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코에서 가을을

ep.09

by 추설

지난 화 마지막:

"이제 진짜 먹죠.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정말 뜨꺼워요"

치즈가 길게 늘어났다. 그녀는 입술을 데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 작은 소리에 잠시 눈길이 갔다. 그러다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거뒀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올렸다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내려놓았다. 묘하게 익숙한 냄새였다.

그녀가 불쑥 물었다.

"그쪽은 여기를 어떻게 이렇게 잘 알아요? 한두 번 와본 것 같지가 않아서요. 단순 여행은 아니었겠죠. "


ep.09 (이번화는 일본어가 있습니다. 번역을 안하셔도 내용에는 지장이 전혀 없습니다! )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글쎄요. 그런가요."

"그렇죠? 아까 엘리베이터에서도 그렇고, 길 설명하는 것도 그렇고… 왠지 그랬어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세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곧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카레를 한입 떴다.

창밖에는 햇빛이 거의 기울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잠깐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뭔가 있는 거죠, 그쪽. 서두르지 않아도 돼요. 말하고 싶을 때 말해요. 우리 친구잖아요."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여행 첫날인데, 그런 얼굴로 있을 거예요? 식겠어요, 얼른 먹어요."

애처럼만 보이던 그녀가 잠깐은 어른처럼 보였다.

"네, 고마워요."

나는 조용히 카레를 한 숟가락 떴다. 그러다 문득 물었다.

"제가 궁금해요?"

그녀의 손이 잠깐 멈췄다.

"아, 아뇨? 누가 궁금하대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

"그래요? 알았어요. 뭐, 그럼 말고요."

그녀는 괜히 카레를 한입 더 떴다. 그리고 낮게 중얼거렸다.

"에… 알려주려던 거예요?"

"네. 궁금하다면요."

그녀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궁금해요. 알려줘요. 도대체 그쪽은 뭐예요?"

입꼬리가 살짝 움직였다.

"거짓말이에요. 나중에 알려줄게요."

"흥… 괜히 물어봤네요."

나는 아무 말 없이 접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숟가락을 든 채로 멈춰 있었다.

그녀가 그걸 보고는 조용히 말했다.

"안 먹어요?"

그리고는 별다른 생각도 없이 자기 숟가락으로 내 접시에서 한입 뜨고 후-하고 불어서 열을 식히고는 아무 망설임 없이 내 앞으로 가져왔다.

"입 좀 벌리세요."

당황스러웠다.

"뭐, 뭐 하는 거예요."

그녀는 대꾸도 없이 그 숟가락을 내 입에 밀어 넣었다. 뜨거운 향과 치즈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짧은 정적.

그녀는 그제야 손을 거두며 눈을 크게 떴다.

"…아, 응? 아, 흠흠. 하도 안 먹으니까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괜히 물잔을 들어 한 모금 삼켰다.

나는 말없이 숨을 고르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입 안의 온기가 괜히 오래 남았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걸 들키기 싫었다.

"이제, 진짜 먹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러죠."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로 카레를 한입 떴다. 나도 따라 숟가락을 들었지만, 아까보다 맛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식당 안의 공기가 조용히 가라앉는 듯했다. 5분쯤 흘렀을까. 그녀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꺼냈다.

"저기요, 흠흠… 그쪽 씨."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네, 말하세요."

그녀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너무 전망이 좋네요. 평일이라 그런가, 우리밖에 없어요. 전에도 와본 적 있어요? 혼자? 아니면 친구랑? 혹시 여자친구?"

나는 입가에 짧은 쓴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뭐가 그렇게 궁금하신지 모르겠네요. 전에 한 번 왔었어요. 아니, 두 번이었던 것 같기도."

"아니, 그러니까 누구랑요?"

"그냥 아주 예전에 친구요. 여자친구 그런 거 말고요."

그녀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입꼬리를 올렸다.

"음… 아닌 것 같은데요! 전 여자친구였죠? 아니면 혹시 짝사랑?"

"어휴, 무슨 말을 못 하겠네. 그냥 친구라니까요."

그녀는 나를 놀리는 게 꽤 즐거워 보였다. 그때 우리 말고도 다른 손님들이 들어왔다. 일본인 남녀 한 쌍이었다.

그녀는 시선을 그쪽으로 옮기며 말했다.

"오… 그러고 보니까 현지에서 일본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이서 얘기하는 건 처음 들어봐요. 진짜 외국이긴 하구나. 공항에서는 한국인도 많고 중국인들도 많아서 몰랐는데"

"여기선 그쪽이 외국인이죠. 흔한 일상인데요 뭐"

그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눈을 얇게 뜨고서는 말했다.

"흔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저기 봐요, 저 여자 얼굴이 빨개요. 손은 가지런히 무릎에 올리고 서는! 둘이 사귀기 직전인가 봐요."

나는 그쪽을 한 번 쓰윽 바라봤다.

"뭐, 더운가 보죠."

"이러니까 연애도 못하고 여기서 나랑 이러고 있지. 저 여자는 저 남자를 지금 짝사랑하고 있는 거예요."

그럴 리가 없었다. 내가 보기엔, 저 사람들은 이미 사귄 지 오래된 연인이었다. 남자의 그 무심한 태도,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아는 듯한 거리감이 그걸 보여주고 있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딱 봐도 저 사람들은 꽤 오랜 시간 같이 보낸 사이예요. 저 남자 표정을 봐요. 무뚝뚝하잖아요. 그리고 그러는 그쪽도 저랑 여기서 이러고 있잖아요?"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건 그쪽이 여자를 모르니까 그렇죠. 내기 할래요?"

평소의 나라면 이런 제안을 그냥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에게만큼은 이상하게도, 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죠. 어떻게 할 건데요?"

"하, 웬일이래요? 이렇게 순순히 동의하고. 그럼 이렇게 하죠. 서로 궁금한 거, 하나씩 묻기."

"저는 그쪽한테 궁금한 게 없는데요."

"허, 말 역시 밉게 하시네요. 그럼 소원으로 바꾸죠. 그쪽이 이기면, 그쪽 소원 들어주기."

"좋아요. 근데, 어떻게 그걸 알아낼 건데요?"

"쉽죠. 그쪽, 일본어 잘하잖아요. 빨리 물어보세요."

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나 낯가리는 거 알면서, 정말… 그리고 예의도 아니에요. 초면에 둘이 어떤 사이냐고 묻는 게."

"아이 참,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렇죠. 그쪽, 사진 작가잖아요. 그냥 둘이 너무 예뻐 보여서 사진 한 장 찍어드려도 괜찮은지 뭐 그런 식으로요. 사람이 이렇게 요령이 없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어깨가 움찔거렸다.

나는 일어서며 중얼거렸다.

"…하, 하여간. 하긴 저도 궁금하긴 하니까요."

"아, 어서요!"

그녀가 내 등을 조금 더 세게 밀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가 두 손을 모은 채, 기대와 장난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어떻게든 입을 열었다.

"あっ……すみません。僕、カメラをやってる者なんですけど……お二人があまりにも素敵で、もしよかったら一枚だけ撮らせてもらえませんか?"

두 사람은 잠시 얼굴을 마주봤다. 남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여자는 부끄러운 듯 손끝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はい、もちろんです。きれいに撮ってください。"

나는 숨을 고르며 카메라를 들었다. 셔터음이 작게 울렸다. 부드러운 오후의 빛이 두 사람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사진을 확인하며 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あの……失礼ですが、お二人は恋人なんですか?"

짧은 정적.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더니, 급히 손을 저었다.

"い、いえいえ!ち、違います!ただの友達です!"

볼이 붉게 물들었다. 남자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きれいな写真を撮ってくださっ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でも……そちらの方は彼女さんですか?写真家さんも、一枚撮りましょうか?"

그 말에 나는 허겁지겁 손을 저었다.

"い、いえいえ!違います!写真は大丈夫です!"

남자는 웃음을 터뜨리며 여자 쪽을 바라봤다.

"残念だな。勝負は君の勝ちだよ。実は僕たちも、ちょっとした賭けをしてたんです。写真家さんと、あそこの女性が恋人同士かどうかで。僕の負けですね。でもせっかくのご縁なので、お二人も一枚どうですか?"

이 사람들도 우리와 똑 같은 내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렇게 보인 걸까…

"じゃあ、お願いします。"

나는 자리로 돌아와 그녀를 향해 말했다.

"내기는 그쪽이 이겼고… 뭐, 우선 저희도 사진 한 장 찍어주시겠다는데 어쩔래요?"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좋아요! 너무 좋아요."

우리는 천천히 일본인 커플 쪽으로 걸어갔다. 남자가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향해 미소 지었다.

"じゃあ、撮りますね。もう少し寄ってください。"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대답했다.



writer: 추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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