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어 교원 Dec 28. 2022

수료식, 그리고 작별 인사

2022년 문화원 세종학당 2학기

'한글날은 9월 10일입니다.(O/X)'

'X. 10월 9일이에요.'


'베트남의 국화는 연꽃입니다. 한국의 국화는 무엇일까요?'

'무궁화!'


페이스북 단체 메시지방인 '골든벨 연습방'에서 한 달 동안 이렇게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관련된 퀴즈를 냈다. '골든벨 연습방'은 12월 17일에 열린 베트남 북부지역 세종학당 골든벨 및 장기자랑 대회를 준비하는 방이었다. 대회는 하노이외국어대학교에 있는 하노이 2 세종학당에서 주최했는데, 각 세종학당마다 최대 15명이 나갈 수 있었다. 우리 문화원 세종학당은 장기자랑은 안 나가고 골든벨만 15명이 참가했다. 참가하는 학생들이 골든벨이 너무 걱정된다고 그래서 단체 메시지방을 만들어 생각이 날 때마다 퀴즈를 냈다. 총 60개의 문제를 냈고, 학생들은 내가 낸 문제들을 몇 번씩 보며 공부했다.


드디어 대회 날이 되었다. 대회는 하노이 외국어대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그냥 대회를 즐긴다고 생각하라고 학생들에게 말했었고 나도 수상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너무 일찍 탈락하지 않길 바라며 정답이 발표될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학생들을 봤다. 오, 다행히 1번~3번까지는 모두 내가 낸 문제에서 나왔다. 문화원 학생은 한 명도 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4번 문제가 발표됐다.


'진달래, 민들레, 개나리는 모두 꽃 이름이다. (O/X)'


이런. 연습할 때 꽃 문제는 '무궁화'밖에 낸 적이 없었다. 학생들이 앉아 있는 객석도 약간 소란스러워졌다. 정답이 발표되자 역시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탈락했다. 문화원 학생들도 다섯 명 정도만 남았다. 그리고 그 다섯 명도 수상을 할 수 있는 최후의 4인에는 들지 못했다. 하지만 뭐 어떤가, 재미있었으면 됐지. 골든벨 연습을 하면서 나도 은근히 재미있었고, 행사 당일 학생들은 같이 모여서 놀고 공연 구경도 하고 나는 다른 학당 선생님들과 오랜만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행사가 끝나고 문제의 4번을 통과한 학생들에게 그 문제 답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다 모르는데 그냥 찍었어요 히히."

"'개나리'가 꽃인 걸 알아서 그냥 O 했어요."

"아 그게요, 제가 '개나리'하고 '민들레'는 아는데 '진달래'는 몰랐거든요. 그래도 진달래하고 똑같이 '레'가 있어서 꽃이라고 생각했어요."


'래'와 '레'는 철자가 다르다. 결국 그냥 다 찍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또 이런 대회를 준비하게 된다면 연습 문제로 꽃 문제를 다양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골든벨 사진


12월 20일에는 주베트남 한국문화원 세종학당 수료식을 했다. 수료식은 축하 공연과 장기 자랑, 문화원 세종학당의 1년을 돌아보는 동영상 시청, 학당장님(문화원장님)과 대표 교원, 대표 학생의 감사 인사말, 우수학습자 시상, 퀴즈 및 게임과 행운 번호 추첨, 학생들의 장기자랑 순서로 진행했다. 작년에김 선생님이 사회를 맡고 내가 퀴즈와 행운번호 추첨을 담당했었는데, 이번에는 바꿔서 했다.


문화원 세종학당의 1년을 돌아보는 동영상은 내가 다른 선생님들의 사진을 모두 받아서 만들었다. 동영상을 만들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지났다는 게 더 실감이 났다.


수료식 전에 장기자랑에 나가고 싶은 학생이 있는지 조사했었는데, 현지 선생님이 담당하신 1권 반에서 한 명, 내가 담당한 5권 반에서 빅, 로안, 짱, 응언, 타오 다섯 명이 지원했다. 빅 씨는 기타를 직접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고, 짱과 응언, 로안 씨는 같이 한 팀으로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모두 내성적인 학생들인데 이렇게 장기자랑에 지원한 게 놀라웠다. 나머지 한 명인 타오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선생님이랑 같이 하는 거면 나갈래요."


오호, 사실 나도 장기자랑에 지원하는 학생이 없으면 수료식 분위기를 위해 나라도 학생을 꼬셔서 같이 노래를 부르려고 했. 아무도 지원 안 하면 같이 노래 부를 학생을 찾으려고 했는데 학생이 먼저 제안해 줘서 좋았다.


"그럼 저는 베트남어로 부르고 타오 씨는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면 어때요?"

"네 너무 좋아요!"

"생각한 노래가 있어요?"

"네. 눈의 꽃이에요. 이거 베트남어로도 있어요."


이렇게 우리는 박효신의 '눈의 꽃', 베트남어로 'Xin lỗi anh yêu em'을 부르게 되었다. 1절은 타오 씨가 혼자 나와서 한국어 버전을, 2절은 사회를 보고 있던 내가 무대로 나가 베트남어 버전을, 3절은 같이 한국어로 부르기로 했다. 우리는 수료식 며칠 전에 세종학당 교실에서, 그리고 수료식 당일 아침에 코인 노래방(베트남은 지폐만 쓰니 정확히는 지폐 노래방이지만)에서 노래 연습을 했다. 타오 씨는 가사를 안 보고도 잘 부르는데 나는 가사를 보고 부르는데도 버벅거렸다. 상관없었다. 잘 부르려고 하는 게 아니고 재미있는 수료식을 위해 부르는 거니까!


수료식이 시작됐다. 전날까지만 해도 날씨가 쌀쌀했는데, 수료식 당일에는 따뜻했다. 하늘도 우리 문화원을 좋아하는 건가? 문화원 마당 뒤편에 다과와 도시락이 차려지고 무대도 만들어지고 행사 준비가 다 끝났다.


수료식 음식


간단한 인사말 후에 공연이 시작되었다. 먼저 초청 공연으로 전문 케이팝 댄스팀공연을 했고, 5권 학생 로안, 짱, 응언의 '아로하' 노래 공연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와 타오의 차례가 되었다. 처음에 소개할 때는 타오의 이름만 말하고, 나는 뒤로 빠졌다. 타오가 1절을 다 부르고 뒤에 있던 내가 앞으로 나와 2절을 베트남어로 부르자, 학생들이 환호했다. 당연하게도 부르는 도중에 실수를 했지만, 실수하니까 학생들이 더 큰 박수를 보내줬다. 나는 노래가 끝나고 약간 뻔뻔하게 학생들에게 물었다.


"노래를 너~무 잘 불렀죠?"

"네에에에!"



공연이 끝난 후 문화원장님의 축사 후에 올해 계약이 끝나는 내가 교원 대표로 감사 인사를 했다.

문화원 세종학당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어느새 2년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생각은 그전에도 많이 했지만, 문화원에서의 시간은 특히 빠르게 지나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문화원에서의 시간이 소중하고 즐거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문화원에서의 수업은 매일매일 재미있었고 보람찼습니다. 그리고 다 같이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간 것, 여러분이 스승의 날을 챙겨준 것, 수업 시간에 가끔 과일과 과자를 가져와 같이 먹은 것 등 여러분들이 저에게 준 소중한 경험들은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일 년이 넘게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서 온라인 수업을 해서, 여러분들과 직접 만나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짧았다는 것인데요, 여러분도 좀 아쉽지요? 너무 아쉬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내년에도 하노이에서 잠시 어학연수를 할 생각이고, 여러분이 한국에 와서 나중에 한국에서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강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 우리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학생 여러분, 그리고 그동안 여러모로 잘 챙겨주신 선생님들, 뒤에서 묵묵히 세종학당을 지원해 주신 학당장님께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남은 2022년 행복하게 지내시고 건강하고 희망찬 2023년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으로 2학기에 8권을 수료한 대표 학생의 답사 발표, 우수학습자 시상을 한 후 게임 및 퀴즈 대회와 행운번호 추첨을 했다. 게임과 퀴즈는 모두 김 선생님이 준비하셨다. 게임으로는 선생님과 가위 바위 보, 손가락 접기 게임을 했다.


"제가 만약 '안경 쓴 사람 접어!'라고 하면 안경 쓴 사람은 손가락 한 개를 접는 거예요. 손가락 다섯 개를 먼저 다 접는 학생이 상품을 받을 수 있어요. 자, 시작합니다! 검은색 옷 입은 사람 접어!"


"퀴즈입니다. 잘 들으세요. 세종대왕은 한국의 지폐 중 얼마짜리 지폐에 있을까요?"


게임부터 퀴즈, 행운번호 추첨까지, 학생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어떤 학생은 퀴즈도 맞히고 행운번호도 당첨되어서 상품을 한 아름 안고 좋아했다.


손가락 접기 게임에 참여하는 학생들


행운번호가 끝나고 다시 학생들의 공연이 있었다. 1권 학생의 댄스와 5권 학생 빅의 기타 연주 및 노래 공연이 있었는데, 빅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5권 최 선생님의 학생입니다. 한국어 공부할 때 너무 어려워서 가끔 포기하고 싶었는데, 선생님께서 열정적으로 잘 가르쳐주셔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아까 '로하' 노래 공연 때도 학생들이 "이 노래는 선생님들을 위한 노래입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이라고 했었는데, 내성적인 우리 학생들이 용기를 내서 무대로 오른 이유가 선생님들을 위해서였다니 정말 고마웠다. 그런데 한 사람이 기타도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려니 마이크 위치 조정이 어려워 소리가 잘 안 들리는 문제가 생겼다. 그때, 자원봉사자 학생 한 명이 마이크 조정을 도와주다가 계속 안 되자 기타를 잡고 치기 시작했고 빅 일어나서 노래를 불렀다. 계획된 이벤트가 아니었다. 덕분에 학생들은 더 환호했고, 우리는 멋있는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공연하는 학생들


수료식이 끝나고 학생들과 사진을 찍었는데, 우리 파견 교원들은 사진 100장은 넘게 찍은 거 같다. 가르쳤던 학생, 이름도 모르는 학생들이 연달아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요청했다. 학생들과 작별 인사하는 자리이기도 해서 아쉬운 느낌도 들 줄 알았는데, 그런 느낌이 들 틈이 없었다. 한창 사진을 찍고 잠시 다과 먹으며 숨 돌리다가 다시 사진 찍으러 가는 것을 40분 넘게 계속했다. 웃느라고 볼이 아플 지경이었다.

 

수료식 단체 사진


이렇게 주베트남 한국문화원에서의 나의 업무는 모두 끝났다. 남은 건 사무실에 있는 내 짐을 정리하는 일뿐이다. 모레인 12월 29일,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어차피 한국에는 잠깐 있고 내년에 단기 어학연수를 하러 다시 하노이에 올 것이지만, 문화원 세종학당을 떠나는 것은 아쉽다. 후에 세종학당 때와 마찬가지로 주베트남 한국문화원 세종학당도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곳이니까.


학생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다음에도 세종학당에 지원할 거냐고 묻는다. 미래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 앞으로 세종학당에 지원할 계획이 없다. 나는 앞으로 하노이에서 약 5개월 정도만 어학연수를 하고 귀국해서 박사 공부를 하며 다문화 아이들을 가르칠 계획이다. 만약 다시 해외 파견 교원이 된다고 해도, 중고등학생 교육 경험을 쌓기 위해 다시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 봉사단원이나 국립국제교육원 파견으로 해외 중고등학교에 파견을 갈 것이다.(*국립국제교육원: 교육부 소속. 재외동포와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 관리하거나 국내 영어 공교육을 지원하고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주관하는 기관. 해외 초중고등학교에 한국어 교원을 파견 보내는 사업도 한다.) 러므로 아마도 주베트남 한국문화원 세종학당은 나의 마지막 세종학당이 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파견 교원으로 일하는 동안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후에 세종학당에서도 문화원에서도 브런치에는 거의 좋았던 일들만 올렸을 뿐, 모든 순간이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이 행복했던 것은 맞다. 그건 내가 '내게 주어진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자'는 내 좌우명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착한 학생들, 마음이 맞는 동료들, 나를 위해주는 주변 사람들...


문화원에서 2년, 세종학당 파견교원으로서 약 4년을 '잘' 보냈다. 주베트남 한국문화원 세종학당 안녕! 세종학당재단 안녕! 그리고 여기까지 매거진 '세종학당 파견교원 이야기'를 읽어주신 분들도 안녕... 은 아니고 감사합니다! 2022년 연말 잘 보내시고 올해보다 더 행복한 2023년 보내세요^^



*수료식 사진 출처 : 주베트남 한국문화원

*혹시 세종학당 파견교원에 대해서나 이제까지 제가 올린 수업 내용에 대해 질문 있으시면 언제든지 메일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