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
지난 화 마지막:
"네. 서울은 빛이 너무 많아서 안 보이죠. 배 위에서 초저녁에 별을 보다니 너무 낭만적이네요."
배에서 내려 걷는데, 그녀가 갑자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꺼냈다.
"저…… 사실 제가 찾아본 곳이 있는데……."
"네?"
"그…… 그러니까……."
그녀가 쭈뻣쭈뻣거리며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에 뭔가를 띄우더니 내게 보여줬다.
모지코 레트로 전망대 사진이었다. 야경이 예쁘게 찍힌 사진.
"여기…… 가보고 싶은데……."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어딘가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가고 싶으면 가는 거죠. 뭘 그렇게 어렵게 말해요."
"진짜요?"
"같이 온 거잖아요. 친구라면서 그런 것도 편하게 못 말해요?"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환하게 웃었다.
"드디어 우리 친구 된 거네요? 제대로?"
"……."
얼굴이 뜨거워졌다.
"하여간, 무슨 말을 못 해요."
"에이,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아뇨."
"부끄러워하는 거 맞잖아요."
"얼른 가요. 전망대."
그녀가 킥킥 웃었다. 나는 앞장서서 걸었다. 얼굴이 빨개진 거 들키기 싫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가 말했다.
"오늘 많이 걸었네요."
"피곤해요?"
"아뇨. 너무 좋았어요. 그쪽 친구랑 대화도 하고."
"……."
"그쪽 씨는요?"
"저도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에 그녀가 숨을 삼켰다.
"우와……."
모지코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모지코와 시모노세키를 잇는 관문대교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바다 위로 도시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군데군데 떠 있던 별들은 하늘이 점점 짙어지면서 더욱 진해지고 있었다.
"예쁘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옆에 서서 같이 바라봤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그쪽 씨."
"네."
"모지코는 무슨 추억이 있는 거예요?"
"……."
"이 정도는 이제 말해줄 수 있잖아요."
창밖을 바라봤다. 야경이 반짝이고 있었다.
"별거 아니에요."
"……."
"그쪽도 아시다시피 저는 친구가 없었고. 여기에는 그나마 좋은 추억이 있거든요. 오랜만에 그때 그 느낌을 받고 싶었어요."
"역시 전……."
"다시 말하지만 절대 전 여자친구는 아니었고요."
말을 끊었다.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어땠어요?"
"네?"
"전보다 좋은 추억 만들었어요? 이제 모지코에서 후쿠오카로 넘어가야 하잖아요. 후회 없이 잘 지냈냐고요. 모지코랑 시모노세키에서."
창밖을 바라봤다.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보다 더 선명하게.
"……뭐, 시모노세키에서 아는 지인들을 만나서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
"그럭저럭 만족해요."
"……."
"아휴 알았어요, 좋았어요 정말로요. 고맙습니다. 저랑 이 멀리까지 와줘서. 친구가 되어줘서."
침묵이 흘렀다.
그녀가 조용히 내 옷깃을 잡았다.
"저기."
"네?"
"흠…… 그쪽 씨. 이름도 모르지만……."
그때였다.
"으아아앙!"
지나가던 관광객 가족의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달래는 소리, 아빠가 뭐라고 하는 소리가 뒤섞였다.
"네? 뭐라고요?"
"아뇨. 아무것도."
그녀가 손을 뗐다. 웃으며 말했다.
"슬슬 가죠. 후쿠오카로 넘어가야죠."
"그러죠."
전망대를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그녀는 뭘 말하려고 한 걸까. 너무도 궁금하지만 쉽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뭐 하나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내가 그녀에게 궁금하다는 건 너무나도 양심이 없는 행동이니까.
밤바람이 불었고 제법 쌀쌀해졌다.
숙소에 들러 맡겨둔 짐을 찾고는 우리는 후쿠오카행 열차를 타러 역으로 향했다.
그녀는 모지코역 앞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바람에 날리는 그녀의 뒷모습이 내 심장을 다시 한번 저릿하게 만들었다.
카메라를 들어 야경과 함께 그녀의 모습을 찍었다.
(찰칵)
"응? 그쪽 저 또 도촬한 거죠?"
"다시 말하지만 그쪽이 뭐가 예쁘다고 찍어요. 그리고 도촬이라니요."
"그쪽 아니고 혜은이라고요! 언제쯤 이름으로 불러줄지 지켜볼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하늘에 크게 소리쳤다.
"그쪽 씨! 같이 또 와요! 그때는 우리 서로 이름 부르는 거예요!"
"네. 또 와요."
열차에 올라탔다. 왔던 길을 거꾸로 돌아가는 거였다. 모지코에서 고쿠라, 고쿠라에서 하카타.
창밖으로 어둠이 흘러갔다. 가끔씩 마을 불빛이 스쳐 지나갔다.
"후쿠오카에서는 뭐 해요?"
"거긴 그냥 대도시예요. 일단 숙소에 짐부터 두고 텐진으로 넘어가죠."
"오! 텐진이 후쿠오카에요!? SNS에서 볼 때마다 진짜 가보고 싶었는데!"
그녀가 눈을 반짝였다. 피곤할 법도 한데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다.
"뭐가 그렇게 좋아요. 그보다 모지코는 대충 알아봤다는 것 같은데 규슈에 텐진이 있다는 걸 몰랐다는 게 신기하네요."
"모를 수도 있죠. 엄청 뭐라하네. 아무튼 전 라멘도 먹고 싶고, 포장마차도 가보고 싶고!"
"포장마차?"
"유학생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몰라요? 포장마차 거리가 있잖아요. 나카스 쪽에 있다고 들었어요."
"아, 그런 게 있었죠. 나카스는 알고 텐진은 모르는 게 그게 더 신기해요 저는."
"허."
그녀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후쿠오카에서 뭘 먹을지, 어디를 갈지, 뭘 살지. 별거 아닌 얘기들.
어느 순간 대화가 끊기고는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잠들어 있었다.
고개가 천천히 기울더니, 내 어깨에 기대왔다.
"……."
또 심장이 뛰었고 움직이면 깰 것 같아 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은은하게 좋은 샴푸 냄새가 났다.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 창밖을 바라봤다. 어둠 속으로 풍경이 흘러갔다. 어깨에 기대고 있는 이 여자 외에는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싶어도 도무지 쓸 수가 없었다.
'모지코,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열차가 달렸다. 하카타를 향해.
30분쯤 후 하카타역에 도착해 열차가 멈추자 그녀가 눈을 떴다. 잠깐 멍하니 있다가 상황을 파악한 듯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어!? 저 잤어요!?"
writer: 추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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