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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r 25. 2021

후에(Huế)에 적응하기 1

2017년 후에 세종학당 1학기

후에(Huế)는 옛 베트남 왕조의 수도였던 도시이다. 다낭이나 호찌민, 하노이같이 아주 유명하지도 많이 발전하지도 않았지만, 후에는 다른 어떤 도시에도 없는 후에만의 고풍스러운 옛 멋을 간직한 도시이다. 나는 후에만의 그런 멋스러움이 정말 좋았다. 게다가 나는 원래 도시보다 한적하고 여유 있는 시골 분위기를 더 좋아했기에, 도시와 시골 중간쯤에 있는 후에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2년 동안 베트남에서 사는 거 힘들지 않았어요?’라고 물으면 나는 항상 ‘저는 정말 좋았어요. 빨리 다시 가서 살고 싶어요. 특히 제가 살았던 후에로 가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후에(Huế)를 대표하는 후에 왕궁 정문


하지만 처음부터 내가 후에라는 도시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당연히 파견 초기에는 낯선 나라와 생활에 적응하는 게 힘들지만, 베트남 후에에 적응하는 게 몽골 울란바토르에 적응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파견 초기에는 ‘나 정말 내년 12월까지 베트남에서 일할 수 있을까? 1년만 하고 계약 연장 안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숨만 쉬어도 지치는 찌는 듯한 더위, 길가에 돌아다니는 새끼 돼지 같은 쥐, 인도 도로 상관없이 달리는 오토바이, 그리고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 등등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집이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집이 없었다. 집을 구하기 전까지 2성급 호텔에서 지냈다. 왜냐하면 후에에 빈집이 나온 게 없었기 때문에... 후에는 호찌민, 다낭, 하노이와 다르게 부동산이 없다. 집을 구하는 방법은 어디 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알아보거나 아는 사람을 통해 ‘알음알음’ 구하는 것이다. 현지인 선생님이신 뚜언, 화이안, 떰안 선생님 등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지만, 결국 그린 호텔에 머무는 동안 집을 못 구했다. 그린 호텔은 4성급 호텔이라서 비쌌기 때문에 우리는 좀 여유 있게 집을 구하려고 2성급 호텔에서 한 달 살기로 했다.


호텔은 종업원도 친절했고 발코니도 있어서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는 건 좋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호텔이기 때문에 빨래도 내 마음대로 못하고, 옷을 포함해서 짐은 이민 가방과 케리어에 보관하다가 필요하면 꺼내 입고, 당연히 요리도 못했다. 평소에 요리를 좋아하지는 않는 사람도 직접 해 먹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게다가 여기는 베트남인데. 거의 항상 아침과 저녁을 호텔 바로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베트남식 만두를 먹거나 쌀국수, 빵을 사 먹었다. 그러다가 정말로 한국 음식이 먹고 싶으면 조금 거리가 있지만 한국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기도 했다. 다행히도 한국식 편의점이 있어서 거기에서 한국 컵라면은 사 먹을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살았던 2성급 호텔 방. 발코니는 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바깥 경치를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다. 경치라고 해봤자 오토바이와 가게들이었지만.


한 달 간의 2성급 호텔 생활은 후에 외국어대학교에 파견된 코이카 단원의 도움으로 끝이 났다. 코이카 선생님께서 본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4층짜리. 아파트보다는 빌라에 가깝다) 4층에 빈집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는데, 학당하고 걸어서 15분 거리였으며 주인이 새로 리모델링을 해서 시설이 좋다고 했다. 코이카 선생님네 집주인과 빈집 집주인이 서로 자매라 쉽게 소개받을 수 있었다. 그 집에 가 보니 집주인이 집을 깔끔하게 꾸며 놨고 에어컨도 새 것이어서 좋았다. 호텔 에어컨은 오래돼서 퀴퀴한 냄새가 났었다. 월세는 후에 평균 월세에 비해 비쌌는데(어딜 가나 외국인들에게는 현지인에게보다 비싼 월세를 받는다) 그래도 나는 그 집이 마음에 들었고 더 이상 떠돌이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아서 계약을 했다. 김 선생님은 다른 집을 찾아보다가 결국 못 찾아서 괜찮은 집이 나올 때까지 나와 같이 살기로 했다. 다행히 새 집은 방도 두 개고 각 방에 에어컨과 침대가 따로 있어 둘이 살 수 있었다.


집은 다행히 구했는데, 그다음 돈 문제가 남아있었다. 집주인은 6개월 월세를 계약금으로 한꺼번에 내길 원했다. 사실 어딜 가나 집주인들은 계약할 때 6개월이나 1년 치 월세를 한꺼번에 받고 계약을 한다. 몽골에서도 그랬고, 베트남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6개월 월세도 한꺼번에 낼 돈이 없었다. 생활비를 현지 계좌로 넣어 주는 코이카 단원과 달리, 세종학당 파견 교원은 월급을 한국 계좌로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베트남에 계좌를 만들고 조금 수수료가 들더라도 한국에서 베트남 계좌로 돈을 이체하기로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계좌 개설이 바로 되지만, 베트남은 신청 후에 최소 2주는 기다려야 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베트남에서 당장 쓸 돈을 출국하기 전에 넉넉하게 달러로 가져왔고, 현지에서 계좌를 개설할 때까지 가져온 달러를 환전해서 쓰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 정도면 계좌 만들고 한국 통장에서 돈 이체할 때까지 충분히 살겠지’ 하고 가져온 달러는 세 달 생활비였다. 이미 호텔 생활을 하면서 상당 부분을 썼고, 원래 가지고 온 돈도 당연히 6개월 월세를 낼 돈은 못 됐다. 이 돈을 어떻게 마련했냐면, ATM에서 비자와 마스터 카드로 무조건 출금했다. ATM에서 한 번에 출금할 수 있는 돈은 최대 2백만 동((VND. 베트남 화폐 단위)에서 3백만 동이었다(ATM마다 달랐다). 3백만 동은 한국 돈으로 약 15만 원, 우리가 내야 할 돈은 한국 돈으로 약 200만 원. 결국 Visa와 Master card가 되는 ATM을 찾고 거기에서 돈을 뽑고, 너무 많이 뽑아서 막히면 또 다른 ATM에서 돈을 뽑았다. 돈을 뽑는 것도 고생이지만 무엇보다도 수수료가 너무 많았다. 한 번 뽑을 때마다 한국 돈으로 약 2,500~3,000원 가까이 수수료가 붙었다. 결국 4만 원 가까운 수수료를 내고 돈을 뽑아서 계약금을 낼 수 있었다.


집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는 현지 은행 계좌를 개설했다. 우리는 베트남의 대표 은행 중 하나인 Vietcombank에서 달러 계좌를 만들었다. 먼저 여권과 계좌 보증금 10달러를 들고 은행으로 직접 가서 계좌와 카드를 신청해야 했다. 베트남 은행은 번호표를 뽑는 시스템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계좌를 처음 신청할 때는 번호표를 뽑지 않고 바로 담당 창구로 가야 했다. 은행 점심시간이 1시 30분까지였는데, 우리는 1시 30분이 되자마자 통장을 개설하려고 1시부터 가서 기다렸다.

Vietcombank. (출처: Vietcombank 홈페이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일찍 가서 기다리는 건 헛수고였다. 1시 30분이 되자 주변에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는데, 담당 직원이 자리에 앉자마자 손을 빨리 창구 안으로 내미는 사람부터 은행 업무를 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끝나면 다음 사람이 베트남어로 뭐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비집고 들어왔다. 우리는 맨 앞에 있으면서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그걸 담당 직원이 안타깝게 봤는지 자기 먼저 하겠다고 몸싸움하는 베트남인들을 제치고 나를 콕 찍어서 앉으라고 했다. 힘들었지만 간신히 계좌 개설을 완료했고, 2주 뒤에 ATM에서 돈을 출금할 수 있는 체크카드와 함께 계좌를 받았다. 통장이 아니라 계좌를 받았다. 무슨 소리냐면, 통장이 없었다. 보통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면 통장도 주지 않나? 그런데 여기는 내 계좌번호와 인터넷뱅킹 비밀번호(확실하지는 않다. 사용해 본 적이 없다)가 적힌 종이 카드를 줬다. 내가 통장을 안 신청하고 인터넷 뱅킹만 신청했었나?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내가 필요한 건 계좌였으니 상관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종이 카드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거였다. 은행에서 달러를 인출할 때마다 은행원에게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이게 없으면 통장에 돈이 있어도 못 뽑는다. ‘중요한 건데 왜 종이 카드로 주지’ 싶었다.


(좌) Vietcombank 현금 카드 / (우) Vietcombank에서 준 계좌번호와 비밀번호가 있는 종이 카드


어쨌든 달러 계좌 개설을 마치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부탁해서 내 베트남 계좌로 달러를 보내 달라고 했다. 내가 먼저 12월까지 쓸 만큼 생활비를 내 한국 통장에서 부모님 통장으로 이체하고, 부모님이 그만큼을 내 베트남 계좌로 보내 주셨다. 한국에서 베트남 은행으로 달러를 보내면 수수료가 정말 많이 드는데, 다행히도 그때 아빠가 사용하는 농협에서 해외 송금 수수료 이벤트를 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송금을 보낼 수 있었다.


이건 내가 생활비를 마련한 방법이고, 현지 생활비를 마련하는 방법은 파견 교원마다 다르다. 어떤 파견 교원은 아예 1년 생활비를 달러로 환전해서 입국할 때 가지고 온 사람도 있다. 또 어떤 교원은 VISA, Mastercard 신용·체크카드만 사용한다. 현금이 필요하면 수수료를 좀 물더라도 ATM에서 인출할 수 있으니까.      

아무튼 이렇게 통장도 개설하고 집도 계약하고 차근차근 후에에 적응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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