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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Apr 02. 2021

외국인이라 서럽네. 바가지 좀 그만 씌우세요

2017년 후에 세종학당 1학기

몇 년 전에 외국인에게 인천공항에서 서울 마포구까지 택시비를 40만 원 받아 구속이 된 택시 기사 이야기를 기사로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들에게 이렇게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 꽤 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유학생들을 가르칠 때, 유학생들이 시장에서 택시에서 바가지를 쓴 경험이 가끔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에게 바가지 씌우는 일은 어느 나라나 다 있나 보다. 나 역시 몽골에서도 베트남에서도 바가지를 쓴 경험과 쓸 뻔한 경험이 많았다. 신기하게도 몽골어와 베트남어를 익히고 나서는 바가지를 쓸 뻔한 일이 거의 없었다. 역시 외국에서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현지어를 배워야 하는 것 같다.


① 망고스틴 바가지


몽골에서 길거리 시장에 가끔 갔는데, 별 차이 없어 보이는 물건을 골라도 옆에 있는 몽골인에게는 비교적 정상적인 가격을 말하고 나에게는 비싼 가격을 말할 때가 가끔 있었다. 아니면 처음부터 터무니없는 가격을 말하든가. 처음에는 흥정을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시장에 안 가게 됐다. 정가제로 파는 곳에서 훨씬 품질 좋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는데 뭐하러 시장에 가서 기분만 상할까 싶었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도 역시 시장에 한 번도 안 갔고 길거리에서 음식을 사본 적도 없었다.


베트남에서 제일 좋아했던 과일. 망고스틴(출처: pixabay)


그런데 가족들과 같이 호이안으로 놀러 갔을 때, 동생이 망고스틴이 너무 먹고 싶다고 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길거리에서 과일을 샀다. 주변에 마트가 없었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산 것인데, 망고스틴 1kg 가격에 어이가 없어졌다. 1kg에 100,000동(VND. 한화 약 5,000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왜 어이가 없었냐면, 바로 일주일 전에 마트에서 산 망고스틴 1kg이 35,000동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3배 가까이 뻥튀기를 한 것이다! 물론 십만 동이어도 한국 돈으로 치면 싸지만, 그래도 세 배 바가지를 씌우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đắt quá . Không mua. Tôi sống ở Việt Nam. Tại sao 100,000 đ?”

(너무 비싸요. 안 사요. 저 베트남에 살아요. 왜 10만 동이에요?)


이렇게 한마디 하고 그냥 가려고 하니, 외국인인 내가 베트남어를 할 수 있다는 것과 흥정 시도도 안 하고 가려는 태도에 당황한 판매자가 6만 동으로 깎아(?) 줬다. 솔직히 사기 싫었지만, 동생들이 너무 망고스틴을 좋아해서 그냥 샀다.


② 택시비 바가지


후에는 옛 베트남 왕조의 성도였던 곳으로 왕궁이 유명하다. 왕궁이 있는 쪽은 구시가지이고 사람들이 주로 생활하는 곳은 신시가지이다. 후에에 온 지 한 2주 정도 지났을 때였나? 그때쯤에 나와 김 선생님은 서울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우리가 머무르던 2성급 호텔에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웬걸? 이 택시 기사가 갑자기 왕궁으로 갔다. 그때는 후에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후에 지리를 잘 모를 때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서울 식당에서 우리 호텔까지 가는 길이 왕궁을 거치지 않는 건 알고 있었다. 구시가지와 우리 호텔은 완전히 반대 방향이다! 게다가 구시가지인 왕궁 쪽을 가려면 짱띠엔 (Tràng Tiền) 다리를 건너야 했다. 심지어 택시 계기판에 금액 올라가는 것도 이상했다. 너무 빨리, 그리고 많이 올랐다. 우리는 구글 지도를 보여주면서 영어로도 항의했다.


“Why are you going this way? And why is this so expensive? Look at the map. Our hotel is here!"

(왜 이쪽으로 가요? 그리고 요금은 왜 이렇게 비싸요? 여기 지도 보세요! 우리 호텔은 이쪽에 있잖아요!)


기사는 지도도 안 보려고 하고 베트남어로 큰소리만 쳤다. 영어를 몰라도 우리가 무슨 말하는지는 대충 이해했을 텐데. 우리는 화가 나서 내리겠다고 소리쳤다. 택시 기사는 화를 내며 계속 가다가 우리가 강하게 말하자 결국 내려 줬다. 금액도 계기판대로 안 주고 좀 덜 줬는데, 택시 기사는 우리에게 욕을 하는 것 같았다. 트남에서 택시 때문에 기분 나빴던 첫 번째 일화이다.


이 이후로는 택시비 바가지를 쓴 일이 없었는데, 언니하고 동생이 여름에 후에에 놀러 왔을 때 바가지를 또 썼다. 언니 동생이 후에에 온 다음 날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고 왕궁으로 갔다. 택시비는 5만 동(한화 2,500원)이 나왔고, 여기까지는 문제없었다. 내가 총무인 동생에게 5만 동을 내라고 했는데 동생이 실수로 50만 동을 냈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돈을 받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화가 나서 택시 기사에게 다시 달라고 하자 택시 기사는 굳은 표정으로 앞만 쳐다봤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5만 동 짜리나 10만 동 짜리 지폐가 없어서 20만 동을 주며 다시 50만 동을 주라고 했는데, 택시기사는  못 먹을 걸 먹은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50만 동을 다시 줬다. 그런데 거스름돈을 안 주는 게 아닌가?


“Chị ơi, cho tôi tiền lẻ! Chỉ có 50,000 VND ma.̀”

(저기요, 거스름돈 주세요. 5만 동밖에 안 나왔잖아요.)


베트남어로 말하자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그제야 거스름돈을 주는데, 그나마도 오만 동과 만 동 몇 개만 줬다. 잔돈이 없다나? 택시 기사들이 십만 동 이상 지폐를 잘 안 가지고 다니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잔돈이 없다는 건 정말일 수 있었지만, 이미 택시비 사기를 거하게 치려고 했던 사람이라 믿음이 안 갔다. 하지만 잔돈이 있는데도 안 주는 걸 확인할 방법도 없고 기분 좋게 여행하러 왔는데 더 입씨름하면 기분만 상할 것 같아 그냥 내렸다.


택시비 바가지는 마트 앞에서도 당할 뻔했다. 마트에서 장을 보면 항상 택시나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왔는데, 마트에서 집까지는 소형 택시로 3만 동 정도 나왔다(베트남은 4인승 소형 택시와 7인승 대형 택시가 있다). 마트 앞 주차장에는 항상 택시가 대기를 하고 있고, 마트 입구 앞에 경비(?) 요원이 항상 무전기로 택시를 불러 줬다. 어느 날, 경비가 바빠 보이길래 그냥 주차장에 있는 아무 택시나 들어가서 앉아서 우리 집 주소를 불렀는데, 택시 기사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뭐지?’ 싶었는데 택시 기사는 웃기게도 계기판을 갑자기 끄고 ‘10달러’라고 말했다. 나도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쳐다봤는데 그 기사는 문 밖에 서 있는 자기 동료들하고 싱글벙글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기사의 동료들도 나를 보며 웃는 게 ‘호구 잡아서 좋겠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대로 내려서 경비에게 갔다. 택시 기사와 그 동료들이 당황해서 나한테 ‘쏘리 쏘리! 5달러!’라고 외쳤는데 난 뒤도 안 돌아보고 경비에게 가서 택시를 불러 달라고 했다. 경비는 무슨 일인지 파악한 듯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택시를 불러 줬고, 나한테 사기 치려던 택시 기사와 동료들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이런 일이 한 번 더 있었는데, 그때도 역시 기사가 계기판을 끄고 ‘10달러’라고 하자 바로 내려서 그 뒤에 오는 택시를 탔다. 사기 치려던 택시 기사가 택시에서 내려서 계기판을 가리키며 계기판 켰다고 미안하다고 소리쳤는데 나는 그냥 째려보기만 했다.


③ 불쌍하니까 그냥 당해 주자고?


몽골에서도 베트남에서도 이렇게 바가지를 쓴 경험이 몇 번 있었는데(특히 택시!), 몇몇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기분이 안 좋긴 한데, 그래도 이 나라 사람들 돈 못 버는 거 알잖아. 바가지 씌워도 한국 돈으로 하면 얼마 안 되는 거 나는 그냥 줘. 얼마나 돈이 필요하면 그러겠어.”


특히 돈이 넉넉하고 웬만하면 부딪히기 싫어하는 중장년층 어르신들이 그러신다. 마치 선행을 베푸는 듯 보이지만 나는 절대 이게 ‘선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이든 택시든 정확하게 돈을 받아내려고 하는 건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원래 그게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라는 이유만으로 해서 우리가 그 나라 사람들을 감히 동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적은 돈이지만 사기를 치는 건데, 사기 치면서 돈 버는 걸 왜 동정하는 걸까? 정당하게 일해서 돈 버는 사람들은 호구인가? 이렇게 가격을 높게 불러도 ‘오케이, 괜찮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사기꾼들은 그래도 되는 줄 알고 다른 사람에게도 사기를 치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들에게.


이런 ‘선행’을 가장해서 호구 잡히는 행동은 이렇게 다른 외국인에게도 피해를 주지만, 그 나라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택시를 잡으려고 기다리고 있으면 분명 내가 서 있는 곳보다  가까운 곳에 현지인이 먼저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내 앞에서 택시가 선다. 왜 그러겠는가?


택시는 사소한 문제지만, 집값의 경우 큰 문제가 된 곳도 있다. 어느 평화로웠던 작은 도시에 외국계 기업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자기 회사 직원들이 머물 집을 빨리 구하기 위해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값에 월세를 구했다고 한다. 그렇게 줘도 자기들 나라 월세보다는 훨씬 저렴했으니까. 결국 그게 반복이 되어 월세로 살던 현지인들은 쫓겨나고(비싼 값으로 외국인들 받으려고) 그 지역 월세와 집값이 확 올라가게 되었다. 한번 올라간 부동산 시세는 내려가지 않았고 결국 현지인들은 월세도 집을 사는 것도 힘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들었다.


외국에서 호구 잡히지 말자! 나를 위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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