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냄새가 나긴 했나 보죠?

신오쿠보에서 김치찌개를 먹었을 뿐인데, 밤이 길어졌다 Ep.5

by 추설

Ep.5


카페는 김치찌개집에서 두 블록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안쪽에서 커피 머신 소리가 낮게 울렸다. 신오쿠보 특유의 소음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멀어졌다.

자리에 앉기 전, 그녀가 메뉴판을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저는 늘 이거 먹어요.”

티라미수와 카페라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다른 걸 고를 이유가 없었다.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을 때, 그녀는 컵 받침을 정리하며 나를 한 번 봤다.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에는 약간의 망설임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앉자마자 이런 말부터 해서 좀 그런데요.”

그 말에 괜히 등을 곧게 세웠다. 긴장 탓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미리 말씀드릴 게 세 개 있어요.”

세 개라는 숫자가 생각보다 크게 들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듣겠다는 뜻이었다.

“첫 번째는요.”

그녀는 말을 고르듯 잠깐 멈췄다가 이어 말했다.

“잘 아시겠지만… 저, 지금 몸에서 김치찌개 냄새날 거예요. 그건 좀 이해해 주세요.”

순간 웃어야 할지, 고개를 저어야 할지 몰라 어정쩡해졌다. 괜히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 네.”

짧은 대답 뒤에 공백이 생겼다. 그녀는 그 틈을 그냥 두지 않았다.

“어머, 냄새가 나긴 했나 보죠?”

장난처럼 던진 말이었다. 나는 순간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시선을 컵 쪽으로 떨어뜨렸다.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요.”

괜히 말을 덧붙였다.

“이번 주 내내 먹었더니 김치찌개 냄새는… 익숙해서요.”

그 말이 끝나자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다행이다. 괜히 저만 신경 쓰였어요.”

그 말에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조금 풀렸다.

“두 번째는요.”

이번에는 말을 조금 더 빠르게 이었다.

“이것도 아시겠지만, 저는 한국인이에요. 그래서 일본어 너무 어려운 표현은 잘 못 알아들어요. 특히 비유나 돌려 말하는 거요. 그래서 양해를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말투는 완전히 자연스럽다고 하긴 어려웠지만, 외국인이라는 걸 생각하면 꽤 잘하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더 솔직하게 들렸다.

“아, 네. 당연한 거죠.”

이번에는 바로 대답이 나왔다. 오히려 그 말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그녀는 잠깐 숨을 고른 뒤 마지막 말을 꺼냈다.

“그리고 세 번째는요.”

이번에는 시선을 컵 받침으로 옮겼다가, 다시 나를 봤다.

“제가 왜 여기 오게 됐는지는… 나중에 천천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그건 오늘은 묻지 말아 주세요.”

말투는 조심스러웠지만 분명했다. 부탁이라기보다는 미리 선을 긋는 느낌에 가까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묻고 싶다는 생각보다, 묻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알겠습니다. 굳이 말씀하고 싶지 않으신 거라면 안 하셔도 돼요. 궁금해하지도 않겠습니다.”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맞는 대답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커피와 티라미수가 나왔다. 라떼 위에 얇게 그려진 거품 무늬와, 티라미수 위의 코코아 가루가 정갈했다.

그녀는 티라미수를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나도 따라 한 숟갈을 떴다.

“생각보다 잘 어울리네요.”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쁜 말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카페 안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말이 많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말이 많아지면 깨질 것 같은 균형이 있었다.

나는 라떼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했다. 오늘은 김치찌개집이 아니라 카페에 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가 내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 그 둘이 아직은 잘 이어지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티라미수 접시가 조금씩 비어갈 즈음이었다.

“원래 말이 이렇게 적은 편이에요?”

갑작스럽지는 않은 질문이었다.

“아… 네. 좀 그런 편이에요.”

“그래서 아까부터 제가 계속 말했나 봐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괜히 덧붙였다.

“듣는 건… 편한 편이라서요.”

그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잠깐의 공백이 흘렀다. 어색하지는 않았다.

“아, 근데요.”

그녀가 다시 말을 꺼냈다.

“제가 계속 손님이라고 부르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계속 그렇게 불러도 되나 싶어서요. 그쪽이라고 부르기엔 또 좀 그렇고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언제까지나 손님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어머.”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너무 앞서간 건가요?”

“아, 아니에요.”

긴장한 탓에 말이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그녀는 잠시 나를 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냥요. 오랜만에 이렇게 얼굴 마주 보고 편하게 얘기하는 것 같아서요.”

말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여기 온 뒤로 친구가 없거든요. 늘 가게 분 들하고만 얘기했어요. 물론 다들 정말 좋은 분들이에요.”

그리고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도 이렇게 앉아서 얘기하는 건, 좀 다르네요.”

잠깐의 틈 뒤,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손님은 어떤 사람인지, 언제 알려주실 생각이에요?”

정말 말할 사람이 필요했나 보다. 그런 생각이 스쳤다.

“아… 네.”

말을 꺼냈다가 잠깐 멈췄다.

“제가 제 얘기를 잘하는 편은 아닌데요.”

“괜찮아요.”

그녀가 바로 말했다.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나씩 말씀드릴게요.”

그녀가 조용히 웃었다.

“제 이름은 쿠도 유우키예요.”

“유우키요.”

“네.”

“이름이 너무 이쁘네요.”

“아… 감사합니다.”

“부르기 어렵지도 않고요.”

그 말에 그녀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스물여섯이고요. 작은 광고 회사에 다녀요.”

말을 마치고 그녀가 나를 봤다.

나는 라떼를 한 모금 더 마신 뒤 입을 열었다.

“그럼…”

잠깐 멈췄다가 말했다.

“앞으로는 쿠도 씨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불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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