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문화원 세종학당 2학기
주베트남 한국문화원 세종학당은 9월 1일에 학기가 시작한다. 이번에도 학기 시작 전에 비자가 안 나와서 지난번과 같이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시작했다. 베트남의 다른 학당과 달리 한국문화원은 한국에서 취업비자를 받고 베트남으로 가야 하는데, 하필 현재 베트남은 행정체계와 법을 모두 개편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비자 취득 관련해서도 담당 부서나 필요 서류, 절차 등이 바뀌었는데, 담당 공무원도 정확한 업무 파악이 잘 안 되고 있었고 관련된 사항이 계속 바뀌고 있어, 언제 비자를 받을 수 있는지 계속 기다리고만 있어야 했다.
지난 2021년 파견 당시는 코로나19와 그 외 베트남의 행정적인 문제로 파견이 1년 3개월이나 늦어졌는데, 이번에는 제발 이번 학기가 종강하기 전까지는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세종학당 교원들은 대면 수업이 원칙이나, 나처럼 비자 문제나 파견국의 현지 상황 때문에 파견이 늦어지는 교원은 온라인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
재택근무로 온라인 수업을 한다고 하면 일부는 "집에서 일하니까 출퇴근도 안 하고 눈치 볼 사람도 없고 좋지 않아?"라고 하지만, 나는 온라인 수업이 싫다. 물론 해외 유학원 수업이나 인터넷 플랫폼을 통한 온라인 수업을 올해 8월까지 3년 가까이 하기는 했지만, 그건 애초부터 온라인 수업용으로 개설한 수업이다. 세종학당 수업은 대면 수업을 해야 하는데 온라인 수업을 하는 것이니 이야기가 다르다.
온라인 수업을 하면 학생들이 집중을 해서 수업을 듣는지, 제대로 썼는지, 이해를 잘하고 있는지 확인이 어렵다. 비디오를 반드시 켜라고 해도 안 지키는 학생들이 많고, 어떤 학생은 이동 중이다, 퇴근을 못 해서 회사에서 수업을 듣는다 하니, 화면을 억지로 켜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분명 조용하고 독립된 환경에서 수업을 들어와야 한다고 공지했지만, 일이 바빠 집에 아직 못 갔다는 학생과 회사에서라도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학생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기가 어렵다. 비디오를 켜고 수업을 듣는 학생도 쓰기 활동을 시켰을 때 제대로 썼는지 확인이 어렵다. 예전에는 본인들이 쓴 것을 실시간으로 나에게 메시지로 보내라고 했는데, 일일이 쓰기 결과를 확인하니 수업 시간을 너무 잡아먹었다. 수업 후에 쓰기 결과를 패들렛(Padlet)에 공유하라고 하거나 숙제로 해서 사진 찍어 메시지로 보내라고 하면 적극적으로 공부하는 일부 학생만 했다. 대면 수업이면 모두 쓰기 활동을 하게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한국보다 불안정한 베트남 인터넷 환경 상 자꾸 인터넷이 끊기는 학생도 있고, 말하기를 하는데 학생의 마이크 음질이 심하게 안 좋아 듣는 다른 사람 귀가 아플 정도인 경우도 있다. 학생들도 온라인 수업이 불편하다고, 언제 대면 수업을 시작하냐고 했다. 우리 학당의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대면 수업을 하는데 나만 온라인 수업을 하니, 온라인 수업을 불편해하는 학생들에게 괜스레 미안했다.
이런 온라인 수업의 단점과는 별개로, 학생들이 공부에 뜻을 가지고 열심히 수업을 들어서 오랜만에 수업에서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한동안 성인 학생들은 한국에서 생활과 공부와 일에 치여 학습 의욕이 떨어졌거나, 공부보다는 비자 때문에 혹은 허울뿐인 학위를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만 가르치다 보니, 수업을 하며 '이게 교육인가 시간 때우기인가. 나는 선생이 맞나.' 하는 생각에 위축됐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양심의 가책도 느꼈었다.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해서 교실에 갔는데 한두 명만 출석한 교실에서 억지로 웃으며 수업을 하며 약간의 자괴감도 느꼈었다. 그런데 내 말을 열심히 따라 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바로바로 질문하고, 열심히 또박또박 글씨를 써서 메시지로 숙제를 제출하는 학생들을 보니 '그래, 이게 교육이었지. 나 선생님이 맞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한국문화원 운영요원이신 번 선생님으로부터 지금은 취업비자를 한국에서 받는 것은 불가능하고, 일단 단기 비자로 베트남에 와서 취업비자로 전환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류 중 하나를 한국이 아닌 베트남에서 발급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서류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베트남에 가자마자 그 서류를 발급받으면 바로 취업비자로 전환할 수 있다고 했다.
학생들도 빨리 대면 수업을 하고 싶다고 하고, 집도 예전에 살던 집에 그대로 들어가기로 했는데 집주인이 나를 위해 방 하나를 계속 남겨 두고 있는 상황이었고, 베트남에 가서 해야 할 일도 있었기에 바로 단기 비자를 받은 후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날로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갑자기 급해졌다. 수업도 계속하는 중에 짐도 싸고 차를 정리하니, 출국 전 가족 외 사람들을 만날 시간조차 없었다.
하필 내가 출국할 수 있는 날 비행기표가 저가항공인 비엣젯항공만 남아 있었다. 대형항공사 비행 편은 1주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 빨리 가는 게 중요하니 그냥 비엣젯을 타고 갔지만, 아쉬웠다. 내 돈 주고 가는 것도 아니고 베트남에서 살 목적으로 가는 거라 짐도 많은데... 결국 무게가 초과되어 추가수하물 비용을 냈다.
아무튼, 다행히도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오래 기다리지 않고 베트남에 도착했다!
베트남에 입국하고 다음 날 한국문화원으로 출근했다. 작년에 하노이에 여행 왔을 때 한국문화원에 들렀을 때도 내가 여기에서 다시 일할 줄 상상도 못 했는데... 정말 인생은 재미있는 것 같다. 다시 세종학당 파견교원으로 문화원에 출근하니 감회가 너무 새롭고 마음이 들떴다. 밝게 웃으며 문화원 현지 직원들에게 웃으며 들어갔는데, 직원들도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고 환영해 주셨다.
우리 주베트남 한국문화원 세종학당에는 운영요원이신 번 선생님, 현지 교원 두 분, 파견교원은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이 있다. 파견교원 중 한 분인 최 선생님은 나와 고향도 같고 이름도 비슷한 분이다. 그리고 하노이에 오래 사신 분이고 내가 2021년 파견교원일 때부터 알고 지낸 분이라 친했다. 이번에 내가 문화원으로 파견 가게 되었다고 소식을 전했을 때 같이 일하게 되어서 좋다고 기뻐해 주셨다. 다른 한 분은 윤 선생님으로 1년 전 하노이에 여행을 왔을 때 같이 식사한 적이 있어 안면이 있었다. 번 선생님은 지난번 운영요원이셨던 짱 선생님이 퇴직하시고 새로 오신 분이다. 내가 하노이를 떠났던 2년 반 전보다 하노이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문화원과 집 근처는 크게 바뀐 게 없어 보인다. 직장도 그대로, 집도 지난 파견 때와 똑같은 집에 살고 동료도 익숙하니 정말 모든 게 익숙했다. 그래서 좋다. 나는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더 좋아한다.
첫날 오전에는 취업비자 신청에 관련한 일을 좀 하고 점심에 번 선생님, 최 선생님, 윤 선생님과 회식을 했다. 번 선생님은 정말 일이 많은 데다가 내 비자 관련해서 복잡한 문제를 담당하시는 만큼 스트레스가 많으실 텐데도 최선을 다해 일하시고, 성격도 너무 착하시다. 최 선생님과 윤 선생님은 이제 막 하노이에 온 나를 계속 챙겨 주시고 필요한 것을 주시려고 하셨다. 두 분 다 성격이 좋으시고 친절하셔서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분들이라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대면수업을 시작했다. 나는 학생들이 너무 반가웠는데, 어떤 학생은 격하게 반가워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줍게 인사했다. 보아하니 온라인으로만 보다가 직접 만나서 부끄러운 것 같았다.
이렇게 되도 않는 농담을 던지니 학생들이 모두 와하하 웃으며 "선생님, 더 예뻐요!"라고 말해 주었다. 온라인 수업 때는 많은 학생들이 비디오를 켜지 않아 이런 유머를 던져도 학생들이 알아들은 건지, 유머가 통한 건지 몰라서 뻘쭘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렇게 얼굴 보고 수업을 하고 학생들 반응이 다 보여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