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금요일 퇴근길인 나는 집에 들어가기 싫은 나머지 늘 가던 지름길인 골목을 통하지 않고 큰 길가 옆에 공원을 가로 질러 갔다. 그를 다시 마주친 건 이 때였다. 그는 예전과 똑같은 옷차림으로. 벤치에 누워 있었다.
어쩐지 반가웠다. 몇 번밖에 보지 못한 사람인데도.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뛰었다. 왜 그런지는 몰랐다.
"오랜만이네요. 한동안 안 보이더니."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봤다. 역시나 그 차가운 시선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누구시죠? 사람을 잘못보신 것 같네요"
"비 오던 날, 그때 말 걸었던 사람."
"…아."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죠.. 오랜만이네요."
말투는 변한 게 없었다. 느리고, 건조했고, 차가웠다. 문장 사이사이에 뜸이 있었다. 여전히 어눌했다.
"요즘은 왜 거기 안 와요?"
"좀... 질려서요. 눕지도 못하고."
"그럼 여긴 누우려고 온 거예요?"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그냥요. 여기, 누울 수 있으니까요."
대답이 무심했다. 나는 한 발 더 다가가 물었다.
"근데… 그쪽은 원래 이렇게 살아왔어요?"
"...어떻게요."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그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옆얼굴에 가로등 빛이 희미하게 걸렸다. 주황빛이 창백한 피부 위로 번졌다.
"…백수가... 그런 거죠 뭐. 그럼 어떻게 살아야 되는데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그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구겨진 셔츠 자락을 대충 털며 말했다.
"다 그렇죠 뭐. 상대 기분은 생각도 안 하고 물어보고는... 궁금하다는 이유라고."
그의 사람을 무안하게 만드는 대답에 역시나 오기가 들어서인지 살짝 웃으며 되받았다.
" 그쪽도 사람인데요? 그쪽은 사람한테 궁금한 거 없어요?"
"...없어요."
짧은 대답. 그 조용함이 묘하게 거슬렸다.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벤치에 올려놓고 말했다.
"그럼 오늘… 저랑 같이 술 마셔요."
그가 날 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눈이 잠깐 마주쳤다.
"네? 왜요? 제가... 그쪽이랑요?"
"네. 오늘은 금요일이니까요."
그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같이 먹을 생각... 없는데요. 그쪽한테는 금요일이라 신났을지는 몰라도, 저한테는 그냥... 지나가는 하루라서요."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 더 다가섰다.
"술 한 번만 먹어줘요. 그럼 더는 귀찮게 안 할게요. 어차피 여기서 할 것도 없잖아요."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지는 사람처럼.
"하아… 가요, 가. 대신... 미리 말해두죠. 전 돈 한 푼도 안 낼 거예요."
"네. 누워만 있는 사람한테 얻어먹을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나는 그를 한번 훑어보고는 못 이긴 듯 웃었다.
"근데 그 셔츠랑 바지, 여러 벌 있는 거죠?"
그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런가 보죠."
"하여간…"
우리는 동네의 작은 술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튀김 기름 냄새와 눅눅한 공기가 밀려왔다. 바닥은 낡았고, 벽엔 습기 자국이 남아 있었다. 형광등 불빛이 테이블 위로 희미하게 퍼졌다. 어딘가에서 환풍기 소리가 낮게 돌아가고 있었다. 손님은 네 팀 정도.
그는 말없이 구석 자리에 앉았다. 역시나 사람이 적은 쪽을 골랐다. 메뉴판을 건성으로 훑다 말고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그의 카메라는 그의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바디 한쪽에 뭔가 글씨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낙서 같은 게 읽히지 않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였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자세를 낮춰 천장을 올려다보고, 테이블 아래도 살폈다. 셔터를 몇 번 눌렀다.
(찰칵)
(찰칵)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물었다.
"그쪽, 백수라더니 무슨 사진작가 같은 건가요? 아니면 취미?"
대답이 없었다. 또 한 번 셔터를 누른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요?"
"사진작가예요? 아..프리랜서 같은 거?"
그가 멈칫했다. 뭔가 생각하는 듯 눈을 깜빡이더니 느리게 말했다.
"아... 아뇨. 그냥 뭐, 비슷한... 거 해요."
말끝이 뭉개지듯 흘러갔다.
"그렇군요. 대답하기 싫다는 거죠?"
"아뇨.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그게, 뭐라고 하더라."
허공을 보며 단어를 찾는 듯했다. 입술이 몇 번 움직였다가 멈췄다. 결국 포기한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그런 비슷한 거... 한다고 보면 돼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메뉴판을 들었다.
"술은 뭐 마실래요?"
"아무거나요. 그쪽이... 먹고 싶다 했잖아요."
"하아… 그래요. 그럼 소주나 마시죠."
"...네."
주문을 마친 뒤, 나는 턱을 괴고 그를 바라봤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그의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다. 시선은 여전히 테이블 위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근데 그쪽은… 저한테 궁금한 거 없어요?"
그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되물었다. 이번에는 눈이 마주쳤다. 잠깐이었지만.
"뭘 물어봐야 하죠, 제가?"
"진짜 예의 없네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말이라도 좀 곱게 하던가."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해요. 근데… 전 사람한테 궁금한 게... 잘 없어요."
잠시 그를 봤다. 특이한 사람이란 건 알았지만, 그 말은 조금 뜻밖이었다.
"사람한테 궁금한 게 없다니… 그럼, 보통은 뭘 궁금해하죠?"
"뭐… 그냥요."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하긴 우리 이렇게 대화하는건 오늘 처음이니까"
테이블 위로 소주와 잔이 놓였다. 병에 맺힌 물방울이 형광등 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잔을 채우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사진은 열심히 찍는 것 같은데. 그런 거에 관심이 있나 봐요. 사물? 풍경?"
그가 잔을 받아들며 고개를 돌렸다.
"네, 그런 건 좀... 있어요. 어릴 때부터 그랬거든요. 내 기준에서 예쁘거나... 신기한 게 있으면, 계속 시선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사진을 찍고, 나중에 다시 보고. 그게... 좋아요, 저는."
평소보다 말이 길었다. 목소리가 조금 또렷해졌다. 관심사 얘기라 그런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이상하게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그래도 사람이긴 하네요. 관심사 얘기하니까 말이 좀 늘었어요."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입꼬리만 살짝 올라간, 쑥스러운 얼굴. 그 표정이 묘하게 눈에 남았다. 무뚝뚝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웃으면 조금 달라 보였다. 어려 보인달까. 아니, 그보다는 부드러워 보인달까.
"아… 뭐. 좀... 부끄럽긴 하네요."
"의외로 부끄러움을 잘 타네요?"
나는 턱을 괴고 물었다. 내 목소리가 평소보다 부드러워진 걸 느꼈다.
"평소에는 무슨 생각을 해요?"
그가 눈을 깜빡이더니 잠시 뜸을 들였다.
"...작품 생각요."
"작품 생각...?"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기하네요. 예술가들이나 하는 말 같아요. 역시, 그런 쪽 일 하시는구나."
그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네. 뭐, 그런 거예요. 아까도 말했듯이, 비슷한 거... 하고 있어요.."
나는 피식 웃었다.
"작품 생각이라니, 보통은 그런 말 하면 오글거리는데… 그쪽은 진짜 그런 사람 같아서 좀 납득돼요."
그가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흉내 내기일 뿐이에요. 어차피... 쓰레기나 만들고 있는 거겠죠."
잠깐 당황했다. 위로를 해야 할지, 흘려야 할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쓰레기라뇨. 본인이 만든 거잖아요. 아까처럼 '작품'이라고 불러야죠."
그는 얼굴을 들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스스로 그렇게 말하면... 아무도 제대로 봐주지 못해요."
그가 마지못해 웃으며 고개를 틀었다.
"그렇게 말해주는 건 고맙지만... 그냥,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감상은커녕, 그냥... 지나치기 바쁘니까."
"감상...?"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전시 같은 것도 해요?"
"가끔이요. 진짜... 아주 가끔. 하지만 뭐, 반응은... 뭐 그냥 그래요."
말투는 담담했지만 어딘가 무게가 느껴졌다.
나는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됐어요. 누군가는 하고 싶어도 못해요. 그쪽은 적어도 하고 있잖아요."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잔을 잡은 손가락이 길었다. 마디가 앙상했다.
"나중에 잘되면, 저한테 사인이나 해주세요."
그가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나를 봤다. 이번에는 눈이 제대로 마주쳤다.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
"나중에요...? 뭐, 그런 게 있다면... 그러죠."
"잘될 수 있죠. 뭘 또 그렇게 말해요. 후…"
그 후 대단한 이야기는 없었다. 헛소리 같은 농담, 대답인지 모를 말들. 때때로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잔이 비어 있음을 확인할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술집 안에는 우리 둘만 남았다. 환풍기 소리만 낮게 돌아갔다. 적당한 정적이 오히려 편했다. 이상했다. 처음 만난 사람인데, 침묵이 어색하지 않았다.
"나갈까요."
그가 먼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움이 있었지만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문을 열고 나서자 바람이 차가웠다. 마신 술이 빠르게 식는 기분이었다. 골목에는 가로등 불빛이 드문드문 늘어서 있었고,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밤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초저녁보다 짙어진 가을 냄새.
우리는 말없이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아까 지나왔던 공원 쪽이었다. 발소리만 낮게 울렸다. 헤어지기 아쉬웠다. 왜인지는 몰랐다. 그냥, 이대로 집에 가기 싫었다.
"저기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잠깐, 앉았다 갈래요? 공원에서."
그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봤다. 시선은 여전히 내 어깨쯤에 머물러 있었다.
"...왜요?"
writer: 추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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