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 글씨가 못생겼어요! 글씨 좀 예쁘게 쓰세요!”
베트남 후에(HUE) 시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지 1년쯤 되던 어느 날, 초급 학생들 쓰기 숙제 검사를 할 때 A라는 남학생에게 웃으며 크게 말했다. 한국어 초급 학생들은 글씨를 예쁘게 못 쓰는 게 보통이지만, A의 경우는 좀 심했다. 이제까지 가르친 학생 중에서 가장 글씨를 못 썼다. 너무 못 써서 읽을 때 미간을 찌푸리며 읽어야 할 정도였다. 마침 지난 시간에 ‘예쁘다, 못생기다’를 배웠던 터라 학생들에게 재미도 줄 겸 단어 복습도 할 겸 글씨를 너무 못 쓰는 학생에게 잔소리도 할 겸 한 말이었다.
내 말을 듣고 A는 쑥스러워하면서도 크게 웃었고 다른 학생들도 웃었다. ‘하하하 못생겼어요!’ 하면서.
A는 항상 왼손으로 글씨를 썼다. 왼손잡이인가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글씨를 너무 못 써서 오른손으로 써 보라고 한 것인데 학생은 그냥 머리를 긁적이며 실실 웃기만 했다. 나는 가끔 A에게 글씨 연습을 더 하라는 의도로 쓰기 숙제를 일부러 더 주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2개월 후, 아침에 A가 수업을 듣는 3권 반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갔다. A는 일찍 와서 쓰기 숙제를 하고 있었다. 나는 옆에 바짝 붙어서 잘못 쓴 부분을 고쳐줬는데, 그때 내 눈에 그의 오른쪽 검지 손가락이 들어왔다. 완벽하게 옆으로 꺾여 ‘ㄱ’ 모양이 된 그 손가락을.
나는 처음 한글을 가르치는 단계부터 그때까지 쭉 A를 가르쳤고, 내 기억에 분명 A는 처음에는 장애가 없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A는 왼손잡이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분명 오른손으로 글씨를 썼었고, 그렇게 심하게 글씨를 못 쓰지 않았다.
당황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A에게 이거 언제 그런 거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A는 내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멋쩍게 웃었다. A는 한국어를 공부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간단한 한국어밖에 말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한국어를 쭉 같이 공부한 다른 학생들이 A를 대신하여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가며 나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사고를 당한 것은 1권을 공부할 때였다. 항상 출석하던 A가 갑자기 2주 동안 결석을 한 적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에게서 A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는 말은 들었지만, 학생의 건강이 걱정되기보다는 2주 동안 빠져서 수업을 못 따라오는 것이 더 걱정되었다. 학교 수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병원에 간다거나 고향에 내려간다고 유학 비자를 준비한다고 학생들이 빠지는 일은 자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사실 A는 손가락 사고를 당해 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A는 부모님과 같이 가내 수공업을 하는 20대 중반 청년이다. 후에 시는 도시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시골 같은 곳이었는데, A가 사는 곳은 후에에서도 오토바이로 40분을 타고 가야 하는 완전 시골이었다. A는 아침 9시에 2시간 한국어 수업을 듣기 위해 왕복 1시간 20분을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학생이었다. A의 집 근처에는 병원이 없었고, 그나마 도시인 후에에서도 의료 환경은 정말 안 좋았다. 집에서 일을 하던 A는 기계에 손가락이 눌리는 사고를 당했고, 그 즉시 후에에 있는 병원으로 갔지만 이미 시간도 많이 지난 후였고 의사도 치료를 잘못해 그대로 손가락 장애가 생겨버렸다는 것이 학생들의 증언이었다.
A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오른손을 흔들며 말했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난 이 학생을 처음부터 가르쳤는데도 장애가 생겼다는 것을 몰랐다. 조금만 더 관심을 보였다면 학생이 왼손잡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을 텐데. 조금만 더 세심하게 봤다면 오른손 손가락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내 시선은 글씨를 쓰는 학생의 왼손과 쓰기 결과물에만 고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내가 옆으로 올 때마다 검지가 안 보이게 감싸거나 슬그머니 오른손을 밑으로 내리는 A의 행동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 놓고 글씨를 못 쓴다고 잔소리를 하고 숙제를 더 주고, 심지어는 반 학생들 앞에서 글씨가 못생겼다고 놀리기까지 했다!
그 무렵 나는 수업을 꽤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수업은 항상 물 흐르듯이 순탄하게 진행되었고 학생들은 나에게 수업이 너무 재밌고 선생님 덕분에 한국어 실력이 늘었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같이 여행을 가자, 우리 고향 집에 초대하고 싶다, 수업 끝나고 같이 밥 먹자는 등 나를 좋아해 주는 학생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A의 손가락은 그런 나의 자만을 깨부수었다.
학생과 선생이라지만 A는 나보다 불과 두 살 아래였다. 만약 내 손가락이 이렇게 됐으면 난 어땠을까? 난 겨우 20대밖에 안 된 나이에 장애를 얻은 것에 비관하며 세상을 원망했을 것 같다. 그것도 하필 오른손을 다쳤다는 것에 더 비관했을 것이다. 내 손가락을 보며 동정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손가락을 숨기며 살았을 것이고 희망차고 밝은 미래는 꿈도 꾸지 못하고 암울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A는 달랐다. 사고를 당하고 2주 만에 돌아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활기차고 낙천적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A에게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했는데 A는 오히려 글씨를 못 써서, 선생님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나에게 사과했다. 참 여러모로 부끄러웠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