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어 공부가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10번 중에 한두 번 정도 재미있달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중고급 수준 학생들이 "한국어는 갈수록 어려워져요!"라고 불평했는데 지금 그 심정을 100% 이해한다. 초급 때는 그래도 지금보다는 재미있었다. 베트남어에 대해 모르는 게 많으니, 아니 거의 모르니 길을 걷다가 간판에 내가 아는 단어가 보이거나 카페에서 옆 자리 베트남 사람들 대화를 듣다가 아는 말이 들리면 뿌듯해져서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간판을 보면 내가 모르는 단어 천지인 거 같고, 대체 옆 자리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서 답답하고 자신감이 떨어진다. 물론 그런 걸 다 알면 내가 베트남 사람이지 한국 사람이겠냐 싶지만, 그래도 고급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서 욕심이 많은 것 같다.
지금은 세 명의 선생님께 베트남어를 배우고 있다.두 분은 하노이 인사대 선생님인데, 팀티칭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 나머지 한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구한 ABC(베트남 교육부 인정 베트남어 시험 이름) 시험 대비 과외 선생님인데, 작년에 하노이 백화대에서 이 분에게 베트남어를 배웠다. 인사대에서는 1주일에 세 번, 과외로는 1주일에 한 번 베트남어를 배우고, 수업이 없는 날에도 약속이 없으면 거의 하루종일 공부한다. 살면서 언어 공부를 이렇게나 열심히 해 본 적이 있나 싶다. 퇴직금을 그대로 어학연수에 쓰고 있는데 시험에 합격 못하면 돈을 날렸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서 더 열심히 하고 있다. 안 그래도 따분하게 반복되는 일상인데 선생님이 세 분이라 좋다. 세 분 모두 가르치는 방법이나 말하는 스타일이 달라 수업이 지루하지는 않다. 그리고 다행히도 세 분 모두 정말 잘 가르쳐 주신다.열정도 넘치셔서 수업 시간을 선생님의 재량으로 20분 초과한 적도 몇 번 있다. 모두 시간 강사시라 시간이 돈인 분들인데 말이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아무리 잘 가르쳐 주셔도 베트남어는 어렵다! 초급 수준이었을 때는 성조와 발음이 가장 어려웠다. 베트남어는 성조가 'á, à, ạ, ả, ã, a' 이렇게 6개나 있다. 그리고 비슷한 발음의 글자와 단어도 많다. 예를 들면, 영어 알파벳으로 'a'는 베트남어 글자로는 단모음 'ă'와 장모음 'a'가 있다.(사실 아직도 발음 차이를 잘 모르겠다.) 'â'는 '[아]가 아니라 '[어]' 발음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trong'이라는 단어 하나를 써도 이게 'trong'인지 'trọng, trông, tróng, trống, tròng'인지 헷갈려서 짜증이 난 적이 많았다. 또 배운 발음과 현실 발음이 다른 경우도 많다. '술'이라는 뜻의 'rượu'는 발음 규칙대로 발음하면 [즈어우]인데 실제 발음은 [지에우]이다. 이래서 처음에는 발음이 제일 어려웠는데, 이제 발음과 성조는 익숙해진 편이다.
지금 문제는 한국어이다! 내 안의 한국어가 베트남어 공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전문 용어로 하면 '모국어에 의한 간섭 현상'이다. 한국어와 베트남어는 특징이 너무 달라서 베트남어로 말하거나 쓸 때 많이 틀린다. 쓰기 숙제로 항상 에세이를 쓰고 있는데,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일단 한국어 식으로 쓰면 거의 틀린다. 선생님들이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빨간펜을 죽죽 그어 놓은 문장들은 거의 그런 문장이다. 틀린 걸 복습하면서도 '한국어로는 이렇게 표현하지 않는데', '아 이거 한국어로 번역하면 이상한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예를 들어, 최근에 'Công ty(회사) chúng tôi(우리) hơi(조금) bận(바쁘다) vì(때문에) chuẩn bị(준비하다) lễ hội(행사)'라는 문장을 썼는데 빨간펜이 좍좍 그어졌다. '우리 회사는 행사 준비 때문에 바쁘다'라는 문장인데, 베트남어로는 '우리 회사'가 아니라 '우리의 회사'라고 써야 해서 'Công ty của(-의) chúng tôi'라고 써야 하고, '행사 준비'가 아니라 '행사를 위한 준비'라고 써야 해서 'chuẩn bị cho(-을/를 위한) lễ hội'라고 써야 한단다. 그리고 '바쁘다'라는 뜻의 'bận'은 주어가 사람일 때만 쓸 수 있다. 이 문장의 주어는 사람이 아닌 '회사'라서 틀린 문장이라고 한다. 이 문장은 'Mọi người(모든 사람들은) ở công ty của chúng tôi(우리 회사의) hơi(조금) bận(바쁘다) vì(때문에) chuẩn bị(준비하다) cho lễ hội(행사를 위한)' 이렇게 고쳐졌다.
또 베트남 사람들은 자주 사용하지만 한국어로 번역하면 어색한 표현이 많다. 대표적으로 'Để(놓다, 두다) em(동생) gọi điện(전화하다) cho chị(언니에게).' 이런 문장인데, 이 문장을 한국어로 직역하면 '제가 언니한테 전화하게 두세요.'이고, 의역하면 '제가 언니한테 전화할게요.'이다. 베트남어로는 예의 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한국어로 내가 무엇를 하겠다고 할 때'제가 -하게 두세요.' 이런 말은 예의가 없어 보이거나 굉장히 어색하지 않은가.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인데도 입에 영 붙질 않는다.
사실 나의 석사 졸업 논문 주제가 베트남어와 한국어의 어휘적 특징과 문법적 특징을 대조 분석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베트남인 한국어 중급 학습자의 쓰기 오류 분석을 통한 한국어 쓰기 능력 향상 방안'인데 한국어와 베트남어의 어휘적 문법적 특징을 대조 분석했다. 그래서 한국어와 다른 베트남어의 특징은 꽤 알고 있었는데도 여전히 한국어 때문에 베트남어 공부가 어렵다.
선생님께 검사 받기 전 쓰기 숙제. 이렇게 보면 잘 쓴 숙제 같지만...
무수한 수정 흔적
베트남어 공부에 어려움을 많이 느끼다 보니 말도 잘 안 나온다. 말을 할 때 '어, 이게 맞는 표현인가?' 싶어 말문이 자꾸 막힌다. 지난주에는 과외 때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에세이'를 읽고 글에 대한 내 의견을 말하는 수업을 했는데 말이 너무 안 나와서 선생님이 집에서 말하기 연습을 하라고 하셨다. 아래 사진이 읽기 지문인데, 뒤에 한 장이 더 있다. 이렇게 읽기 지문은 길지만 사실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아서 다 이해했다. 그리고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내 의견을 미리 쓰는 쓰기 숙제를 했었다. 그런데 숙제에 무수한 빨간펜 흔적을 보고 기가 죽어서 막상 선생님이 글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 보라고 하니 말문이 막혔다.
스마트폰 사용 실태에 대한 에세이
정말 고급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한 것 같다. 내가 가르쳤던 외국인 학생들 중 한국어 고급 수준 학생들이 얼마나 대단한 학생들이었는지 제대로 실감 중이다. 그래도 베트남어 공부가 어렵고 힘들긴 해도 아직 지루하진 않아서 다행이다. 아자아자 파이팅... 이상 징징거리는 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