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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r 21. 2021

후에 세종학당과 첫 만남

2017년 후에 세종학당 1학기

약 6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다낭 공항에 도착했다. 나와 김 선생님은 비행기에서 내리고 숨을 들이마시자마자 당황했다. 탁하고 덥고 습한 공기가 우리를 훅 덮쳤기 때문이다! 정말 사우나에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고 불안한 눈빛을 교환했다.


‘분명 지금(4월)이 후에에서는 제일 날씨가 좋을 때라고 했는데...’


지금이 제일 좋은 날씨면, 안 좋을 때는 얼마나 습하고 덥다는 걸까? 앞으로 2년 가까이 이런 날씨에서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입국 수속을 마쳤다. 우리는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앞으로 베트남에서 사용할 유심칩을 샀다. 다낭 공항을 나오면 바로 유심칩을 사는 곳이 있었고, 거기서 저렴한 가격에 유심칩을 구입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산 유심 카드. 베트남에 다시 가면 사용하려고 보관했었는데 결국 잃어버렸다.

다낭 공항에서 후에로 가는 방법은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택시를 타는 것이고 나머지는 기차를 타는 것이었다. 택시나 기차 모두 두 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택시비는 당연히 비쌌다. 2017년 당시 약 120만 동(한국돈으로 6만 원)이 들었는데, 우리는 짐이 많았기 때문에 당연히 택시를 탔다. 택시에 타고 에어컨 바람을 맞으니 좀 숨이 쉬어지는 듯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에서 입국 심사를 마치고, 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에서 유심침을 샀더니 너무 힘들었다. 몸이 편해지니 베트남에 온 게 실감이 나면서 경치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베트남이 오토바이가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눈앞에서 오토바이 떼를 보니 입이 딱 벌어졌다. 폭주족들 속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좀 시간이 지나니 야자수와 바닷가가 보였고, 우리는 산을 타고 이동하며 아름다운 다낭의 바닷가를 조용히 구경했다.


오토바이를 주로 타고 다니는 베트남 사람들(후에에서 촬영)


‘내가 정말 여기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구나, 여기에서 2년을 보내야 하는구나. 잘할 수 있을까? 바로 내일 아침부터 수업을 해야 하는데, 나 잘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경치 구경도 하니 금방 후에에 도착했다. 우리는 집도 기숙사도 없었기 때문에 후에 세종학당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로 3박 4일 예약을 했다. 호텔에 머무는 동안 학당 일도 하면서 집을 구해야 했다. 덕분에 호텔로 가기 전에 후에 세종학당의 외관을 구경할 수 있었다. 후에 세종학당의 옥외 간판을 봤을 때는 마치 기대하던 스타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만났구나!


후에 세종학당 옥외 광고


우리가 3박 4일 동안 머물 호텔은 그린 호텔이었다. 그린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시간이 저녁 7시 가까이 됐기 때문에 배가 너무나도 고팠다. 제일 가까운 식당에서 이름도 모를 쌀국수를 먹은 다음, 내일 아침에 간단히 먹을 요깃거리도 사고 물도 사러 가게를 전전했다. 호텔 근처에는 한국처럼 걸어서 5분 이내로 갈 수 있는 편의점이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가게는 없었고 게다가 밤중이라서 어두웠다. 결국 그냥 포기하고 길 잃어버리기 전에 호텔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다행히 가게가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서 ‘오리온 초코파이’를 발견했다. 초코파이를 내일 아침으로 먹기로 하고 사서 호텔에서 한입 먹었는데, 세상에나. 왜 이렇게 맛있는 건지. 심지어 김 선생님은 군것질을 싫어하는 분인데도 먹자마자 맛있다며 감탄했다.


3박 4일 동안 숙박했던 그린호텔. 시설도 좋고 후에 세종학당과 1분 거리에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한국에서는 초코파이를 사 먹은 적이 별로 없다. 사더라도 몽쉘을 샀다. 그런데 이상하게 베트남에서도 몽골에서도 해외에만 나가면 초코파이가 너무 맛있다. 나만 그러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 텐데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그렇단다. 왜 그럴까? 오리온 초코파이에는 정말 한국인의 정이 담겨 있나? 베트남과 몽골에서는 큰 마트에서든 구멍가게에서든 항상 오리온 초코파이를 많이 팔았다. 우리처럼 찾는 사람이 많이 있나 보다.


해외에서 먹으면 꿀맛. 맛은 한국에서 파는 거하고 똑같은데 대체 왜일까? (출처:나무위키)


아무튼 그렇게 저녁을 해결하니 후에 세종학당 학당장님과 베트남 현지 교원분들이 호텔 로비로 오셨다. 후에 세종학당은 수업이 저녁 7시 30분에 끝나기 때문에 늦은 시간에 만난 것이다. 학당장님과 베트남 선생님들은 우리를 환영해 주시며, 앞으로 후에에서 집을 구하고 은행 계좌를 만드는 등 후에에 적응하는 것을 도와주겠다 하셨다. 그리고 내일 있을 수업 이야기와 학당 이야기를 간단하게 나눈 후에 헤어졌다.


방에 돌아와서 다음날 아침에 수업할 자료를 한번 더 확인했다. 후에 세종학당은 주 6일 수업을 했는데, 토요일은 근무는 안 하고 수업만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다음날이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운영교원은 출근 안 하고, 오직 나만 수업을 했다. 2년 동안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는 나였지만, 베트남 학생은 처음이라 조금 긴장이 되었다.


‘첫인상이 중요한데, 첫 수업에서 긴장해서 실수하면 어떡하지?’


긴장되기도 하고 에어컨을 틀어도 없어지지 않는 습한 기운 때문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그렇게 베트남에서의 첫날을 보냈다.


오전 수업은 9시에 시작이었다. 초급 1A(세종 한국어 1권) 수업이었다. 수업 시작 전에 건물을 구경하고 교실과 학당 사무실, 기자재 등을 한번 점검했다. 후에 세종학당은 후에 대학교 국제교류처 건물 안에 있었다. 국제교류처 건물이라 그런지 후에에서는 신축 건물이고 시설이 좋은 편이어서 다행이었다. 9시가 되자 학생들이 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한국에서 온 젊은 선생님에 대한 기대가 잔뜩 담겨 있었다. 학생들은 수업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봤고, ‘따라하세요. 읽으세요. 대답하세요’라고 말할 때마다 큰 소리로 한국어를 연습했다.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우르르 나에게 몰려와서 겨우 1권밖에 안 배운 실력으로 어떻게든 한국어를 사용해서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후에 세종학당 사무실


“선생님. 저는 한국을 정말 좋아해요.”

“선생님. 만나고 싶었어요.”
“선생님은 어디에서 왔어요? 서울?”

“베트남에 어제 왔어요? 베트남 음식 먹었어요? 저하고 같이 가요.”


이런 관심 집중은 태어나서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마치 유명인이 된 것 같은 느낌! 수업이 끝나고서도 학생들은 마치 물어보고 싶은 건 많지만 한국어를 몰라서 많이 못 물어본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쉬워하며 집으로 갔다.


나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다음 수업에서도 계속됐다. 다음 주가 되고 중급 1A(5권), 초급 1B(2권) 수업도 시작했는데, 정말 들어가는 수업마다 학생들은 나를 유명인사처럼 환대해 주었다. 중급 학생들의 말로는, 한국 선생님이 4월에 오신다고 해서 기대가 많았다고 한다. 후에는 도시지만 작은 도시라 한국 사람이 없어서 한국 사람하고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수업 시간은 2시간이었는데,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도 수업이 끝나고도 ‘선생님, 선생님’하며 말을 걸었다. 학생들은 베트남 생활할 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도와주겠다고 적극적으로 말했다.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는 중급 1A반 학생들. 이 학생들은 내가 후에에 적응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베트남도 낯설고 작은 도시인 후에는 더더욱 낯설었지만, 학생들 덕분에 후에에서의 첫 시작을 기분 좋게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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