으로 하자고 그래서 대면으로 바뀐 건데!'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지 몸도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병원에 오기 전에는 그래도 가벼운 몸살 정도였는데, 온몸이 쑤시고 머리가 너무 지끈거렸다.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다.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체온은 안 괜찮았다. 38.5도라니! 코로나 시국에 하루에도 몇 번이나 체온 검사를 하면서 37.5가 넘는 숫자를 본 적이 없는데.


비틀비틀 거리며 진료실로 들어가 상담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베트남 사람이었고 옆에 통역을 해 주시는 분이 계셨다. 의사 선생님도, 통역사 분도 아주 친절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 주셨다. 인후염이며 약 먹으면 괜찮아진다고, 염증이 좀 많으니 찬 것 먹지 말고 무리하지 말고 푹 쉬라고 하셨다.


진료비는 약값까지 해서 한국 돈으로 10만 원 정도가 나왔다. 겨우 인후염에 10만 원이라니! 외국인이라 건강보험이 전혀 적용되지 않아서 그렇다. 새삼 건강보험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여행자 보험에 가입되어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어서 망정이지, 보험도 없다면 외국에서는 아파도 자력으로 이겨내야 될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진료를 받고 나와서 한인 마트인 케이마트(K-MART)에 들러 내 기운을 북돋아 줄 고기와 학생들에게 줄 떡을 샀다. 세종 4 수업 때 '떡'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학생들에게 떡을 먹어본 적이 있느냐고 했는데, 남편이 한국 사람인 학생을 외하고는 떡을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해서 사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냥 병원을 나오자마자 집에 갈 걸 그랬다. 정말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이 너무너무 힘들었다. 하필이면 퇴근 시간이라 길이 막혀서 그랬다. 옆에 서 있는 사람들이 나를 계속 힐긋힐긋 봤다. '저 사람 괜찮나?' 하는 표정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약을 먹고 소파에 누웠다. 세상이 빙빙 돌아가는 것 같았고 온몸이 녹는 거 같았다. 나는 감기약을 먹으면 깊게 잠을 자지 못하는데, 그날도 역시 밤에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열이 계속 안 떨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 많이 됐는데 다행히도 다음날 아침부터 기력이 서서히 돌아왔다.


성취도 평가가 끝나고 각 반 학생들과 회식을 했다. 7권 학생들과 회식할 때, 한국 회사에 다니는 한 학생이 나한테 실수로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한 학생이 웃으면서 이렇게 받아쳤다.


"선생님은 우리한테 월급처럼 지식을 주시니, 사장님 맞네요!"


하하하 나는 지식을 주는 사장님이다!


학생들과 회식


드디어 말하기 대회 날이 되었다. 후에 세종학당 때는 대회를 하면 운영요원 선생님과 파견 교원이 좌석과 책상 배치부터 꾸미는 것까지 다 하고 간식도 직접 사러 다녔는데, 문화원은 직원들이 거의 다 해 주신다. 우리 교원은 책상과 의자 놓는 것만 같이 하는 정도였다. 간식도 업체를 불러서 과일과 차, 과자를 모두 세팅했다. 덕분에 편하게 대회 준비를 했다. 심사는 나와 김 선생님, 원 선생님, 그리고 외부 심사 위원 한 분이 봤다. 원 선생님은 한국에서 원격으로 심사를 보셔서 내 태블릿 PC로 학생이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김 선생님의 핸드폰을 발표 단상에 올려놓아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심사를 보셨다. 학생들이 준비한 발표를 마치면 심사위원들이 질문을 두 개 했다. 말하기 대회 주제는 세종학당재단에서 정해 주는데, 이번에는 <비슷한 듯 다른 듯 한국어, 한국문화>와 <10년 후 나의 모습, 내 미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거였다. 투호 놀이가 끝나고 말하기 대회를 시작했다.


"한국의 추석에 대해 발표를 잘해 줬는데요, 베트남의 추석과 한국의 추석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말해 줄 수 있어요?"

"베트남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재미있게 들었어요. 발표를 들으면서 베트남어 공부를 하는 느낌이었어요. 저도 베트남어를 배우고 있는데, 가장 어려운 건 발음인 것 같아요. 베트남어 발음을 잘하려면 어떻게 연습해야 되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10년 후 OO 씨의 미래에 대해서 발표를 했는데, 30년 후에 OO 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혹시 생각해 본 적 있어요?"


학생들은 떨면서도 준비한 발표를 잘 마쳤다. 가장 인상 깊었던 발표는 8권 학생 마이 씨의 발표였다. 마이 씨는 베트남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마치 베트남어 수업을 하듯이 발표했는데, 준비한 PPT도 정말 베트남어 수업처럼 준비했다.


"지금부터 베트남어 수업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화면을 보세요. '사막'. 이 단어를 베트남어로 뭐라고 하는지 아시나요? 바로 'sa mạc'이에요. 발음과 의미가 한국어와 아주 비슷하죠? 한국과 베트남은 같은 동양이고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비슷한 단어가 많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베트남어와 한국어를 배워 볼 거예요."


마이 씨 독특한 발표 방식에 큰 점수를 얻어 2등을 했다.1등은 "10년 후 나의 미래"에 대해 발표한 8권 학생 아잉 씨였다. 아잉 씨는 10년 후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주관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잉 씨의 발표를 들으며 나는 살짝 감동을 받았다. 학생들은 발표 전에 담당 교사에게 두 번씩 지도를 받았는데, 아잉 씨는 내가 담당한 학생이었다. 연습할 때 내가 계속 지적한 발음 문제가 있었는데, 대회 때 내가 지적한 점을 거의 완벽하게 고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발표 중인 학생


발표를 마치고 투호 놀이를 한 번 더 하고 퀴즈 대회도 했다. 내가 대회를 진행하는 동안 다른 선생님들은 심사 점수를 합산하고 순위를 매기셨다. 퀴즈와 투호 경품은 한국 화장품, 마스크, 손수건 등 다양하게 준비했다. 퀴즈는 내가 먼저 한국어로 질문하면 짱 선생님이 베트남어로 통역을 해 주셨는데, 내가 한국어로 질문할 때부터 손을 들고 정답을 말하는 학생이 많았다.


"이것은 한국의 인터넷 방송 문화 중 하나입니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 주는 방송을 부르는 말은 무엇일까요?"

"먹방! 먹방이요!"


투호 놀이


투호 놀이와 퀴즈 대회 후에 말하기 대회와 쓰기 대회 시상식을 했다. 각 부문 중급 단계에서 1등을 한 학생은 10월에 있는 세종학당 한국문화 연수에 초청되어 1주일 간 한국에서 문화 연수를 할 수 있다. 쓰기 5권 학생 타오 씨가 중급1등을 했다. 코로나 19 이후 첫 대면 행사인 말하기 대회가 이렇게 잘 끝났다. 세종학당에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활기찬 분위기였다.


시상식 후 단체 사진


세종학당 재단은 매달 <월간 새소식>이라는 온라인 소식지를 재단 홈페이지에 게시하는데, 각 세종학당의 소식을 제보받고 그중에서 선정된 것을 기사에 싣는다. 나는 이번 말하기 대회 소식을 제보했는데 8월 소식지에 실렸다. 지난 5월 대사배 말하기 대회도 제보했고 6월 소식지에 실렸었는데, 내가 제보한 게 연속으로 실려서 기분 좋았다. 소식지에 실린다고 딱히 좋은 걸 얻는 건 아니지만, 주베트남 한국문화원 세종학당을 홍보하는 데 일조한 느낌이라 뿌듯했다.



말하기 대회 사진 출처: 주베트남 한국문화원 페이스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