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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r 30. 2021

후에(Huế)에 적응하기 2

2017년 후에 세종학당 1학기

① 우리 동네


이사한 집은 꽤 마음에 들었다. 일단 후에 세종학당과 가까운 게 제일 좋았다. 그리고 주변에 흐엉 강과 공원이 있었는데, 우리 집이 4층이고 주변에는 다 주택이나 낮은 건물만 있어서 창밖에서 보는 경치가 아주 좋았다.

집 발코니에서 찍은 경치. 날씨가 좋을 때 찍으면 정말 예쁘다


집 앞에 물 가게가 있어서 18L짜리 물통을 배달시킬 수도 있어 편했다(베트남에서는 물을 항상 사 마셔야 했다). 그리고 물 가게 옆에는 구멍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전화 선불카드도 살 수 있고 가끔 갑자기 맥주가 먹고 싶으면 사 마실 수 있어서 자주 갔다. 그리고 집 근처에는 간편한 베트남 음식을 파는 맛집이 있었는데, 위생은 정말 별로였지만 싸고 맛있어서 거의 1주일에 두 번은 거기에서 반미(bánh mì)를 사 먹었다. 반미 하나에 1만 동이었는데, 1만 동은 한국 돈으로 하면 500원이다. 반미 하나에 다른 만 동짜리 음식 하나를 더 시키면 한국 돈으로 천 원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베트남 음식 반미(bánh mì). 사진은 단골 가게에서 사 먹은 건 아니고 베트남의 유명한 카페 하이랜드에서 사 먹은 반미이다.


아, 참고로 위생을 따지면 베트남 현지 음식점에서는 거의 음식을 못 먹는다. 일단 주방이 오픈되어 있는 곳인데도 대부분 더럽고, 수저도 겉으로 보기에도 좀 얼룩이 있을 때가 많아서 반드시 휴지로 한 번은 닦고 사용해야 했다. 베트남에 처음 오는 외국 사람들은 ‘물갈이’라고 해서 초기에 반드시 1주일 정도는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게 되는데, 한 번 ‘물갈이’를 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괜찮아진다. 처음에는 베트남 현지 음식점의 위생 상태에 음식을 사 먹는 게 망설여졌지만,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게 더 힘들더라. 점심도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사 먹고 저녁에 요리하는 게 힘들어서 사 먹다 보니 베트남 현지 식당 음식에 완전히 적응했다. 맛있기도 했고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집 주변에 식당과 가게 단골이 되면서 동네 사람들과도 친해졌다. 물론 내가 단골이니까 친해진 것도 있는데, 베트남어를 연습하겠다고 항상 베트남어로 말하려고 노력하고 가게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오늘 날씨가 어때요?’,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여기에서 뭐가 맛있어요?’라고 베트남어로 말해서 사람들이 나를 더 좋게 봤다. 오며 가며 마주치면 항상 환하게 ‘신짜오!’ 하고 외쳐 주었다.


② 마트


후에에서 내가 자주 이용한 마트는 빅씨(Big C) 마트였다. 빅씨 마트는 태국 회사였는데 베트남에서 인기 있는 마트였다. 후에에는 다른 마트도 있었지만 빅씨 마트가 가장 유명했다. 빅씨 마트 안에는 롯데리아도 있었고 롯데시네마도 있었다. 가끔 햄버거가 먹고 싶으면 롯데리아에 가기도 했는데 베트남은 햄버거가 한국에 비해 정말 작았다. 한국인보다 덩치도 크고 음식도 많이 먹는 몽골에서는 햄버거가 한국 것보다 확실히 더 컸는데, 반대로 베트남에서는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인보다 몸집이 작고 먹는 것도 적게 먹어서 그런지 한국보다 작았다. 한국에서는 햄버거를 자주 안 먹었는데 대체 외국에서는 왜 이렇게 햄버거가 맛있는지!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롯데리아에 가서 직원들이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롯데리아에서 아르바이트하던 학생을 가르친 적 있는데, 그 학생이 말하길 내가 후에 롯데리아에서 유명하다고 한다. 자주 오는 한국 사람이라고.


빅씨 마트, 롯데시네마와 롯데리아. 롯데시네마에서는 '신과 함께- 인과 연'도 학생들과 같이 봤었다.


후에에는 K-MART라는 한국 편의점이 두 개 있었다. 정말 한국 식품과 물품만 다루고 편의점같이 되어 있어서 좋았다. 빅씨 마트에도 김치와 한국 라면, 초코파이 등이 있기는 했지만 종류가 적었다. 나는 거기서 빅씨 마트에서 구할 수 없는 한국 냉동식품, 아이스크림, 허니버터 아몬드 같은 희귀(?) 과자, 진짬뽕과 불닭볶음면같이 현지 마트에서는 안 파는 한국 라면 등을 자주 샀다. 그리고 조금 비싸긴 했지만, 스팸과 통조림 반찬도 있어서 가끔 한국 반찬이 그리울 때는 K-MART에서 반찬을 사 먹었다.


K-MART. 정말 많이 애용했다.


③ 음식


나는 요리를 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잘하는 요리는 간장계란비빔밥, 만두 넣은 라면이다. 여기에서 조금 특별하게 먹으면 간장계란비빔밥에 고추장과 볶은 양파를 넣어 비빈다. 그렇다. 나는 정말 요리하기가 귀찮다. 이상하게도 한국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요리를 했고, 특별한 날에는 상다리가 부러지게 진수성찬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해외에 나가면 요리가 정말 귀찮아진다. 몽골에서도 냉동만두와 라면, 과자와 빵을 쟁여 놓고 먹었다. 베트남에 살면서도 요리를 거의 안 했는데, 그나마 가끔 한 요리는 김치찌개와 미역국, 김치부침개 정도이다. 반찬은 부모님이 정성스럽게 만들어 택배로 보내주신 것과 K-MART 통조림으로 먹고, 없으면 그냥 김치와 볶은 양파를 먹었다.


아침은 항상 바나나와 빵 혹은 초코파이같은 파이류 과자, 요거트를 먹었다. 과일을 바나나만 먹은 이유는 껍질을 까기 쉬워서이다. 점심은 베트남 반미를 먹거나 주변 식당에서 베트남 음식을 먹었다. 나는 다행히 호불호 갈리는 음식이 거의 없고 고수를 팍팍 넣은 것도 좋아했다. 고수 향이 진하게 나면 이국적인 느낌(이국이 맞기는 하는데)이 확 나서 좋았다. 후에는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도시였고, 역시 음식들이 거의 맛있었다. 호찌민과 하노이에 가니 정말 후에 음식이 맛있는 편이라는 게 확 느껴졌다.


문제는 현지 식당의 위생이었는데, 비위가 강한 편이라 괜찮았다. 음식에서 개미가 한 마리 나오는 것까지는 기분이 나빠도 그냥 먹었다. 세 마리가 발견되었을 때야 주인에게 말하고 환불받고 나올 정도였다. 바닥에 바퀴벌레가 지나가는 걸 봐도 ‘저 바퀴벌레가 제발 내 주변으로는 안 오기를’ 하면서 그냥 있었다. 테이블 위에 있는 휴지통 밑바닥에 바퀴벌레 시체와 바퀴벌레의 새끼들이 우글우글한 걸 보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서울 식당’에 갔다. 후에에는 ‘서울 식당’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베트남인이 운영하는 것이고 하나는 정말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집이었다. 베트남인이 운영하는 서울 식당은 이름만 서울이고 음식은 이름만 비빔밥과 라면인 완전 베트남식 비빔밥과 라면을 팔았다. 후에 세종학당 바로 뒤에 있는 식당이라 점심시간에 자주 갔다. 서울 식당에는 ‘mỳ ốpla’라는 베트남 음식도 팔았는데 이것도 꽤 자주 먹었던 음식이다. 진짜 한식당인 서울 식당은 학당과 거리가 좀 있고 가격도 최소 10만 동(한화 5,000원이지만 후에에서는 비싼 값이었다)이었지만, 정말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 가기 딱 좋았다. 메뉴는 제육볶음, 김치찌개, 고등어자반, 해물 파전 등 다양했는데 정말 한국 식당에서 먹는 맛이 났다. 후에에서 나와 김 선생님의 입맛을 지켜 준 고마운 식당이었다.


베트남식 서울 식당과 서울 식당에서 팔던 음식들. 비빔밥 소스는 고추장이 아니라 뭔지 모를 특이한 소스였다.


④ 끝까지 적응하지 못했던 것

   

후에에서 2년 사는 동안 정말 후에 사람들과 문화에 완전 동화되어 잘 지낸 편이었다. 그런데 내가 계약이 끝나는 날까지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 두 개 있는데, 그건 바로 검지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와 후에의 날씨였다.

  

일단 바퀴벌레, 가끔 집 벽에 우글거리며 돌아다니는 개미 떼에도 익숙해진 나인데 이놈은 수없이 보고도 볼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한국에서는 아주 어렸을 때 손톱만 한 걸 한 번 본 기억이 있었는데 후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마주쳤다. 그것도 내 집에서! 아침에 씻으려고 화장실에 가면 재빠르게 휙 지나가는 걸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살충제를 뿌리면 이놈이 한 번에 죽는 게 아니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발광을 하다가 죽는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소름이 돋는다. 베트남에서는 모기장이 필수품인데, 모기는 둘째고 바퀴벌레가 자다가 나한테 날아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했다.


필수 아이템 모기장. 원터치 모기장이 최고다


‘맥스포스 ’이라는 설치해 놓는 바퀴벌레 약이 효과가 최고라고 해서 설치했더니 오히려 더 큰 트라우마만 생겼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더니 검지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팔과 날개가 이상하게 꺾이고 배를 까뒤집은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주변에는 그 바퀴벌레가 토한 바퀴벌레 약이 물감을 칠한 듯 바닥에 색칠이 되어 있었다. 우리 집만 깨끗하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아파트 전체, 나아가 베트남 전체의 문제였기에 그냥 살아야 했다. 제일 최악이었던 것은, 집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귀 바로 옆에서 갑자기 선풍기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뭔가가 내 머리가 착! 달라붙었던 것이다. 그게 뭐였는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탁월한 효과라 사지가 뒤틀린 채 약으로 뒤범벅이 된 바퀴벌레 시체를 치우는 게 고역이었다. (출처: 나무위키)


그다음 날씨. 베트남 중부 지방은 사계절이 없다. 건기와 우기만 있을 뿐이다. 3월부터 9월까지는 건기, 10월부터 2월까지는 우기라고 하는데, 솔직히 건기에도 사우나에 온 것 같이 습하고 덥고 비도 자주 와서 대체 왜 건기인 건지 궁금했다. 건기가 왜 건기이고 우기가 왜 우기인지는 10월이 되어서야 알았다. 10월 중순부터 미친 듯이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세상에나! 비가 두 달 동안 쉬지 않고 오는 건 처음 봤다. 비가 그치지 않아 도로에 무릎까지 물이 차는 일이 흔했는데, 현지인들은 우비 입고 물장구치며 놀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 했다. 나는 그런 날이면 가만히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비도 비지만, 땅과 건물이 항상 젖어 있는데 난방 시설이 전혀 없다 보니 정말 너무나도 추웠다. 후에는 우기에 한낮 약 16~20도 사이였는데, 후에에 살아 보지 않은 사람들은 저 기온에 춥다고 하면 이해를 못하겠지만 정말로 우기에 추위에 떨며 살았다. 현지인 운영 교원 선생님이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에 따뜻한 옷을 챙겨 오라고 했었는데, 짐이 많은 게 싫어서 따뜻한 옷을 챙겨 오지 않은 걸 우기를 맞고 나서야 후회했다. 결국 베트남에서 우기에 입을 긴팔과 겉옷을 많이 사야 했다. 전기장판이라도 가져온 게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무섭기만 하던 오토바이였는데, 두 달 정도 지나니까 학생들 오토바이 뒤에 타고 잘만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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