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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Apr 02. 2023

냄새나는 우리 동네

하노이 유학 생활 4

나는 우리 집 바로 앞에 있는 'Cơm bình dân(껌빙전)' 식당을 정말 좋아한다. 껌빙전은 식당 이름이 아니라 손님이 직접 선택한 반찬과 밥과 국을 먹을 수 있는 베트남 식당 종류 중 하나인데, 이 식당만 그런 건지 다른 식당도 그런 건지 식당 이름은 따로 없다. 껌빙전은 한 그릇에 30,000동(약 1,600원)으로, 값은 싸지만 양은 많다. 또 원하는 고기와 채소를 넉넉히 먹을 수 있으니 영양적으로도 좋다. 마치 급식을 먹는 느낌이랄까? 


우리 집 앞 껌빙전은 인기가 많아서 점심시간에 가면 줄을 서야 한다. 그래서 나는 손님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 보통 이른 저녁이나 늦은 점심에 간다. 이 껌빙전은 아저씨 한 분, 아주머니 두 분, 할머니 한 분이 일하신다. 할머니와 아저씨는 음식 포장과 자리 정리를 담당하시고 아주머니 한 분은 설거지를 하시며, 다른 한 분은 손님의 주문을 받아 음식을 그릇에 담아 주신다. 나는 그중 음식을 그릇에 담아 주시는 아주머니가 좋다.


"Xin chào chị! Em sẽ ăn đây." (안녕하세요. 저 여기서 먹고 갈 거예요.)


내가 이렇게 말하고 들어가면 그 아주머니는 항상 나를 활짝 웃으며 맞아주신다. 원래 친절하신 분 같긴 한데, 다른 손님들한테보다 나한테 유독 잘 웃어주는 것 같다. 언젠가 한 번은 하필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 가서 줄을 서야 했는데, 앞사람들에게는 줄곧 무표정으로 응대하더니 내 차례가 돼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며 주문을 받으시는 것이었다. 음식도 맛있지만, 아주머니의 미소 응대가 좋아서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도 껌빙전에 가서 음식을 포장했다. 국을 싸 주시려는 할머니께 국 빼고 고추가 송송 들어가 있는 느억맘만 달라고 했다. 할머니가 나한테 매운 걸 좋아하냐고 물으셔서, 아주아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내가 매운 걸 좋아한다고 해서 그런지 베트남어를 할 수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대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우리 집 앞 껌빙전도 자주 가고, 거기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근처의 다른 껌빙전에도 간다. 다른 껌빙전은 할머니께서 음식을 주시는데, 처음에는 이 할머니가 계속 소리를 치시고 인상도 화가 난 인상이라 무서웠다. 음식을 다 먹고 계산하는데 할머니가 나한테 큰 소리로 뭐라고 말하셨다. '뭐지? 나 뭐 잘못했나?' 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말씀해 달라고 하자 더 큰 소리로 다시 말씀하셨다.

 

"Em nói tiếng Việt tốt!"(너 베트남어 잘한다고!)


아하하. 날 칭찬해 주시는 거였는데 괜히 겁을 먹었던 것이었다. 어느 날은 그 껌빙전에서 일하는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내 음식을 포장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Chị  người Nhật Bản à?"(일본 사람이세요?)

"Không. Chị là người Hàn Quốc."(아니, 나는 한국 사람이야.)


내가 대답하자 여자애는 수줍게 웃으며 포장한 음식을 내밀었는데, 그 모습이 참 귀여웠다. 인상은 무섭지만 칭찬을 잘하시는 할머니와 귀여운 직원이 있는 식당이다. 


Cơm bình dân



언젠가는 배가 아파 'Cháo'라고 하는 베트남 죽을 먹으러 집 근처 죽집에 갔다. 나한테 '죽'은 배가 아플 때 먹는 음식이고, 하노이에서 배가 아팠던 적이 별로 없어서 베트남에서 'Cháo'를 먹은 적이 그전에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배가 아파 아무것도 먹기 싫었는데, 그래도 약을 먹어야겠기에 처음으로 'Cháo'를 먹었다. 사장님인 아저씨는 내가 들어가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순간 '운영 시간이 아닌데 들어간 건가'하고 착각할 정도로 굳은 얼굴로 주문을 받았고 죽을 만들어 줬다. 아마 내가 외국인이라 당황하셨던 것 같다. 메뉴를 보니 종류가 너무 많아 대충 그냥 소고기 죽을 달라고 했는데, 정말 맛있었다. 가격은 껌빙전과 똑같이 30,000동인데, 음식의 질은 한국의 죽 브랜 '본죽'과 비슷했다. 아니, 가격을 생각하면 더 좋은 것 같았다. 그 뒤로 'Cháo' 집도 자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방문한 날, 첫날과 달리 아저씨는 나를 미소로 응대해 주셨다. 그리고 죽을 주면서 나에게 물으셨다.


"Em  người Nhật Bản à?"(일본 사람이에요?)


음... 왜 그럴까? 내가 일본 사람처럼 보이나? 이 동네에는 한국 사람보다 일본 사람이 흔한가? 여기서 1년 가까이 살았지만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한국 사람이라고 대답하자 아저씨는 '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Cháo



집으로 가는 골목 입구에는 바나나 조금과 군고구마, 군옥수수 등을 파는 아저씨가 있다. 나는 집에 바나나가 떨어지면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여기에서 바나나를 산다. 그런데 가격이 참 재미있다. 어떨 때는 6개 달려 있는 한 송이가 1만 5천 동(약 700~800원) 정도이고 어떨 때는 1만 동이다. 언젠가는 바나나가 딱 두 개만 남아 있었고, 그걸 사려고 지갑을 꺼내는데 아저씨가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바나나를 공짜로 주시다니, 참 착한 아저씨이다. 아저씨는 바나나를 건네주며 나한테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언제 귀국하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6월에 귀국할 거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나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베트남어를 정말 잘한다고 칭찬했다. 베트남에 살면 '얼마예요?', '이거 주세요.', '저는 한국 사람이에요.' 이 정도만 베트남어로 말해도 베트남어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사실 아주 기본적인 회화인데. 그래도 이런 칭찬을 들으면 기분은 정말 좋다.



베트남의 현지인 주거 지역 어느 거리나 다 마찬가지로 우리 집 근처에도 식당이 참 많다. 작년에 아침 출근길에 항상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한 번도 집 근처 식당에 간 적이 없었다. 슈퍼에 가거나 길거리에서 과일 몇 번 사는 게 전부였다. 세종학당에서 근무할 때는 저녁 수업이 6시부터 8시까지 항상 있어서 출근을 좀 늦게 하는 대신 오후 8시에 퇴근했다. 아침하고 저녁을 식당에서 사 먹기가 애매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일찍 일어나는 대신 일찍 자는 편이다. 그래서 오전 6시부터 식당 문을 여는 대신에 저녁에 일찍 문을 닫는다. 내가 퇴근하는 시간이면 식당들이 다 문을 닫는 분위기였고, 아침은 집에서 간편하게 먹지 굳이 나가서 사 먹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쉬는 날에는 집에서 좀 떨어진 맛집을 찾아다녀서, 집 근처 식당에 갈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직장인이 아닌 학생이고 수업 시간도 오후 2시부터 4시 반까지라 저녁을 집 근처 식당에서 먹을 때가 많다. 이렇게 싸고 맛있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작년에 아침에라도 가끔 사 먹을 걸 그랬다. 이렇게 동네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교류를 하다 보니, 정말 이 동네 토박이가 된 느낌이다. 작년에는 그냥 현지인들 사이에 있는 이방인 느낌이었는데 말이다. 길도 좁은데 차도 많이 다니고 길거리 시장도 있어 복잡하고 시끄럽지만, 맛있는 음식 냄새 사람 냄새가 솔솔 풍기는 우리 동네가 나는 정말 좋다.


우리 동네 들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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