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지난 화 마지막:
"오! 저거 운세 뽑는 거죠? 해봐요 해봐요!"
“아.. 오미쿠지..굳이요?"
"오미쿠지라고 하나요? 아무튼 여기까지 왔는데! 해봐야죠!"
그녀는 벌써 100엔을 넣고 함에서 나무 막대를 꺼내고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따라했다.
그녀가 번호를 확인하고 해당하는 종이를 꺼냈다. 펼치자마자 일본어로 써져있는 오미쿠지를 보고는 당황했다.
"어라 이거 한자 뭐라고 읽어야 하는 거죠..? 大(대)까지는 읽을 수 있는데.."
"……축하해요. 제일 좋은 거."
"그쪽 씨는요? 뭐 나왔어요?"
나는 종이를 펼쳤다.
大凶.
대흉.
"……."
"어? 뭐예요? 보여줘요!"
그녀가 종이를 들여다보더니 눈이 커졌다.
"이건 그럼 제일 안 좋은 거겠네요..?"
"그러게요. 운도 지지리도 없네요."
"에이, 다시 뽑아요! 이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됐어요. 뭐, 운세 같은 거 안 믿어요."
나는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봤다.
"진짜 괜찮아요? 뭔가 찝찝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괜찮아요. 진짜로. 이런 거 잘 믿나 봐요?"
그녀가 잠시 나를 보더니 한숨을 쉬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나. 그럼 제 대길 운 좀 나눠줄게요. 자, 받아요."
그녀가 갑작스럽게 손을 내 손에 살짝 갖다 댔다. 깜짝 놀랐다.
"뭐예요, 이게."
"운 나눠주는 거예요. 받았죠? 이제 그쪽 씨도 길이에요. 제가 대길인데 나눠줬으니까 둘 다 길인 거예요."
"……그런 게 어딨어요. 억지네요."
"있어요. 내가 만들었어요."
그녀가 웃었다. 해맑게.
나도 모르게 작게 웃음이 났다.
"……하여간."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녀의 손이 아직 내 손 위에 있었다. 따뜻했다.
그녀도 같은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눈이 마주쳤다.
"……."
그녀가 황급히 손을 뗐다.
"아, 그, 그냥 운 나눠주려고……."
"……네."
"……."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녀가 헛기침을 했다.
"흠흠. 자, 이제 밥 먹으러 가요. 배고파요."
"……그러죠."
바람이 불었다. 붉은 기둥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다가 반짝이고 있었다.
주머니 속 종이가 느껴졌다.
대흉. 신사에 묶어 두고 올 걸 그랬나.
대흉이 나왔지만 이상하게.
조금 전까지의 무거움이 옅어지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신궁을 나와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평범한 우동집이었다.
우동을 먹으면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눴다. 일본 여행은 몇 번째인지,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회사 생활은 어떤지. 별거 아닌 얘기들.
"그쪽 씨는 사진 언제부터 찍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요. 동아리."
"와, 오래됐네. 처음부터 잘 찍었어요?"
"아뇨. 처음엔 당연히 못 찍었죠. 지금도 잘 찍는다고는 생각 안 해요."
"그럼 어떻게 늘었어요?"
"그냥 많이 찍었어요. 친구가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물이나 배경 같은 거에 집중하다 보니까요."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녀가 약간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지만 나는 괜찮다는 듯이 둘러댔다.
창밖을 보다가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어? 저거 관람차예요?"
멀리 관람차가 보였다.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타요 타요! 저거 타요!"
"굳이요? 안 피곤해요?"
"여기까지 왔는데! 관람차는 타야죠!"
"……."
"가요!"
"……그러죠 뭐."
귀찮은 척했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관람차에 올라탔다. 천천히 올라가면서 시모노세키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하늘 끝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우와…… 노을 진짜 예쁘다."
그녀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석양빛이 그녀의 윤곽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앞으로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일단 모지코로 돌아가 호텔에서 짐도 챙겨야 하고, 후쿠오카로 넘어가고 모레 한국 가는 거죠."
"아, 그렇구나. 돌아가야 하는 거였죠."
"네."
관람차가 꼭대기에 다다랐다. 간몬해협이 발아래 펼쳐졌다. 수평선 위로 주황빛이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동네는 이제 뜨고 싶네요."
"네?"
"아는 사람을 안 마주치길 바랐는데. 둘이나 볼 줄이야."
"아."
그녀가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뭔가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소원은 우리 언제 말할까요?"
"네?"
"지금 딱 분위기 있고 좋은 것 같기는 한데 영화에서 보면 그러잖아요."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노을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저는 별 소원은 안 빌었어요. 그래도 궁금하다면……."
"아뇨."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좀 더 아껴뒀다가 나중에 말해요. 우리 지금보다 더 좋은 친구가 되면 말해주기로 했잖아요."
"그랬죠."
"그러니까 아직이에요."
그녀가 씁쓸한 미소를 띠었다. 관람차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모지코로 돌아가는 배 위. 해가 거의 다 졌다. 하늘이 짙은 남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초저녁인데도 별이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했다.
"별이다. 하늘 봐봐요. 너무 예뻐요."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긴 위성이 아니라 별이 뜬 게 맞네요."
"여기서는 별이 잘 보여요. 서울처럼 큰 도시는 아니니까요."
"네. 서울은 빛이 너무 많아서 안 보이죠. 배 위에서 초저녁에 별을 보다니 너무 낭만적이네요."
배에서 내려 걷는데, 그녀가 갑자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꺼냈다.
"저…… 사실 제가 찾아본 곳이 있는데……."
"네?"
"그…… 그러니까……."
그녀가 쭈뻣쭈뻣거리며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에 뭔가를 띄우더니 내게 보여줬다.
모지코 레트로 전망대 사진이었다. 야경이 예쁘게 찍힌 사진.
"여기…… 가보고 싶은데……."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어딘가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가고 싶으면 가는 거죠. 뭘 그렇게 어렵게 말해요."
writer: 추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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