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은 아니었고 그냥 다니라고 하니까 다닌 거였지만, 교회에서 주는 간식과 밥이 맛있었고 가끔 하는 행사도 재미있었고 같이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나에게 잘해 주어서 교회를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세계사에 빠져들게 되면서 기독교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세계사에는 '종교'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전쟁과 학살이 벌어졌었다. 그리고 내가 공부한 종교 전쟁과 학살의 대부분은 기독교가 저지른 일이었다.(고등학생이 공부하는 세계사가 유럽 중심으로 전개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인물들을 비난했지만, '이런 일이 역사적으로 계속해서 반복된 거면 어쩌면 기독교 자체가 잘못된 거 아닐까? 아니, 종교 자체가 인간의 욕심과 나약함이 만들어낸 허구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교회로 가는 내 발걸음을 점점 더디게 만들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도 교회가 종교라는 명목으로 저지르는 여러 사건 사고들, 번화가에서 그리고 학교 정문에서 시도 때도 없이 외쳐 대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 때문에 나는 교회에 완전히 발길을 끊었다.
교회를 안 다니게 되자 자유로운 주말을 얻은 동시에 '교회를 다니지 않는 죄'도 얻었다. 나에게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하지 않았고, ‘당연히’ 나와야 하는 교회를 나오지 않는 것을 책망했다.
"예수님은 너를 사랑하시는데 너는 왜 교회를 안 다니니?"
지겹도록 많이 들어본 말. 나는 예수에 대해 기독교인들만큼은 잘 모른다. 예수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잘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상대방이 나한테 준다고 해서 나도 당연히 줘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나는 그렇게 내가 받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사랑에 보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때때로 죄인 취급을 받았다.이렇게 내 마음속에는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쌓여 갔다.
그렇게 고등학교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계속 기독교를 믿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 내가 약 1년 동안 신앙심도 없이 성당에 다닌 적이 있다.
2015년 가을쯤이었다. 당시 나는 몽골에 코이카 봉사 단원으로 파견 가 있었다. 내 정신과 마음은 이런저런 이유로 지쳐 있었다. 힘내야지, 포기하지 말아야지, 계속 힘을 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고 성당에 다니는 동료 코이카 단원인 H 선생님께서 성당에 한번 나와 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하셨다. 나는 당연히 기독교를 안 믿는다고 거절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믿으라고 와 보라는 게 아니야. 성당 미사가 은근히 재미있다? 분위기가 엄숙하고 차분해서 마음 정리도 되고, 경험하지 못했던 걸 보면 새로워서 기분 전환도 될 거야."
좋아하는 선생님의 제안이기도 했고 주말에 할 일도 없는데 한번 가 보자 싶어서 성당에 갔다. 성당 미사는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하고 비슷할 줄 알았는데, 은근히 다른 점이 많았다. 선생님 말씀대로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보니 새로운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숙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미사를 드리니 선생님 말씀대로 복잡했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다들 신부님의 말씀을 들을 때와 기도를 드릴 때,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상과 눈을 감고 자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을 보며 그들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다. 내가 왜 힘든지,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 특히 예수에게 말을 걸었다.
'예수님, 당신을 믿지는 않지만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저는 봉사자인데도 타인을 위해 제가 희생해야 할 때 가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렇게 이기적입니다. 당신이 정말 존재했던 사람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타인만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었나요? 저는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것도 제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너무 힘든데 당신은 어떻게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죄조차 책임지고 떠날 수 있었나요?'
미사가 막바지에 이르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앞으로 나가서 신부님께 성체(떡)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H 선생님은 세례를 받은 사람만 저걸 먹고 안 받은 사람은 신부님의 축복만 받는다고 하셨다. 내 차례가 되자 신부님은 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아주 짧은 기도를 하셨는데, 그 손길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 주는 것 같아 좋았다.
성당에 한 번 갔다 오니 확실히 마음이 안정되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것인가 싶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H 선생님을 따라서 몇 번 성당에 갔다. 나는 계속 예수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며 위안을 얻었다. H 선생님께서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성당에 혼자 갔었는데, 불편한 마음이 점점 생겼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것을 떠나 싫어하는 내가 성당에 다닌다? 신부님에게도, 그리고 신과 예수에게도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점점 성당이 불편해졌다. 어느 날은 헌금을 하지 않고 미사가 끝나고 바로 나가려고 했는데 말도 한번 나눠 보지 않은 성당 사람들이 나를 불러 세웠다.
"아니, 왜 그냥 가요? 점심 먹고 가야지. 오늘 맛있는 거 했어요."
"죄송하지만 제가 헌금을 안 해서요."
"그게 왜요?"
"네?"
"헌금이 무슨 상관이에요. 헌금 그거 안해도 돼요. 신경 쓰지 말고 오세요."
나는 엉겁결에 식당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나를 식당에 들여보낸 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헌금을 내지 않아서 그냥 가려고 했다는 걸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다 ‘아이고 그런 걸 왜 신경 써요!’라고하며 나를 자리로 안내했고, 심지어 내가 간식으로 나온 빵을 좋아하자 많이 가져가라며 싸 주셨다. 따뜻한 분위기도 나를 위해주는 그분들의 마음도 좋았지만, 역시 그만큼 죄책감이 들어 더 이상 성당에 안 가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 수녀님들을 만나게 되었다. 수녀님들은 몽골에서 청소년 센터를 운영하셨는데 우연한 기회에 청소년 센터에 가게 되어 만나게 된 것이다. 수녀님들께서 나에게 왜 요즘 성당에 나오지 않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예전에 ‘왜 교회에 안 나오냐’며 질책받던 기억이 생각나 조금 불편해졌다. 그때는 ‘그냥요’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이번에는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몇 번 다녀도 믿음이 생기질 않아서요. 성당에 가면 마음도 차분해지고 위로도 많이 받아서 정말 좋은데, 제가 믿음이 생기질 않아서 죄책감이 들어요."
이 말을 하자 수녀님들은 놀란 표정으로 손뼉을 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 그럼 더더욱 성당에 다녀야지!"
믿음이 생기지 않는데 성당에 다녀야 한다고? 무슨 말씀이실까?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수녀님을 이어서 말씀하셨다.
"믿음이 없는데도 성당에 와서 위안을 얻는다니, 이게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성당에서 평안을 못 얻는 사람이 많은데, 자매님은 믿지 않는데도 성당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으신다는 거잖아요? 예수님께서 이런 말을 들으시면 손뼉을 치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실걸요?"
수녀님들은 말씀하신 '손뼉을 치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예수님이 나를 보며 저렇게 좋아하신다고? 믿음이 없는 내가 성당에서 위안을 얻는다는 말을 듣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랬다. 내가 아는 ‘예수’는 자기를 믿지 않는 사람을 배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려 했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종교, 신분, 하는 일에 관계없이 그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긴 존재였다. 그런 ‘예수’라면, 내가 자신을 믿지 않는데도 자신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하면 정말로 좋아하지 않을까? 입장을 바꿔서 한국을 싫어하는 누군가가 우연히 내 수업을 들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온다고 하면 한국어 선생님인 나도 속으로 ‘박수를 치며’ 좋아하지 않을까?
수녀님의 말씀은 살면서 들어왔던 그 어떤 전도하는 말보다 더 강하게 나를 성당으로 이끌었다. 그 이후 나는 마음이 복잡해지면 어김없이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렸고 성당 사람들과 점심을 먹었다. 예수님과 신을 믿지 않는다고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를 보며 손뼉을 치며 아이처럼 좋아하신다니 죄책감을 느낄 이유가 없어졌다. 성당에서 야외 캠프를 갈 때도 같이 갔고 최초로 몽골인 신부가 탄생하는 자리에도 가서 행사를 즐기며 새로운 신부를 축하해 주었다.
몽골에서 귀국한 이후 나는 더 이상 성당에 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예전처럼 기독교를 싫어하진 않는다. 생각해 보면 내가 기독교를 싫어한 이유는 기독교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자신들의 종교를 이용해 크든 작든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 때문이었다. 종교에 대해 비판을 할 수는 있지만, 종교를 이용한 사람의 잘못으로 그 종교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비록 기독교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에 대한 비판 의식 없이 몽골에 갔다면 그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종교를 전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강요가 아닌 수녀님들과 같은 이해와 포용이 아닐까.
가끔 수녀님들의 말씀을 떠올리며 예수님과 같은 아니 조금이라도 비슷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나를 통해 마음의 위안과 평안을 얻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처럼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것 까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만족을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