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어 교원 May 07. 2021

반갑지 않은 손님들

2017년 후에 세종학당 2학기

어느 때처럼 후에 세종학당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 교원들 책상은 복도 쪽 창문을 바라보는 구조였는데, 복도 쪽 창문에 누군가가 계속 우리 학당 주변을 돌아다니며 들어갈까 말까 기웃거리는 실루엣이 보였다. 보통 이런 경우는 학당에 등록하러 온 학생이기에 밖에 나가서 지금은 등록 기간이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 앞에 있는 사람은 한국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우리에게 자기는 한국어 교육과 학생인데 후에를 여행하다가 여기 세종학당이 있다는 걸 알고 찾아와 봤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우리는 당황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그 사람은 우리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고 당황해하며 죄송하지만 안을 잠깐 구경해도 되겠냐고 했다. 우리는 눈으로만 보는 건 괜찮다고 했고 그분은 사무실을 잠깐 구경했다. 그리고 나와 김 선생님에게 자기도 우리처럼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보고 싶다고, 우리가 부럽다고 했다. 거기까지만 하고 가면 기분이 나쁘진 않았을 텐데 한 마디를 덧붙이고 갔다.


“그런데 많이 당황하신 것 같아요. 너무 당황해하셔서 죄송하네요.”


뭐지? 사전에 연락도 없이 여행객인데 구경하고 싶다고 갑자기 찾아와서 사무실을 구경한다는데 당연히 당황할만하지 않나? 왜 우리가 당황할 것을 예상 못했다는 듯이 말하지?


이런 일은 한 번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오전에 사무실 바로 옆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데, 한 무리의 사람이 복도에서 계속 교실 쪽을 바라보다 서성이다가 사무실로 들어갔다. 수업이 끝난 후에 행정 선생님께 아까 누구였냐고 물어보니, 그냥 세종학당이 궁금해서 들어온 한국인 관광객이었다고 했다. 또 언제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중에 어떤 중년 남자가 너무도 반갑다는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서, 처음에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아는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냥 지나가다가 한국어 학당이라는 간판을 보고 반가워서 들어온 관광객이었다.


나중에 다른 나라에 파견 가신 한국어 선생님들을 만나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니, 어떤 분은 ‘어휴 그런 일 너무 자주 있었어요. 우리는 한국 사람들이 수업 시간에 자꾸 들어와서 구경하려고 해서 문에 관광객 출입 금지라고 써 놨다니까요?’라고 하시고 또 어떤 분은 ‘수업을 하는데 갑자기 모르는 한국 사람들이 들어와서 팔짱을 끼고 제가 수업하는 걸 흐뭇하게 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기관 관계자인가 했는데 그냥 관광객이었어요.’라고 하셨다. 해외 생활 정보를 얻으려고 가끔 들어가던 인터넷 카페에서는 ‘관광하다가 한국어 학당이 있다고 해서 들어가서 구경했는데 한국에서 왔다는 한국어 교사가 당황해하더라, 책임자 만나서 얘기 좀 하고 싶었는데 나보고 사전에 연락하고 온 거냐고 해서 화가 났다, 겨우 한국어나 가르치면서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었다. 다행히도 이 글은 수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고 삭제됐다.


연락도 없이 한국어 학당을 찾아온 분들도 자영업이든 회사든 어디에선가 일하고 있는 분들일 것이다. 그분들이 일하는 곳에 모르는 사람이 불쑥 찾아가서 ‘지나가다가 들렸는데 이쪽 일에 관심이 있어서요. 사무실 구경해도 될까요?’라고 하면? 혹은 본인들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왜 한국어 학당에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위에서 말한 후에 세종학당에 아주 반가운 표정으로 들어오신 중년 관광객은 학당에서 학당장님과 차를 마시며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국어 교육에 관심이 많다며 우리 파견 교원과도 이야기하기를 원했다. 그분은 은퇴하면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다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리고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질문했다. “선생님들은 직업으로 한국어를 가르치시는 거예요?” 우리가 그렇다고 하자, 살짝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즘은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한국어 가르치는 것도 직업으로 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네요.”


그분이 이런 말을 한 이유는 아마 마음속에 ‘한국어 가르치는 일을 쉬운 것,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분 생각에는 젊은 사람이라면 힘든 일에도 도전하고 조금 더 전문적인 일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일자리가 없어서 ‘쉬운 일’이라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로 보였을 것이다. 한국어를 가르쳐 보지 않았으니 한국어를 가르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남의 직업을 그냥 본인 생각에 쉬워 보인다는 이유로 평가 절하하는 것은 굉장히 실례되는 일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 한국어 교사들은 이런 일을 많이 당하는 편이다. 실제로 내가 한국어 교육을 공부한다고 하자 ‘한국어 그거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가르치는 거’라며 대놓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다른 한국어 교사들에게 이런 일을 겪었다고 말하자 그분들도 많이 겪었다고 했고, 심지어는 이제는 너무 자주 겪어서 무덤덤하다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다. 아마 해외 한국어 학당을 구경하러 온 불청객들도 본인들은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무의식적으로 한국어 교육을 낮게 보기 때문에 ‘연락도 없이 찾아와도 되는 곳’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물론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쉬운 일인 건 아니다. 특히 ‘잘’ 가르치는 건 더 어렵다. 예전에 한국어 교육 관련 책도 내시고 현직에서 일하신 지 10년이 넘은 교수님이 말씀하셨는데, 본인은 한 번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게 쉽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아직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게 어렵다고 하셨다. 나는 한국어 교육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말할 때 쓰는 문법 ‘-아서/어서’와 ‘-(으)니까’의 차이를 아느냐고 물어보는데, 당연히 질문을 받은 대부분은 대답을 못한다. 한국인들은 한국어를 자연적으로 습득했고 계속 써 왔기 때문에 둘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도 말하는 게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아서/어서' 뒤에는 명령과 제안, 권유하는 표현이 오지 않고, '고맙다, 미안하다' 같은 감정 표현을 할 때는 '-(으)니까'가 아니라 '-아서/어서'를 쓴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으면 '집이 더러워서 청소하세요.', '도와줬으니까 감사합니다.' 같은 어색한 문장을 쓰게 된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어를 잘하는 것과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별개의 문제이다.


수많은 교사들이 한국어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밤낮으로 문법과 어휘 교수법을 연구하고 전공 지식을 공부하며 대학원에서 논문을 쓴다. 한국어 교사가 다른 직업에 비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쉽게 일한다는 오해를 하며 무시하지 말고 존중해주었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어 말하기 대회, 한국 문화 행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