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특별 학기 문화 수업은 4주 동안 토요일마다 두 시간씩 진행했다. 이번에는 한국어 수준 상관없이 신청을 받았다. 수업 신청은 신청일 밤 0시부터 며칠 동안 구글로 받는데, 결과가 나오자 신청이 안 된 학생들이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저 신청 첫날 밤 12시 30분에 신청했는데 실패했어요. 저 너무 듣고 싶은데 듣게 해 주시면 안 돼요?"
신청 시작 겨우 30분 지나서 신청했는데 안 됐다고? 가장 마지막에 성공한 학생한테 몇 시에 신청서를 냈는지 물어봤는데, 12시 20분이 안 됐을 때 제출했다고 한다. 무슨 콘서트 티켓팅도 아니고, 20분도 안 되어 마감된 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수업을 못 듣게 된 학생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내 수업이 이렇게 인기가 많다니' 하는 생각에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사실 '내 수업'이 인기가 많다기보다는 '한국문화 수업'이 인기가 많은 거지만 말이다.
첫째 주. 한국 민화 수업
먼저 민화가 무엇인지, 민화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간단하게 설명한 후 학생들에게 민화 도안을 나눠 줬다. 민화 도안은 세종학당재단에서 배부해 준 잉어 도안도 있었지만, 좀 더 다양하게 하고 싶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민화 도안을 인쇄해서 나눠 줬다. 예전에 산 <민화의 즐거움>(저자 윤영수, 종이나라) 책 부록 CD에 민화 수십 장 있는데, 학생들에게 보여 주고 색칠하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했다.
민화 수업 자료
학생들은 화조도(꽃과 새), 책가도(문방사우), 장생도(장수를 상징하는 식물과 동물) 등 다양한 민화 도안을 골라서 색칠했다. 색칠을 다 한 후 옆에 멋있는 문장을 쓰고 사인을 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부담을 느꼈지만 곧 내가 보여 준 예시 그림도 보고 인터넷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저마다 개성 있게 민화를 칠했다. 색칠이나 그림 그리기에 재능이 전혀 없는 나는 그냥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응원하고 작품을 칭찬하기만 했다. 몇몇 학생은 혹시 그림을 따로 배웠나 싶을 정도로 예술적으로 색칠하기도 했다.
민화 도안 색칠
민화 색칠이 끝난 후 이번에는 흰 부채에 직접 민화를 그려보게 했다. 몇몇 학생들은 그림을 못 그려서 부담이 된다며 집에 가서 연습한 후에 그리겠다고 했고, 어떤 학생은 바로 그림을 그렸다.다른 선생님들께 학생들이 색칠하고 그린 작품들을 보여 드리고 제일 잘한 것 두 개를 뽑아 달라고 했다. 그리고 뽑힌 학생들에게는 베트남에 오기 전 다이소에서 산 한국 전통 디자인 편지 봉투를 상품으로 줬다.
둘째 주. 한국의 주거 문화
한국의 주거 문화 수업은 두 가지 주제로 진행했다. 하나는 한국의 전통 가옥 특징, 하나는 온돌 문화이다. 한국의 전통 가옥 특징은 세종학당재단에서 나눠 준 <한국의 주거문화> 책자를 활용해서 수업했다. 책자는 한국의 주거 문화의 특징이 한국어로도 설명되어 있고 베트남어, 영어, 스페인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도 되어 있어 좋았다. 거기서 베트남어 설명 부분을 스캔해서 학생들에게 보여 주며 설명을 했다.
한국의 주거 문화 ppt
이론 설명이 끝나고 온돌 만들기 키트로 온돌을 만들었다. 이것도 세종학당재단에서 나눠 준 문화 수업 키트로 했다. 재단에서 올해 초에 교원들 당 하나씩 <세종한국문화> 교재 문화 수업 키트를 나눠 줬는데, 온돌 만들기 키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문화원 교원은 현지인 선생님까지 총 5명이라서 키트도 다섯 개를 받았는데, 다른 선생님들께서 감사히도 양보를 해 주셔서 이번 문화 수업 때 다 활용할 수 있었다. 학생 네다섯 명이 한 팀이 되어 온돌을 만들었다. 온돌을 만들면 쑥뜸에 불을 붙여 연기가 구들장(열기가 지나는 통로)을 지나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것까지 관찰할 수 있었다.
온돌 만들기
온돌 만들기 후에는 기와집과 창덕궁 만들기를 했다. 이것도 <세종한국문화> 키트에 있는 거였는데, 두 명이 한 팀이 되어 창덕궁과 기와집 중 하나를 선택해서 만들었다. 기와집과 창덕궁, 온돌 모두 솔직히 나도 어떻게 만드는지 잘 모르고 키트만 던져 줬는데 학생들이 알아서 잘 만들었다. 헤매는 팀이 있으면 성공한 팀 학생을 그쪽으로 데려가서 도와 달라고 했다.
셋째 주. 한국 전통 놀이
윷놀이, 강강술래, 제기차기, 투호, 씨름과 그네 타기 등의 놀이를 소개하고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아이들이 주로 하는 놀이도 소개했다. 그리고 학당에 있는 투호, 공기놀이, 윷놀이를 세 팀으로 나눠 했다. 역시 1등 한 팀에게는 선물로 한국 전통 디자인 편지 봉투를 하나씩 주기로 했다.
먼저 공기놀이를 했다. 베트남에도 공기놀이와 비슷한 놀이 문화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과는 방식이 다르다. 한국이 훨씬 복잡하다. 먼저 10분 동안 연습 시간을 준 후 팀에서 누가 하든 상관없이 공기를 하나씩 잡는 1단계부터 손등 위로 올리고 낚아채는 5단계까지 먼저 성공한 팀에게 1점을 주기로 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예상보다 더 공기를 어려워했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 5단계만 하기로 하고, 공기를 제일 많이 손등에 올리고 잡기까지 성공한 팀에게 1점을 주는 걸로 규칙을 바꿨다.
공기 놀이
두 번째 놀이인 윷놀이는 말은 시간 관계상 두 개만 하고 모든 팀원이 돌아가며 윷을 던지게 했다. 학생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참여한 놀이이다. 교실이 떠나갈 듯했는데, 토요일에 수업하는 반이 우리밖에 없어서 다행이었다.
"'윷' hay('아니면'의 베트남어) '모'! 제발!"
"아~~~~ '도'야!"
"잡아! 잡아!"
" không phải. đi đi(아니야 가자)!"
마지막 놀이인 투호는 문화원 마당에 나가서 했다. 8월이었지만 마침 그날따라 그늘이 많이 지고 날씨도 엄청 덥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섯 개를 먼저 넣은 팀이 이기는 것이었고, 학생들은 한 사람 당 총 세 번 던졌다. 그러다가 이기는 팀이 계속 안 나와서 세 개를 넣으면 이기는 걸로 바꿨더니 금방 우승팀이 나왔다. 공기놀이부터 투호까지, 체력적으로는 지치는 수업이었지만 특별 수업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한 수업인 것 같다.
투호 놀이
넷째 주. 한지 접시와 떡 만들기
한국 문화 수업을 준비할 때 가장 신경을 많이 쓴 수업이다. 수업 시작 한 달 전부터 매일 고민했다. 수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어떤 떡을 만들지... 학당에 '접시 만들기' 키트가 너무 많이 있어서 그걸 사용하려고 계획한 수업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접시 만들기가 너무 쉽다는 것이었다. 다 오려져 있는 한지 종이를 흰 종이 접시에 예쁘게 붙이기만 하면 끝이었다. 한번 만들어 보니 15분도 안 걸려서 끝났다. 접시 만들기 키트는 써야겠고, 그거하고 같이 할 수 있는 수업을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게 '떡 만들기'였다. 요리 교실도 있겠다, 학생들도 요리 수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겠다, 떡은 만들기 복잡하지도 않으니 떡을 만들면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예쁘게 만든 한지 접시에 예쁘게 만든 떡을 올려놓으면 사진도 엄청 예쁠 것 아닌가.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추억할 만한 사진을 남기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막상 떡을 만들기로 정하니 무슨 떡을 만들지, 재료는 어떻게 구할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백설기를 만들까? 아니, 인절미가 더 간단한 거 같은데 인절미? 아냐, 이왕이면 다양하게 하는 게 모양도 잘 나오겠지. 두 개 다 하자!'
떡의 종류는 정했다. 재료는 어떻게 구해야 할까? 떡의 맛도 맛이지만 '예쁜 결과물'을 만드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색을 입히는 게 중요했다. 나는 백년초, 단호박 색깔을 생각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마트에 이런 색깔을 낼 수 있는 가루가 없었다.
"하노이에 있는 한국 떡집에 연락해 보는 건 어때요?"
김 선생님이 아이디어를 주셨다. 바로 하노이 미딩에 있는 '월미떡'에 혹시 색을 낼 수 있는 가루만 구입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다행히 사장님께서 50g씩 준비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다만 백년초 가루는 없고 자색 고구마 가루가 있다고 하셔서 자색 고구마와 단호박 가루를 구매했다.
찾아보니 떡을 만들 때는 사용하는 쌀가루 종류가 달랐다. 쌀가루가 건식과 습식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인절미는 찹쌀가루로 만드는데 백설기를 만들 때는 습식 쌀가루를 사용해야 한단다. 근데 마트에서 파는 쌀가루 종류가 하나밖에 없었는데, 건식인지 습식인지 구분이 안 갔다. 정체를 모르지만 일단 쌀가루 400g 하고 찹쌀가루 400g 두 봉을 샀다. 그리고 수업 며칠 전에 혼자서 실습을 해 봤다. 결과는... 대 실패!
이럴 수가, 아무리 손을 써 봐도 내가 아는 그 백설기가 나오지 않는다. 대체 이 가루의 정체는 무엇일까. 건식인가! 하는 수 없이 백설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럼 인절미만 해야 하는데, 그럼 그림이 예쁘게 안 나온다. 콩가루도 아니고, 자색고구마 가루와 단호박 가루로 꾸민 인절미라니?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원 선생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셨다.
"경단을 만들어 보면 어때요? 경단도 찹쌀가루로 만들어요. 카스텔라 빵가루로 고물 묻히고요."
아! 좋은 아이디어였다! 만드는 방법을 찾아보니 반죽을 한 다음 안에 팥이나 꿀을 넣고 삶거나 찌면 되었다.그리고 모양도 둥글게 만들기만 하면 되니 오케이! 인절미도 포기하고 경단만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수업 바로 직전에 빵집에 들러 치즈 카스텔라도 구매했다. 안에 넣을 고물인 팥, 추가 찹쌀가루, 비닐장갑, 한지 접시 위에 떡을 올릴 때 밑에 깔 종이 호일 등은 마트에서 구입했다. 이제 예쁘고 맛있는 떡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떡 만들기 재료
수업 당일, 떡을 만들기 전 먼저 한지 접시부터 만들었다. 한지 접시는 역시 딱히 설명을 안 해도 뚝딱뚝딱 다 만들었다. 접시를 예쁘게 만들고 떡도 예쁘게 만들기 위해 요리교실로 이동했다.
한지 접시 만들기. 민화 부채를 예술적으로 그린 학생이 접시도 잘 만들었다.
재료 준비부터 공을 많이 들인 떡 만들기 수업은 성공했을까? 결과는... 반은 실패하고 반은 성공했다! '예쁘게'는 성공했는데, '맛있게'가 실패했다... 수업 직전에 추가로 찹쌀가루를 산다는 게, 백설기를 실패하게 만든 그 문제의 쌀가루를 추가로 사 버린 것이다.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하다니! 게다가 떡 반죽 안에 들어가야 하는 소금과 설탕의 양도 잘못 계량했는지 반죽이 맛이 안 났다. 찹쌀가루가 부족해 문제의 쌀가루로도 경단을 만들었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시키는 대로 아주 열심히 떡을 만든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치즈 카스텔라 고물을 묻힌 찹쌀 경단은 맛있었다는 것이다. 치즈 카스텔라 최고. 얘가 정말 다 했다. 학생들도 그것만 골라 먹었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
그래도 '예쁘게' 만드는 건 성공해서,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학생들은 떡이 맛이 없어서 미안하다는 나에게 그래도 재미있었고 카스텔라 떡은 맛있었다며 위로해 줬다. (절대 다른 떡이 맛있다는 이야기는 안 했다.) 떡을 다 만들고 문화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 찍기 바쁜 학생들을 보니 보람이 느껴지긴 했다.
떡 만들기 결과
떡을 다 만들고 나서 그동안 한국 문화 수업 때 배운 내용을 퀴즈로 냈다. 퀴즈를 맞힌 학생에게는 역시 상품으로 한국 전통 디자인 엽서를 나눠 줬다. 다만 그전에 한국 전통 놀이와 민화에서 상품을 받은 학생 말고 다른 학생에게 기회를 줬다. 이렇게 4주간의 한국문화 수업이 끝났다. 떡이 맛없어서 아쉽기는 했지만 나도 학생들도 모두 수업을 즐겼다. 이번 수업으로 얻은 교훈이 있다. 다음에 문화 수업할 때는 절대 떡 만들기는 하지 말자. 나는 떡을 못 만드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