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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Apr 06. 2021

짧고 강렬했던 2017년 1학기

2017년 후에 세종학당 1학기

에 세종학당은 국내 통역 전문 NGO 단체인 BBB 코리아 와 후에 대학교의 연계형 학당이다. (참고: 세종학당재단이 하는 일)


세종학당은 짧으면 10주, 길면 16주 단위로 학기를 운영하는데, 학기 운영은 학당마다 다르고 12주, 15주 단위로 운영하는 학당도 있다. 후에 세종학당은 1년에 한 학기 10주 총 3학기 강의를 한다. 1학기는 보통 2~4월, 2학기는 5~7월, 3학기는 9~11월 혹은 12월까지 운영한다. 수업은 한 반을 파견 교원 혼자 가르친 적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파견 교원과 현지 교원이 팀티칭(Team teaching. 한 반을 몇 명의 교사가 단원을 분담해서 가르치는 것)으로 가르쳤다. 한 반을 주 3회 수업하는데 현지 교사가 한 번 들어가면 파견 교원이 두 번, 현지 교원이 두 번 들어가면 파견 교원이 한 번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앞글에서도 말한 것처럼 비자가 늦게 나온 탓에 4월 둘째 주에 베트남에 입국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온라인 수업을 할 수도 없어서 우리가 입국하기 전까지 현지 교원이 파견 교원인 우리가 해야 할 수업을 모두 담당했다. 후에에 오고 나서는 우리가 3주 동안 모든 수업을 했다. 마지막 한 주는 성취도 시험을 봐야 했기에 실제적으로는 2주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1학기는 후에에도, 세종학당에도, 약 6개월 만에 시작하는 한국어 수업에도 적응하느라 정신없었다. 나의 첫 베트남 학생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 주고 싶었지만 내 마음만큼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학생들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 서툰 외국인 선생님을 예상했던 것보다 더 환대해 주었다. 학생들의 태도에서 ‘최 선생님은 베트남이 낯설 테니 우리가 적응할 수 있게 도와드려야지!’ 하는 어떤 사명감 같은 것도 느낄 정도였다.

 

“선생님, 집은 구했어요? 괜찮아요?”

(저녁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 제 오토바이에 타세요. 집이 어디예요? 같이 가요.”

“선생님. 베트남 생활이 어때요? 괜찮아요? 힘들면 우리에게 말하세요. 우리는 선생님 도와주고 싶어요.”

“우리는 한국이 정말 좋아요. 선생님하고 많이 이야기하고 싶어요.”


2주, 짧은 기간 동안 가르쳤지만 나는 착한 학생들 덕분에 학생들과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금방 친해졌고 후에 생활에도 적응할 수 있었다. 1학기에 담당한 반은 초급 1A(1권), 중급 1A(5권), 중급 1B(6권) 반 모두 3반이었는데, 모든 반 학생들이 성취도 평가가 끝나고 같이 회식을 하고 싶어 했다. 학기가 끝나면 반 친구들과 선생님이 같이 모여 회식을 하는 게 후에 세종학당의 전통(?)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는 오토바이 타는 게 무서워서 학생들이 집까지 태워준다고 해도 그냥 걸어서 가거나 택시를 탔었다. 그런데 그때는 학생들이 모두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식당에 가는데 나만 택시를 타겠다고 우길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학생의 오토바이에 탔다.


“이 중에서 누가 제일 운전을 잘해요? 운전 잘하는 사람 오토바이에 타고 싶어요!”


이렇게 말할 때마다 학생들은 깔깔 웃으며 우리 모두 운전을 잘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학생 뒤에 올라타고 학생의 옷을 꼭 잡으며 "천천히 가요 천천히!"라고 특별 주문을 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학생들은 "선생님, 괜찮아요!"라며 웃으면서도 정말로 천천히 갔다. 옆에 오토바이들이 우리를 다 지나쳐 갔다. 몇 달 지나고 나서는 학생들에게 "그냥 빨리 가도 괜찮아요", "언니 달려!"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오토바이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학생들하고는 대부분 야외에 있거나 안에 있어도 공간이 활짝 열려 있는 식당으로 갔다. 낮은 식탁에 목욕탕 의자와 비슷한 플라스틱 의자, 가게 옆에 주차되어있는 수많은 오토바이와 자전거들이 매우 낯설었다. 학생들은 도착하자마자 의자와 식탁, 수저를 휴지로 닦고 “선생님 여기 앉으세요”라며 내 자리를 먼저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메뉴판을 보여주며 무슨 음식을 먹고 싶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 알아서 맛있는 것을 주문해 달라고 했다. 학생들은 이것저것 처음 보는 음식들을 주문했고, 음식이 나오자 먹는 방법을 소개해 줬다.


식당 밖에 주차되어 있는 수많은 오토바이들


“선생님, 이거 먹어 보셨어요?”

“아니요. 안 먹어 봤어요. 어떻게 먹어요? 알려 주세요”

“이건 김치찌개하고 비슷해요. 그런데 끓으면 고기를 넣어 먹어요.”

“이거는 쌀 과자예요. 여기 위에 야채를 올려서 같이 먹어요.”


1학기 뒷풀이 때 먹었던 베트남 음식. 김치찌개와 비슷한데 샤브샤브였다. 이름은  'Bò nhúng ớt '.
Bánh phồng tôm. 무와 당근 등을 양념에 버무린 야채와 같이 먹었다. 맛은 담백한 쌀과자 맛이었다.


나는 학생들이 알려준 대로 음식을 먹었다. 음식마다 먹는 방법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어떤 음식은 소스에 찍어 먹고 어떤 음식은 다른 것과 같이 먹고... 학생들은 나에게 베트남 음식을 알려주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계속 물어봤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어디에 살았어요? 서울에 가 봤어요?”

“제 고향은 청주예요. 그런데 서울에서도 살아 봤어요. 쩜 씨는 서울에 가고 싶어요?”

“네! 저는 K-POP 너무 좋아해서 콘서트에 가 보고 싶어요. 그리고 한강 공원에도 가 보고 싶어요. 드라마에 보면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게 멋있어 보였어요.”

“아, 그래요? 맞아요. 한강 멋있지요~ 그럼 미 씨는 왜 한국에 가고 싶어요?”

“저는 술을 마시고 싶어서 한국에 가고 싶어요!”

“술이요? 베트남에서는 못 마셔요?”
 “그건 아닌데, 한국에서는 대학교에서 여자들도 술을 많이 마신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여자들이 술을 많이 마시면 좀 안 좋게 생각해요. 그래서 한국에 유학 가서 M.T도 가고 친구들이랑 술모임도 하고 싶어요.”


이렇게 중급 학생들과도 1학기 뒤풀이 회식을 하고 초급 학생들과도 했는데, 초급 학생들은 한국어로 긴 문장을 말할 수 없어서 이야기를 많이 못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짧은 한국어로 어떻게든 나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했고, 나도 그 노력에 부응해 최대한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로 이야기를 했다. 덕분에 학생들과의 회식은 아주 재미있었다.


"선생님, 이건 한국어로 뭐예요?"

"아, 이건 조개예요."

"조개, 조개. 베트남어는 Sò lụa xóc tỏi라고 해요"

"써 으러 쏟 떠이?"

"네네! 잘했어요! 선생님 베트남어 잘해요!"


회식이 끝나갈 때쯤 초급 학생들은 부족한 한국어로 더듬거리고 또 말문이 막히면 사전을 찾아가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혹시 (베트남 생활이) 어려워요? 그럼 우리한테 전화하세요. 우리는 선생님을 도와주고 싶어요. 언제든지 말하세요.”


베트남에서는 학생들과 이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어서 좋았다. 몽골에서는 내가 파견 간 곳이 대학교였고, 나는 봉사단원 신분이었지만 정규 수업을 가르치고 정식으로 대학에 등록된 ‘교수’였기 때문에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는 데 어느 정도의 ‘선’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학기가 끝나면 뒤풀이도 하고 싶고 가끔 모여서 인근 관광지에 놀러 가거나 맛집에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교수였고 내가 주는 학점이 학생들의 미래와 장학금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또 교수의 위치라서 학생들에게 모이자고 하는 게 혹시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래서 정말 학생들과 마음껏 어울린 것은 코이카 활동이 끝나기 전이라 정규 수업을 맡지 않았던 마지막 학기 때였다. 그때 가서 안 사실인데 학생들은 내가 그런 ‘선’을 긋는 것을 조금 섭섭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종학당은 학교가 아니어서 그런 부담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과 식당과 카페에도 자주 갔고 놀러 가기도 했다. 사실 내가 먼저 가자고 한 건 거의 없었고, 학생들이 같이 가자고 이끈 것이 대부분이다. 나는 항상 부족한 게 많은 교사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편인데, 학생들이 이런 나를 좋아해 주고 언제든지 도와주겠다고 해서 너무 고마웠고 든든했다. 1학기는 정말 짧게 끝났지만 짧은 만큼 강렬했다. 베트남에서의 나의 첫 수업이었고, 후에 세종학당 학생들에 대한 첫인상이었고, 앞으로 이어질 나의 후에 생활이 행복할 것임을 알려 준 기간이었다.


2017년 1학기 중급반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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