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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Feb 14. 2023

베트남 어학연수를 시작하다

하노이 유학 생활1

2021년 세종학당 파견교원으로 하노이에 있는 주베트남 한국문화원에 배정이 되었을 때부터 결심한 것이 있었다. 바로 파견교원 계약이 종료되고 하노이에서 단기 어학연수를 하는 것이다!


2017-2018년에 후에 세종학당에서 일할 때부터 베트남어를 공부하긴 했지만, 후에는 사투리도 너무 심하고(다른 지역 사람들도 통역이 필요하다고 하는 수준) 베트남어를 배울 수 있는 기관도 없었다. 과외 선생님을 구할 수 있긴 했지만 시간이 안 맞아 그것도 못 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혼자 베트남어를 공부했다. 그런데 그나마도 집중적으로 공부하지 못했고, 언어는 상호 교환이 있어야 실력이 느는데 그게 안 되니 노력에 비해 실력이 늘지 않았다. 그래도 공부한 게 아까워 귀국하고 나서 OPIc 시험을 봐서 IM2(중급 2. OPIc 중급 단계는 1~3이 있다.)에 합격했으나, 그 이후로 주베트남 한국문화원에서 일하기 전까지 2년 간 베트남어를 공부하지 않았다. 다시 세종학당 파견교원이 되어 하노이로 가게 되었지만, 나는 베트남어를 공부한 지 4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중급 수준이었다.


계속 '중급'에만 머물러 있으면, 어디 가서 베트남어를 할 수 있다고 내세우기도 민망하다. 지난 글에서도 말했다시피, 한국어 교원으로 계속 일하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능력뿐만 아니라 다른 특기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두 번이나 베트남에 파견을 간 경험도 있으니, 베트남어를 내 특기로 제대로 살려 보고 싶었다. 어학연수는 20살 때부터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었던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2022년 계약 기간 종료 한 달 전인 11월에 본격적으로 어학연수 준비를 했다.


먼저 학교를 알아봤다. 나는 2022년 8월부터 주일에 두 번 하노이 백화대학교에서 베트남어를 공부했는데, 어학연수는 다른 학교를 알아봤다. 백화대학교는 어학연수생들은 무조건 평일 5일 내내, 하루 3시간 연속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에너지 넘치는  20대 초반도 아니고, 1주일 내내 수업을 들으면 중간에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았다. 게다가 다른 베트남어 교육 기관에 비해 수업료가 너무 비쌌다. 1:1 과외를 하면 1인당 1시간에 370,000동(한국 돈으로 약 18,500원)이었다. 다른 학교는 1:1 과외를 해도 1시간에 300,000동이 넘는 데가 없었다. 나는 동기 선생님 한 분과 같이 들어서 1시간에 270,000동이었는데 그래도 비싸다고 느껴졌고, 세종학당재단에서 지원해 주는 현지어 학습비 30만 원이 없었다면 좀 더 싼 곳으로 알아봤을 것이다. 이렇게 비싼데도 백화대학교를 다닌 이유는 한국문화원과 가까워서 수업 끝나고 아침 일찍 수업을 듣고 바로 출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파견 교원이 아니니 굳이 백화대학교에 계속 다닐 이유가 없었다.


어느 학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하노이 인문사회대학교(VNU University of Social Sciences and Humanities, Hanoi)로 정했다. 인문사회대학교 학비는 1:1 수업이 한 시간에 250,000동이었고 시간은 주 3일 하루 3시간으로 적당했다. 게다가 우리 집에서 많이 멀지 않았고, 바로 오는 버스도 자주 있었다.


그렇게 학교를 결정하고, 학교에 어학연수 비자를 받고 내년부터 베트남어를 공부하길 원하며 필요한 서류가 지 안내해 달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답장은 바로 왔다. 어학연수에 필요한 서류는 여권과 여권 사진, 신청서와 CV(이력서)였다. 필요한 서류를 모두 준비하고 학교에 갔다.


그런데 헛, 이럴 수가. 서류를 내고 간단하게 베트남어로 질의응답하고 그걸로 끝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웬 시험지를 내미셨다. 백화대에서는 레벨테스트를 그냥 질의응답으로 간단하게 했었기에 여기도 그럴 줄 알았는데, 베트남어 공인 시험인 ABC시험 문제지를 레벨테스트로 풀라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배운 거 복습 좀 하고 올걸. B1까지 공부했는데(베트남어 수준은 A1부터 C2까지 있다. A1, A2는 초급, B1, B2는 중급, C1, C2는 고급이다.) 다 잊어버려서 또 B1 수준이 나오면 어떻게 하지? 나는 B2 공부하고 싶은데...'


역시 어려웠다. 어휘와 문법, 읽기, 쓰기 문제가 있었는데 어휘와 문법은 반 정도만 맞았고 읽기는 거의 찍어서 맞혔다. 읽기는 '아 이 글은 베트남의 명절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구나' 정도만 이해할 수 있었다. 다행히 쓰기는 내가 아는 문법과 단어를 총동원하여 그럭저럭 써 냈다.


"음... 문법하고 어휘는 많이 틀렸어요. 그런데 쓰기는 정말 잘 썼어요. 문법과 어휘는 B1수준이지만 쓰기는 B2수준이네요. 이 정도면 B2를 공부할 수 있어요."


휴, B1이 나왔다고 해도 내가 공부를 마친 책이니 수업 시작 전에 복습 열심히 하고 B2를 공부하고 싶다고 우기려고 했는데 안 우겨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저는 지금 취업비자로 일하고 있고 12월 31일에 끝인데요, 한국으로 귀국했다가 내년 1월 16일에 다시 하노이에 들어오고 싶어요. 가능한가요?"

"어학연수 비자는 귀국하고 나서 최소 3주가 지나야 돼요. 그리고 1월에는 설날이 있는데 베트남 사람들은 설날에 2주 이상 일을 안 해서 2월에 시작할 수 있어요."


이렇게 해서 2월에 수업을 시작하기로 정했다. 어학연수 비자 신청 절차는 간단하다. 학교에 서류와 여권 사진을 제출하면 학교에서 초청장을 준다. 그 초청장을 받아 주한 베트남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으면 된다. 1월 한 달 동안 한국에서 푹 쉬고 태국 치앙마이 여행도 다녀왔다. 베트남은 워낙 행정 처리가 느린 데다가 1월에는 설날이 껴 있어서 학교가 초청장을 늦게 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설날 전에 초청장이 나왔고 2월에 바로 베트남에 입국했다.


입국하자마자 엄청난 습기가 나를 반겼다. 정말 하루 종일 장대비가 내리거나 안개비가 내렸고, 이런 날씨가 입국하고 1주일이 넘게 계속됐다. 제습제와 에어컨을 틀어도 집안 습기가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 만에 온 베트남 집은 한국에 있는 집보다 편했다. 나만의 공간, 진짜 나의 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침대에 먼지가 쌓이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집주인이 침대 커버를 예쁜 걸로 갈아줬다. 집주인은 정말 고맙게도 나날이 올라가는 하노이 월세에도 내 월세를 올리기는커녕 내가 한국에 있는 1월 한 달 동안 집세는 반으로 깎아 줬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집주인 선물을 사 올 걸 그랬다.


너무 습했던 날 하노이 서호 호수. 원래 저 안개 너머 건물들이 다 보여야 하는데...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B1 복습을 하고, 학교 수업 외에 베트남어 과외도 따로 구했다. 나는 최종적으로 베트남어 공인 시험인 ABC 시험에서 고급 1인 C1에 합격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공부하는 건 ABC 시험 준비수업은 아니었다.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교재 공부 외에 시험 연습도 필요했기 때문에 따로 과외를 하면서 준비하기로 했다. 과외 선생님은 작년에 백화대에서 가르쳐 주셨던 텀 선생님이신데, 잘 가르쳐 주시고 부담 없이 편하게 베트남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셔서 부탁했다.


지난주에 인사대 수업을 시작했고, 이번 주부터는 과외+학교 수업을 같이 듣는다. 예상했던 대로 어렵고 배울게 많긴 하지만, 오랜만에 온전히 학생 신분으로 공부를 하니 재미있고 설레기도 한다. 어학연수는 딱 4개월만 할 것이다. 그 이상 하는 건 나도 재정적으로 부담이 될 것 같고, 하반기에 박사 과정도 준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33살(만 나이가 없어졌으니^^), 젊지만 어학연수를 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이다. 재단에서 받은 퇴직금을 다 어학연수에 쓰고 있고 돈도 못 버는데 4개월 짧은 기간 안에 목표하는 고급 수준을 달성할 수 있을지 걱정은 되지만, 살면서 한 번은 해 보고 싶었던 어학연수를 하게 되어서 기분은 좋다!


내가 공부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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