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후에 세종학당 2학기
6월은 정말 바쁜 달이었다. 6월 10일에는 한국어 말하기 대회, 6월 24일에는 한국 문화 행사가 있었다. 세종학당재단은 매년 전 세계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개최한다. 먼저 학당별로 말하기 예선 대회를 개최하는데, 학당 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한 학생은 매년 10월 한글날 주간에 개최하는 ‘세종학당 우수 학습자 초청 한국 문화 연수회’에 초대를 받는다. 그리고 한국에 가기 전에 예선 때 촬영한 동영상으로 본선에 진출하는데, 여기에서 또 결선 진출자를 뽑는다. 결선 대회는 ‘세종학당 우수 학습자 초청 한국 문화 연수회’ 중간에 개최되며, 여기에서 수상을 한 학생들은 국내 대학 어학연수 기회나 한국으로 다시 올 수 있는 항공권, 상품을 받는다.
결선 대회까지 가지 않더라도 학당별로 실시하는 예선에서도 상금이나 상품을 주고, 본선에 진출하게 되면 학생들이 꿈에 그리던 한국 문화 연수를 할 수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말하기 대회를 좋아한다. 후에 세종학당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문제는 ‘좋아’만 하고 참가를 잘 안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역시 ‘긴장돼서, 못할 것 같아서, 무서워서’였다.
말하기 대회는 초급과 중급으로 나눠서 진행되는데,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은 중급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참가하기만 해도 기념품을 주는데도 학생들이 너무 참여를 안 하려고 해서 나와 김 선생님은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학생들에게 말하기 대회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야 했다.
결국 초급에서 9명, 중급에서 6명이 참가하기로 했다. 나와 김 선생님은 각자가 맡은 반에서 참가하는 학생들을 지도했다. 학생들이 정해진 주제로 글을 써 오면 우리가 수정해 주고 발음을 교정해 주는 식이었다. 공정성을 위해 교원들이 심사를 하지 않고 외부 초청 인사들에게 심사를 맡겼고, 원고는 맞춤법 오류와 너무 이상한 문장만 두 번 수정해주기로 했다. 학생들은 너무 떨리고 긴장된다면서도 열심히 말하기 대회를 준비했다. 말하기 대회 당일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나를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말은 이렇게 했어도 사실 나도 긴장했다. 내가 가르친 학생이든 아니든 실수하지 않고 연습한 대로만 말하길 바랐다. 혹시라도 너무 긴장해서 발표 내용을 잊어버린다거나 심하게 떠는 등 큰 실수를 해서 트라우마가 남으면 어떡하나 싶어서... 몽골에서도 학생들이 대회 나갈 때 자주 지켜봤었는데 항상 나도 긴장했었다. 다행히 학생들은 큰 실수 없이 말하기 발표를 마쳤다.
말하기 대회가 성황리에 잘 끝나고 2주 후에 바로 2학기 문화 행사를 진행했다. 2학기 문화 행사의 주제는 '윷놀이 대회 및 전통 공예 체험'이었다. 먼저 행사를 하기 전에 축하 공연으로 베트남 전통 공연과 K-POP 댄스 팀을 초청했다. 베트남 전통 공연 팀은 베트남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를 입고 농(베트남 전통 모자)을 이용해 춤을 췄는데, 한마디로 너무 아름다웠다.
'진짜 빠져든다. 어떻게 저 모자 하나하고 간단한 춤 동작만으로 사람을 빠져들게 하지?'
정말 느릿느릿 걸으며 간단한 손짓만 하고 음악에 따라 천천히 춤을 추는데도 공연에 흠뻑 빠져들어 그들의 팬이 될 것 같았다. K-POP 댄스 공연도 역시 아주 멋있었다. 베트남 전통 공연팀과 K-POP 댄스 공연팀에는 세종학당 학생도 있었는데, 그들의 선생님이라는 게 조금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한국 문화 체험은 세종학당 학습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구까지 참가할 수 있었다. 먼저 윷놀이 대회를 했는데, 먼저 윷놀이에 게임 진행 방식을 설명한 후 참가자들을 팀으로 나눴다. 그리고 토너먼트 형식으로 1등부터 3등까지 뽑았다. 팀 이름을 한국 음식으로 지었는데, 1등 팀은 ‘삼계탕’ 팀, 2등은 ‘불고기’ 팀, 3등은 ‘김밥’ 팀이었다.
윷놀이 대회가 끝나고 전통 공예 체험을 했다. 전통 공예는 장승 만들기와 한복 접기 두 반으로 나눠서 했다. 참가자들은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다. 전통 공예 체험은 후에 세종학당의 운영 기관인 BBB코리아에서 전통 공예 키트를 제공해 줬다. 나는 한복 접기, 김 선생님은 장승 만들기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화 행사 전에 한복을 미리 접어보니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내 옆에서 통역을 도와주시기로 한 현지 선생님도 같이 접었었는데 설명서를 보고 해도 나도 베트남 선생님도 이해를 못했다. 몇 시간 씨름을 하다가 다행히도 완성을 했는데, 학생들에게 설명만 해서는 이해하지 못할 게 분명하고 그렇다고 몇십 명을 일일이 도와줄 수도 없을 것 같아 종이접기 단계를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 PPT로 만들어 보여줬다. 그렇게 해도 학생들이 어려워해서 결국에는 내가 교실을 숨 고를 틈도 없이 돌아다니며 종이접기 하는 것을 도와줬다. 여기저기서 ‘선생님, 선생님’, ‘도와주세요’, ‘선생님. 이거 맞아요?’ 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힘은 들었어도 완성된 한복을 보며 좋아하는 학생들을 보니 뿌듯했다. 학생들은 자기가 만든 장승과 종이 한복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좋아했고 집에 가서 페이스북으로도 오늘 행사가 너무 재미있었다며 글과 사진을 올렸다. 한복 접기는 학생에 비해 키트도 부족했고 접는 데 시간도 많이 걸려서 신청을 장승 만들기보다 적게 받았다. 그래서 아쉬워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것도 그렇고 한복을 접으면서 나도 재미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수업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문화 수업으로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일에는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말하기 대회와 문화 행사같이 특별 행사는 토요일 오전에 한다. 우리 교원들은 그 전날 저녁 늦게까지 행사 준비를 하고 당일 7시에 세종학당에 와서 또 준비를 해야 했다. 그리고 오전에 행사가 끝나면 토요일 오후에 있는 수업을 또 해야 했다. 당연히 힘들고 지치지만 행사를 즐기는 학생들을 보면 한국인으로서 뿌듯한 마음도 들고 보람도 많이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이 맛에 한국어 선생님을 하는 것 같다.
사진 출처 : 후에 세종학당 페이스북(여자 저고리 접기 사진과 남녀 평상복 한복 사진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