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코에서 가을을

ep.10

by 추설

지난 화 마지막:

"내기는 그쪽이 이겼고… 뭐, 우선 저희도 사진 한 장 찍어주시겠다는데 어쩔래요?"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좋아요! 너무 좋아요."

우리는 천천히 일본인 커플 쪽으로 걸어갔다. 남자가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향해 미소 지었다.

"じゃあ、撮りますね。 もう少し寄ってください。"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는 잠시 생각하고 대답했다.


ep.10 (이번화는 일본어가 있습니다. 번역을 안 하셔도 내용에는 지장이 전혀 없습니다! )

"… 조금만 더 가까이..."

남자가 카메라 너머에서 다시 말했다.

"もう少し、もう少し!"

"이번엔 뭐래요?"

"조금만 더 붙어보시래요. 그쪽이랑 나.."

그녀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네?"

나는 짧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좀… 후.. 잠깐만요."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볼이 빠르게 붉어지기 시작했다.

"いいですね、そのまま! はい、笑って!"


(찰칵)


남자가 화면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ですね。 いい写真です。"

나는 조용히 숨을 고르며 말했다.

"… 이쁘게 나왔대요."

그녀는 대답도 없이 경직된 몸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미안해요. 갑자기 좀 불쾌했죠?"

"아… 아뇨! 뭐, 괜찮아요. 제가 애도 아니고."

"왜 그래요?"

"아뇨, 아니에요. 어쨌든 내기는 제가 이긴 건가요?"

"후..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뭐가 그렇게 궁금하신 건데요."

"음… 궁금한 게 산더미인데요. 이건 좀 아껴뒀다가 물어볼게요."

"그래요 그럼 나중에 물어봐요 나중에. 그보다 우리 꽤 오래 있었네요. 슬슬 나갈까요?"

"그러네요. 계산은 제가 할게요. 항공권에 숙박비까지 다 그쪽이 결제했잖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역시 더 비싼 걸 먹었어야 했는데 덕분에 잘 먹었어요."

건물 밖으로 나오자 짙은 바다 냄새가 바람에 섞여 있었다. 멀리 부두에 정박한 배의 흰 선체가 노을빛에 물들어 있었다.

"와… 진짜 바다네요. 이렇게 바로 앞일 줄은.."

"항구니까요. 모지코는 바다랑 붙어 있죠. 항구 도시니까"

그녀는 유리 난간 쪽으로 몇 걸음 다가갔다.

"이런 데 너무 좋아요. 조용하고…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져요."

나는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노을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때, 손끝이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찰칵)


"셔터음? 저 찍은 거예요?"

나는 당황해서 카메라를 내리며 시치미를 뗐다.

"그쪽이 뭐가 예쁘다고 제가 그쪽 사진을 찍어요?"

그녀는 순간 눈을 가늘게 떴다가 작게 웃었다.

"그러게요. 하긴 그쪽 눈에 제가 뭐가 예쁘겠어요."

그녀는 다시 바다 쪽을 향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손끝에는 아직도 방금의 잔열이 남아 있었다.

항구 앞 산책로로 나왔다. 이번에는 노을빛이 물 위에서 부서지며 잔잔한 금빛이 퍼졌다.

그녀가 멀찍이 서 있는 노란 조형물을 가리켰다.

"저거 봐요, 바나나. 저게 그렇게 유명한 거라면서요? 모지코 바나나맨?"

"네. 관광객들한테 인기 많아요. 이 항구가 예전엔 바나나 수입지였다고…"

"참나, 본인은 관광객 아닌 것처럼 말하네요?"

"뭐… 한두 번 오긴 했으니까요."

우리는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대단한 이야기가 오가는 것도 아니었고, 여행 중 스쳐 지나가는 대화처럼 가볍고 편안했다.

길 끝에 바다를 향해 설치된 큰 액자 프레임이 보였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쪽 씨. 한 장 찍어줘요."

나는 카메라를 들어 눌렀다.


(찰칵)


사진을 보려고 그녀가 다가오자 나는 화면을 손으로 살짝 가렸다.

"봐도 돼요?"

"안 돼요."

"왜요?"

"편집 좀 해야 해요. 모델이… 너무 못 나와서."

"네??? 뭐라고요?"

"농담이에요. 나중에 보여줄게요."

"하… 진짜 말을…"

고개는 돌렸지만 입술 끝이 조금 올라가 있었다.

우리는 바나나맨 근처 벤치로 향했다. 노을은 점점 깊어져 바다를 붉게 물들였다.

"여기… 너무 좋네요. 괜히 마음이 멈추는 것 같고요."

"그런가요."

그녀는 무릎 위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괴었다.

"그쪽."

"왜요."

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요새 너무 지쳐 있었거든요. 근데… 오늘은 좀 평화롭네요."

노을빛이 그 표정에 스며들었다. 나는 이유도 모르게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뭐, 그러라고 데리고 온 거니까요."

"네?"

"말 그대로죠. 지쳐 있던 것 같아서요. 그날 재밌게 놀아준 보답이라고 생각하세요."

"오… 꽤 친절한 사람이네요?"

나는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뭐… 편하게 생각하세요."

"근데 배도 부르고… 근처 카페라도 갈래요?"

"카페 좋죠."

조금 걷자 따뜻한 우드톤의 카페가 보였다. 창문 너머로 은은한 조명이 번지고 있었다.

카운터 앞에서 메뉴판을 보던 그녀가 물었다.

"저는 아포가토 먹을래요. 그쪽은요?"

"… 초코우유요."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네? 초코우유요?"

"카페인 못 먹어요."

그녀는 결국 웃음을 삼키지 못했다.

"아… 진짜요? 그쪽 이미지랑 너무 안 어울려요."

"이왕 시키는 김에 빨리 골라주세요. 이 굴욕은 빨리 끝내고 싶으니까요."

우리는 창가 쪽 조용한 자리에 앉았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 항구의 불빛이 선명했다.

"모지코 참 좋네요."

"그렇군요."

"그쪽은 왜 늘 그렇게 건조해요?"

"습관이요."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편했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았을 때 그녀가 컵을 내려놓았다.

"흠흠… 근데, 이제는 물어봐야겠어요. 저희 오늘 어디서 자요? 방은… 어떻게 쓰는지. 그래도 저희가… 이성이잖아요."

나는 별생각 없이 말했다.

"아, 방은 하나로 잡았어요. 그게 더 편하니까요."

"…네??? 뭐라고요…?"

"지난번에도 같이 잤잖아요. 그래서 그냥… 하나로 했는데요."

그녀의 표정은 순간 굳었다가 바로 붉게 물들었다.

"그… 그건, 그날은… 아, 진짜…"

잠시 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관은 없는데… 그래도 미리 말해줘야죠."

나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말했다.

"그때는 무섭다면서 자고 가라고 한 사람은 어디 가고요?"

"참나, 그쪽이야말로 여자 집은 처음이라네 뭐라네 하면서 아주 선수였네."

나는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그럼… 방 하나 따로 잡아드릴까요?"

그녀는 휴대폰을 낚아채며 말했다.

"됐어요. 됐다고요."

"걱정 마세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요. 그쪽이랑은."

"참나, 어이가 없어서. 저도 그쪽이랑은 정말 사양이거든요?"

그녀는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 갑자기 톤을 바꿨다.

"여행하면 술이 빠지면 안 되잖아요? 근처에… 괜찮은 술집 있어요?"

나는 입가에 조그만 미소를 걸며 말했다.

"그쪽한테 술이 빠지면 안 되는 건 알아서. 근처에 찾아본 곳이 있어요. 역 쪽에 오래된 이자카야예요. 가본 적은 없지만"

"오 좋다. 이자카야!"

나는 일어서며 말했다.

"근데, 여기 모지코는 이자카야가 생각보다 일찍 문 닫기 시작할 수도 있어요."

"그래요? 그래도 첫날은 이자카야를 가야죠."

"그쪽이 일본 처음이죠. 저는 아니고요."

카페 문을 나서자 모지코 밤공기가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항구 쪽으로 이어지는 골목은 조용했고, 수면 위에는 항구 불빛이 길게 깔려 있었다.

"밤이 되니까… 정말 다르네요."

"여기는 원래 밤이 더 예뻐요."

길 끝 모퉁이를 돌자 왼편에 오래된 나무 간판이 걸린 작은 가게가 나타났다.

甚六 — JINROKU

낡은 목문, 따뜻한 노란 조명, 밖에 놓인 작은 화분들.

"와… 완전 일본 드라마에 나올 법한 분위기다."

"여기예요. 다들 후쿠오카로 돌아갈 시간이라 관광객도 거의 없고, 조용해서… 얘기하기 좋아요."

그녀는 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내 쪽을 봤다.

"그쪽 씨."

"네."

"오늘… 좀 재밌었어요."

나는 잠깐 멈칫했다.

"…네? 아… 네. 뭐, 그렇죠."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쪽한테…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냥요."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그런가요."

묘하게 편한 침묵이 잠시 흘렀다.

나는 문 손잡이를 잡고 살짝 밀었다.

철컥—


writer: 추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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