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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Nov 19. 2022

베트남어를 공부하자!

2022년 문화원 세종학당 2학기

가 : 계산해 드릴까요?

나 : Dạ tất cả bao nhiêu tiền ạ?(네. 다 얼마예요?)

가 : 20만 동입니다. 드시고 가세요?

나 : Cái này ăn đây, và cái này mang về.

     (이거는 먹고 가고요, 이거는 포장할 거예요.)

가 : 네 알겠습니다.


한국 사람과 베트남 사람의 대화이다. 여기서 문제! '가'와 '나' 중에 누가 한국사람일까요? 정답은... '나'! 이 대화에서 '나'는 나이다.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하노이 미딩 지역에 있는 대부분 가게의 베트남인 직원들은 한국인들에게 한국어로 응대를 한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위의 대화처럼 내가 하는 베트남어를 다 이해해도 한국어로 응대한다는 것이다. 미딩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 좀 분위기 있는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직원들은 항상 나에게 영어로 말한다. 내가 베트남어로 말해도 말이다. 심지어는 내가 영어로 주문할 때면 주문 확인을 안 하는데, 베트남어로 주문하면 주문 확인을 한 번 더 한다.


"Would you like to order? (주문하시겠어요?)"

"Cho tôi một cốc americano nóng.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You want a hot americano, right?(뜨거운 아메리카노 맞으시죠?)"

"Vâng ạ. (네.)"


혹시 내 베트남어 발음이 안 좋은가? 학생들에게, 베트남 친구에게 발음을 확인해 봤는데 전혀 이상하지 않단다. 우리 아파트 청소 아주머니와 경비 아저씨, 집주인하고도 가끔 대화를 나누는데, 그분들은 나한테 베트남어 발음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분위기 있는 카페나 식당에서는 항상 내 주문을 영어로 다시 확인한다. 언젠가 한 번은 카페 카운터에 핸드폰 충전을 베트남어로 부탁한 적이 있는데, 직원이 알겠다며 핸드폰을 가져가 놓고는 잠시 후에 다시 와서 핸드폰 충전이 필요한 것 맞냐며 영어로 확인한 적도 있다. 이런 일들 때문에 한동안은 베트남어에 자신감이 떨어져 기가 죽었던 때도 있었다. 사실 발음이 안 좋은데 주변 학생들과 친구들이 나를 위해서 거짓말해 준 게 아닐까 싶었다.


하노이에 오기 전에, 하노이에 가면 직장 동료나 한국 사람들하고 이야기할 때 빼고 무조건 베트남어로 말하겠다고 다짐했다. 베트남어는 후에 세종학당 때부터 공부했지만, 후에에는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거의 안 계시고 그나마 가르칠 수 있는 분하고는 시간이 안 맞아서 현지에서 베트남어를 배우지는 못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베트남어 강의를 열심히 들으며 베트남어를 익혀도 현지에서 쓸 수가 없었다. 왜 못 썼냐면...


"선생님, 틀렸어요. 'Không(아니다)' 이거는 [콘]이라고 발음해야 돼요."

"저는 [콤]이라고 배웠는데요?"

"그거는 하노이 발음이에요."

"???"


"Cô đi mô đo?"

"네? 'mô'가 뭐예요?"

"선생님 어디 가시냐고요~ 'mô'는 '어디'냐는 뜻이에요."

"'đâu'아니에요?"

"그건 하노이 말이에요. 후에 말 아니에요."


베트남은 표준어가 없다. 대표적으로 남부(호찌민), 북부(하노이) 언어로 나뉘는데, 쓰는 단어와 발음이 조금씩 다른 정도이다. 비교하면 서울과 부산 말 정도 차이랄까? 서로 이해하는 데 문제는 전혀 없다. 문제는 중부, 중부 중에서도 후에이다. 억양도 다른 지역에 비해 강한데 사용하는 성조도, 그리고 일부 단어도 다르다. 그나마 후에는 하노이보다는 호찌민과 지리적 역사적으로 가까워서 호찌민하고는 비슷한 점이 있는데(예를 들면 'da'를 하노이에서는 [자]라고 하는데 호찌민과 후에에서는 [야]라고 한다), 하노이하고는 정말 다르다. 하노이 사람들은 후에 갈 때 통역이 필요하다고 할 정도이고, 후에 세종학당 선생님이 하노이에 왔을 때 하노이 사람들이 자기 말을 못 알아들어서 기분이 안 좋았다고 할 정도이다.


후에에서는 집주인, 청소 아주머니, 동료 선생들들한테 베트남어로 말하면 내 발음과 단어를 후에 식으로 고쳐 주려고 했다. 그리고 카페나 가게에서도 직원들이 하는 베트남어를 내가 이해를 못 했다. 인터넷에서 배운 것과 너무 억양이 달라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배운 것과 실제로 쓰는 언어가 다르니 공부가 안 됐고 헷갈리기만 했다. 그래서 후에에서는 거의 인터넷으로만 베트남어를 익혔다. 그나마도 후에 귀국 후 2년 동안 공부를 거의 안 해서 실력이 많이 쇠퇴했는데, 작년부터 다시 인터넷으로 베트남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인터넷으로 혼자 공부하는 거라 말하기 실력이 통 늘지를 않았다. 후에 세종학당 린짱과 황의 도움을 받아 연습을 좀 하기도 했다. 고맙게도 황이 하노이 발음으로 연습을 도와줬고, 자기가 아는 하노이 친구의 발음을 녹음해서 주기도 했다. 그래서 잠깐 동안은 공부를 좀 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그만두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래서 결심했었다. 하노이에 가면 문화원 밖에서는 최대한 베트남어로 말하자! 하지만...


"Cho tôi thanh toán nhé. (계산해 주세요.)"

"Okey. Do you need a receipt?(네. 영수증 필요하세요?)"


역시나 내 베트남어를 받아주지 않는다. 참냐. 마음대로 해라. 나는 베트남어로만 말할 거다. 직원이 이렇게 영어나 한국어로 대답하면 나는 마음속으로 살짝 삐지고, 반대로 베트남어로 대답해 주면 표정 변화는 없어도 속으로는 좋아한다.


베트남어가 어렵기도 하고, 직원들이 자꾸 베트남어를 안 받아줘서 한동안 기죽었던 베트남어에 대한 의욕이 8월에 다시 살아났다. 8월에 부모님께서 베트남에 오셔서 하노이에서 3일, 닌빈에서 2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 몽골 울란바토르에 있을 때도 오신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택시 기사와 몽골어로 대화하는 걸 듣고 부모님께서 나를 엄청 자랑스러워하셨었다. 사실 엄청 간단한 대화였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부모님께 내가 베트남어로 말하는 걸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서 호텔과 식당에서, 택시에서 짧은 말이라도 베트남어로 말했다. 그러니까 현지인들이 나한테 베트남어를 너무 잘한다고 어디에서 배웠냐고 계속 칭찬을 했다. 내 어깨가 하늘 높이 솟구쳤고 부모님도 자랑스러워하셨다.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 아주머니가 나한테 자기 목적지로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 되는지 물어보셨다. 내가 잘 모른다고 하자 계속 길게 뭐라 뭐라 하시길래, 나는 한국 사람이라 잘 모른다고 다시 말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며 말씀하셨다.


"Chị nghĩ em là người Việt Nam. Em đã học ở đâu? (정말요? 베트남 사람인 줄 알았어요. 어디에서 베트남어를 공부했어요?)"


아주머니는 한국인 지인이 두 명 있고, 자기 딸이 K-POP 팬이라며 계속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버스가 올 때까지 약 5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청소 아주머니와 경비 아저씨, 집주인을 제외한 현지인과 이렇게 오래 대화한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말을 거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은 아주머니 덕분에 기분이 하루 종일 좋았다.


8월부터 하노이의 백화(Bách khoa) 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으면 내가 베트남어를 엄청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직 중급 수준이다.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서 꼭 고급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한테는 베트남어 고급 시험에 합격해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 교원들은 한국어를 잘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교수로 채용되는 게 아니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아무리 경력이 많아도 계약직이고 시간 강사로 일한다. 전에 올린 글에서도 말했었지만, 시급 또한 형편없이 낮으면서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교원들이 투잡, 쓰리잡을 뛴다. 다른 한국어 교육 기관에서 일하는 투잡 쓰리잡이 가장 많지만 카페 운영, 그림 그리기, 보육 교사, 통번역 등 아예 다른 일을 하시는 분들도 많다. 나는 이런 분들이 부럽다. 능력도 많고, 꼭 한국어 강사로 일하지 못하더라도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있으니까. 반면에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 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대학 졸업 이후 NGO 홍보 일을 잠시 한 것 외에 다른 일을 한 경험도 없다. 어떤 분은 나한테 젊은 나이에 경력을 많이 쌓아 좋겠다고 하시지만, 이게 장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경력을 아무리 쌓아봤자 교수가 되지 않는 이상 대우는 나아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몇십 년 동안 지속해서 일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수입이 적은 건 둘째치고, 짧으면 7주 길면 2년 동안 계약의 연속이기 때문에 계속 불안정한 상태로 일해야 하니까 말이다. 내가 한국어 교육을 포기할까 생각하고 있을 때 나를 잡아 주신 선생님께서, 더 이상 지원하고 면접 보는 것을 못하겠다고 다른 길로 가셨을 때 이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재미있고 보람차다. 그래서 계속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려면 나만의 특기를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투잡으로 베트남어 통번역 일을 할 목적이든, 한국어 교육 기관에 취업할 때 이력서에 한 줄 더 쓸 목적이든 베트남어 실력을 고급 수준으로 높일 것이다. 그래서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세종학당 파견교원 계약은 올해 12월까지이지만, 계약이 끝나도 하노이에 남아 베트남어 고급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공부하기로 말이다. 내년이면 30대 중반이라 상대적으로 남들보다는 늦은 나이에 어학연수를 준비하는 것이지만, 공부에는 때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고 내년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장담은 못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면 어학연수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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