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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Apr 24. 2021

베트남 후에에서의 주말

2017년 후에 세종학당 2학기

후에 세종학당은 주 6일 수업이 있었다. 한 과목 당 주 3회 수업을 하는데 월·수·금 수업과 화·목·토 수업으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근무 시간은 수업 시간을 포함해서 주당 40시간이었고 토요일은 다른 근무는 하지 않고 오직 수업만 2~4시간 했지만 그래도 주 6일 출근을 하는 것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한테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은 아주 소중했다.


토요일 저녁 7시 반에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가는 길에 단골 식당에서 반미(bánh mì)나 일명 베트남식 피자인 반짱쭝(bánh tráng trứng), 반쎄오(bánh xèo)를 사고 짚 앞 구멍가게에서 맥주 한 캔을 샀다. 그리고 집에 와서 노트북을 켜고 좋아하는 드라마나 예능을 보며 저녁을 먹었다. 물론 맥주를 마시면서. 그리고 제발 바퀴벌레가 이 순간만큼은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10시까지 컴퓨터를 보다가 씻고 또 유튜브를 틀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핸드폰 게임을 했다. 그러다가 정말 피곤하면 내가 우리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모기장 안 침대 위로 들어가서 피곤에 지쳐 못 견딜 때까지 웹툰과 인터넷 유머를 보다가 잤다.


반짱쭝과 반쎄오. 이렇게 먹으면 배가 엄청나게 불렀는데, 가격은 한국 돈으로 겨우 1,500원 정도이다.


일요일 아침은 일찍 일어나면 10시에 일어났다. 사실 10시에 일어나도 아쉬웠다. 11시까지 잤으면 더 좋을 텐데 싶어서. 일어나면 밤사이 바퀴벌레가 우리 집에서 생을 마치진 않았기를 바라며 발코니부터 화장실까지 아주 조심스레 돌아다녔다. 하지만 최소 2주에 한 번은 항상 엄지손가락 만한 바퀴벌레가 배를 까고 뒤집혀 있었다. 그나마 죽었으면 다행인데 얼마 안 남은 생이라도 살아있으면 아침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튼 집을 한 바퀴 순찰하고 나면 역시 컴퓨터로 드라마나 예능을 보며 아침 겸 점심을 대충 먹었다.


밥을 먹으면 하이랜드 카페로 갔다. 하이랜드 카페는 ‘베트남의 스타벅스’라고 불린다. 일반 베트남 카페보다 좀 비싸기는 하지만 정말 깔끔하고 세련되고 메뉴도 다양하고 맛있다. 하이랜드 카페는 후에에 3곳인가 4곳이 있었지만, 내가 자주 간 곳은 장띠엔 다리 근처 호텔 안에 있는 하이랜드였다. 호텔 안에 있어서 깨끗했고 집에서 걸어서 35분 정도가 걸렸는데 35분이면 산책 코스로 딱 알맞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나 베트남에서나 나는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카페에 가면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을 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멍하니 주변 사람과 경치를 구경하기도 한다. 베트남에서는 한국에서보다 카페에 가는 것이 더 좋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베트남어 대화와 노래 속에 있으면 주변은 시끄러운데 나 혼자 고요한 느낌이 드는데 그게 이상하게 좋았기 때문이다.


하이랜드에서 커피도 많이 마셨지만 디저트도 많이 먹었는데, 내가 좋아한 디저트는 반미와 바나나 케이크였다. 반미는 길거리에서 파는 거하고 크게 차이는 없었지만 길거리보다 비쌌는데, 그래도 위생적이어서 나는 하이랜드 반미를 좋아했다. 바나나 케이크는 아주 맛있는 건 아니었지만 한국에서는 맛보지 못한 특유의 매력이 있어서 좋았다.


하이랜드 커피
내가 좋아했던 하이랜드 반미와 바나나 케이크


카페에서 해가 질 때까지 있다가 집에 오는 길에는 레 러이(Lê Lợi) 거리를 걸으며 집까지 걸어오거나 여행자 거리에 갔다. 레 러이 거리는 향강(흐엉 강. Sông Hương) 옆 거리인데, 그 길을 쭉 걸어가면 세종학당이 나오고 거기에서 조금 더 가다가 옆으로 꺾으면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이 나왔다. 나는 그 산책 코스를 정말 좋아했다. 해 질 녘 향강의 경치는 최고였기 때문이다. 강 건너 보이는 후에 고궁과 고궁 입구에 높게 솟은 깃발은 향강의 경치를 더 아름답게 해 줬다. 오토바이 때문에 시끄럽기는 했지만 향강을 보며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분위기에 심취하면서 올 수 있었다.


해 질 녘 향강의 하늘
레 러이 거리에서 찍은 향강


여행자 거리는 이름 그대로 여행자들이 좋아할 만한 거리로, 술집과 레스토랑이 많이 있다. 물론 기념품 가게들과 크고 작은 호텔도 있다. 낮에는 한산한 편이지만 저녁만 되면 문을 활짝 연 술집과 식당들이 길거리에도 의자와 식탁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여행자들로 북적이기 시작하는데, 가게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팝송과 여행자들 특유의 자유분방하면서도 활기찬 시끄러운 대화, 유럽적이면서도 베트남적인 요소가 섞인 술집과 레스토랑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한 번 겪어 보면 잊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내가 여행자 거리에서 자주 방문한 곳은 배스킨라빈스이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정말 좋아하는데 2017년에 다낭에만 있던 배스킨라빈스가 후에에도 생겨서 너무 좋았다. 여기는 학생들과도 자주 가고 나 혼자서도 자주 갔다. 배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레 러이 거리를 따라 집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집에 와서 씻고 차를 마시며 노트북으로 드라마와 예능을 보면 주말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 삶의 활력소 배스킨라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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