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는 베트남 여성 박물관이 있다. 어떤 주제로 전시를 했을까 궁금해서 호아로 수용소를 다녀오고 며칠 후 베트남 여성 박물관에 갔다. 호아로 수용소 때처럼 한국어 음성 안내기를 빌리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한국어는 없었다. 할 수 없이 눈으로만 구경하고 영어로 된 안내문을 읽었는데, 모르는 단어도 많았지만 일단 영어라서 눈에 잘 안 들어왔다. 베트남 박물관에 한국어 음성 안내기가 많이 도입되었으면 좋겠다.
베트남 여성 박물관
베트남은 54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다.(참고 : 베트남의 소수민족 (brunch.co.kr)) 우리에게 익숙한 아오자이를 입는 베트남인은 다수 민족인 비엣(Việt)족이다. 베트남은 민족마다 종교와 의복, 생활 문화에 차이가 있다. 여성 박물관 2층은 이렇게 민족마다 다른 의복을 전시해 놓았다. 베트남의 전통 복장은 하나같이 다 예쁘고 독특해서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한쪽에는 베트남의 결혼 문화를 소개하는 곳이 있고, 옆 방에는 베트남의 전통 결혼식을 재현한 듯한 모형이 있었다. 또 주거 문화를 보여주는데, 가정에서 어머니와 아내가 전통적으로 해 온 역할들을 알려주며 그들의 고생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베트남 소수민족들의 전통 복장
여성들의 수공예품, 전통 결혼식 모형, 결혼 문화 소개
위층으로 올라가면 베트남 정부의 임신 출산 지원 정책, 모자(母子) 보건 정책의 역사와 현황을 알 수 있다. 물론 한국어 설명이 없어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정책의 역사를 전시한 점이 특이했다. 문득 우리나라의 임신 출산 지원 정책과 모자 보건 정책 역사는 어떤까 궁금해졌다.
4층에는 여성 독립운동가 등 여성 위인들을 연대별로 설명하고 그들이 쓴 물건들을 전시했다. 호아로 수용소에서도 잠깐 들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도 있었다. 베트남 여성 박물관을 보며 생각이 든 게, 가정에서 아내와 어머니의 희생에 대해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 하면서도 그들의 희생을 강조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요즘 가정에서 여자와 남자의 역할을 따로 구분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니, 여성박물관도 취지는 좋지만 역설적이게도 베트남 여성 인권이 아직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베트남 여성박물관 4층에 가니 우리나라도 이런 곳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박물관이 아닌 '여성 위인 박물관' 말이다. 우리나라도 위대한 여성 위인, 특히 일제강점기와 민주화 운동 시절에 활약한 여성 위인들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시대상 여성의 지위가 낮았으니 업적이 더 가려졌을 것이다. 찾아보니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이라는 곳이 서울에 있지만,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생존자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곳이라고 한다. 피해자만으로서가 아닌 나라와 국민을 위해 활약한 여성의 역사만을 다룬 박물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베트남 여성 위인들과 그들이 사용한 물건
6. 베트남 민족학 박물관(Bảo tàng Dân tộc học Việt Nam)
8월에 부모님이 오실 예정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갈 하노이 관광 코스에 박물관을 넣고 싶었는데 탕롱황성은 너무 넓어서 힘들어하실 것 같고 호아로 수용소는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서 여성박물관이나 민족학 박물관 중에 하나를 가기로 했다. 민족학 박물관은 가 본 적이 없어서 부모님 모시고 가기 전에 사전 답사를 했다. 가 보니 여성박물관보다 훨씬 볼 게 많고 재미있어서 부모님을 모시고 또 갔었고, 부모님도 만족하셨다.
민족학 박물관은 베트남 소수민족들을 설명하고 그들의 의복 문화, 주거 환경 등의 생활 문화를 전시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어마어마한 양의 바구니(?)를 실은 자전거가 보였다. 설명을 읽어보니 어촌에서 사는 소수민족이 사용하는 물고기 잡는 바구니(아마도 통발?)인 것 같았다. 1층에는 그 외에도 소수민족들이 집에서 사용하는 물건들, 의복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냥 물건만 전시해 논 게 아니라 영상 자료도 같이 보여주는 점이 좋았다. 아오자이와 함께 베트남을 상징하는 농라(Nón Lá. '농'이라고도 함)도 있는데, 아마도 농라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소수민족의 결혼 문화, 장례 문화를 재현해 논 것들이 많이 있었다. 민족마다 다른 옷, 종교, 예식, 생활 문화를 구경하니 눈이 즐거웠다.한국어 설명을 들으며 관람했으면 좋았을텐데, 안내데스크에 문의해 봤지만 한국어 음성 안내는 없다고 해서 아쉬웠다.
민족학 박물관 전시물
소수민족들의 전통적인 생활환경을 구경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므농(Mơ-nong) 족 문화였다. 므농 족은 코끼리와 같이 생활한다. 나에게 동물원 밖의 코끼리는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존재였는데, 코끼리와 같이 사는 민족이라니 신기했다. 이 분들이 사는 곳에 가면 나도 코끼리를 타 볼 수 있을까?
므농 족과 코끼리. 오른쪽은 코끼리 상아로 만든 무언가(가마일까, 지게일까?)
민족학 박물관 2층은 1층과 마찬가지로 소수 민족들의 생활환경을 보여주는데, 특히 주거 환경을 자세하게 볼 수 있다. 집 내부를 재현해 놓기도 했다. 박물관 외부에는 이런 소수민족들의 집을 직접 만들어 놓았다. 소수민족의 집을 실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안에 들어갈 수도 있어서 재미있었다. 집은 서로 비슷한 듯하면서도 달랐다. 차이점을 자세히 알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나중에 한국어 음성 안내가 되면 다시 오고 싶다.
박물관 외부에 있는 소수민족의 집 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나(Ba Na) 족의 집이었다. 중앙에 있고 가장 크다. 바나 족은 지붕이 왜 이렇게 크고 세모날까? 베트남은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라 그런지 다른 집들도 거의 계단을 올라가야 했는데, 바나 족 집은 계단이 특히 높아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게 살짝 무섭기도 했다.
바나 족 집에서 엄마와 같이 찍은 사진
7. 베트남 역사박물관(Bảo tàng lịch sử quốc gia)
베트남 역사박물관은 호안끼엠 구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 바로 근처에 있다. 베트남의 역사를 선사 시대 때부터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 역사박물관
10월에 방문했는데, 박물관을 구경하려고 간 것이 아니라 한국문화원이 주관하는 <백제, 그리고 제주> 전시를 보려고 한 것이었다. 10월 16일까지 하는 전시였는데 특정 시간에 상영회와 요리 시식회도 참여할 수 있었지만, 나는 수업 시간과 겹쳐서 다 가지 못했다. 시간이 괜찮으면 학생 몇 명 데리고 갔을 텐데. 박물관 1층에 백제 금관 등의 몇몇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었고 백제의 역사, 공주와 부여 유적지에 대한 설명과 제주도에 대한 설명이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베트남 역사박물관 내 <백제, 그리고 제주> 전시관
박물관에서는 베트남의 각 왕조 시대 유물, 화폐의 역사, 활자 역사 등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보면서 계속 생각이 든 게, 베트남의 문화와 역사는 한국과 정말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동남아시아지만 다른 동남아시아와는 다르게 대승 불교를 믿고,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유교 문화가 뿌리 깊게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중에서 역사적으로도, 현재는 경제적으로도 제일 관계 깊은 나라라서 더 가깝게 느껴진다. 박물관은 5시까지만 관람할 수 있었는데, 토요일 근무가 끝나고 간 거라(화~토요일 근무인데, 토요일은 3시까지 일한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눈으로 거의 대강 훑어보다시피 구경한 게 좀 아쉽다.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다시 방문해서 더 자세하게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