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코에서 가을

ep.16

by 추설

지난 화 마지막: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은은하게 좋은 샴푸 냄새가 났다.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 창밖을 바라봤다. 어둠 속으로 풍경이 흘러갔다. 어깨에 기대고 있는 이 여자 외에는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싶어도 도무지 쓸 수가 없었다.

'모지코,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열차가 달렸다. 하카타를 향해.

30분쯤 후 하카타역에 도착해 열차가 멈추자 그녀가 눈을 떴다. 잠깐 멍하니 있다가 상황을 파악한 듯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어!? 저 잤어요!?"


ep.16

"네."

"헉…… 죄송해요. 기대고 잤죠?"

"괜찮아요. 피곤할 만도 하죠."

그녀가 잠깐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웃었다.

"이쯤 되면 저한테 반했을까요? 새근새근 자는 귀여운 저의 모습에 후후."

"네?"

어이가 없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데. 웃고 있는 그 얼굴이 너무 예뻤고 이런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놀랐다.

"뭐예요, 왜 그렇게 봐요?"

"……아무것도요."

"이 사람 진짜 나한테 반했나 보네. 큰일이네. 전혀 내 취향이 아닌데."

"말을 못나게 하는 건 저한테 옮았나 봐요?"

역을 나섰다. 하카타의 밤이 펼쳐졌다.

모지코와는 다르게 거대한 빌딩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네온사인이 밤을 밝히고 있었다. 사람들이 물결처럼 흘러갔다.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갔다.

"우와…… 여긴 진짜 대도시네요. 내가 알던 일본이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서울이랑 비슷하죠."

"비슷한데 또 달라요. 뭔가…… 일본이에요."

"일본에 와놓고 뭔가 일본이라니."

숙소는 나카스 쪽에 잡아뒀다. 하카타역에서 크게 멀지 않은 거리였다.

짐을 방에 풀어놓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배고파요?"

"아직은 괜찮아요. 열차에서 잤더니 피로도 풀렸고."

"그럼 좀 걸을까요."

"네!"

나카스 강변으로 걸어갔다. 강 위로 네온사인이 반사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간판들이 물 위에 일렁이고 있었다.

"우와……."

그녀가 발걸음을 멈췄다. 야경을 바라봤다.

"너무 예쁘다……."

"……."

"저기 저거 봐요! 간판이 물에 비치는 거! 너무 예쁘지 않아요!?"

그녀가 이것저것 가리키며 좋아했다.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사진 찍어주세요!"

"……여기서요?"

"네! 야경이랑 같이요!"

"……알았어요."

카메라를 들었다. 그녀가 강변 난간에 기대 포즈를 잡았다. 뒤로 네온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찰칵)


"잘 나왔어요?"

"……네."

인정하기는 싫지만 이 여자 이쁜 얼굴이다. 객관적으로도 예쁜 얼굴이지만, 지나가는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이 여자를 한 번씩 힐끔 쳐다보는 것도 사실이니까.

"잠깐, 우리 둘이 한 번도 셀카 안 찍은 거 알죠?"

"……네?"

"같이 찍어요!"

"……굳이요?"

"굳이요! 여행 왔으면 같이 찍어야죠!"

그녀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

심장이 뛰었다. 그녀가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아니 표정이 왜 그래요! 좀 웃어요!"

(찰칵)

그녀가 사진을 확인했다. 잠깐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그쪽 어디서 예쁘다는 소리 안 들었어요?"

"……네?"

"아니, 사진 보니까. 너무 예쁘게 생겼는데?"

얼굴이 뜨거워졌다.

"예쁘지도 않고, 주위에 그런 얘기해 줄 사람이 없다니까요."

"에이, 거짓말."

"……진짜예요."

"흠."

그녀가 다시 사진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럼 내가 처음으로 말해주는 거네요. 그쪽 씨, 잘생겼어요."

"……."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고개를 돌렸다.

그때 옆에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사람 왜 이렇게 많아. 여기가 한국이야 일본이야"

한국인 관광객 무리가 지나갔다. 꽤 많았다.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렸다.

그녀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왜요?"

"아뇨…… 그냥……."

그녀가 목소리를 낮췄다.

"한국 사람 많으니까 갑자기 좀…… 부끄러워져서……."

"……."

아까까지 그렇게 신나게 떠들더니. 한국 사람 눈치를 보는 건가.

그 모습이 왠지 귀여웠다.

"……뭘요. 아무도 안 봐요."

"그래도……."

"텐진 쪽으로 가볼까요?"

"텐진이요? 좋아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텐진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텐진에 도착하니 사람이 더 많았다. 나카스보다 훨씬. 평일인데도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거리가 북적거렸다.

사람 많은 건 싫었다. 원래 그랬다. 시끄럽고 복잡하고. 하지만 그녀가 신나 보여서 내색하지 않았다.

"우와, 여기 진짜 사람 많다!"

"금요일이라 그런가 봐요."

"어? 저거 뭐예요?"

그녀가 가리킨 곳에 인형 뽑기 기계가 줄지어 있었다.

"인형 뽑기요."

"해봐도 돼요?"

"그런 거 안 물어봐도 괜찮아요."

"그쪽 씨가 먼저 해봐요!"

"……왜요?"

"그냥요! 해봐요! 저 인형 뽑아주세요."

어쩔 수 없이 기계 앞에 섰다. 동전을 넣고 조이스틱을 잡았다.

크레인이 내려갔다. 인형을 집었다. 올라왔다.

스르륵.

인형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

"에이, 못 뽑았네요?"

"……원래 이런 거 잘 못해요."

"한 번 더!"

또 동전을 넣었다. 집중했다. 타이밍을 봤다.

스르륵.

또 떨어졌다.

"……."

그녀가 킥킥 웃었다.

"비켜봐요, 약골 씨."

"……약골이요?"

"네. 약골. 비켜요."

그녀가 나를 밀어내고 기계 앞에 섰다. 동전을 넣고 조이스틱을 잡았다.

크레인이 내려갔다. 인형을 집었다. 올라왔다.

털썩.

인형이 구멍으로 떨어졌다.

"어!? 뽑혔어요!?"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한국 거보다 훨씬 잘 뽑히는 것 같은데요?"

"……."

"그럼 하나 더!"

그녀가 다시 동전을 넣었다. 또 집중했다.

털썩.

또 뽑혔다.

"대박! 두 개다!"

그녀가 인형 두 개를 꺼내 들었다. 작은 고양이 인형이었다. 같은 종류인데 색만 달랐다.

"저는 두 번 다 성공했는데요?"

"……."

"역시 약골."

"……그냥 상술이에요."

그녀가 킥킥 웃더니 인형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자, 이거요."

"……네?"

"하나는 그쪽 씨 거예요. 커플 인형!"

"제가 그쪽이랑 커플이요?"


writer: 추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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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jpg 작품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이야기『세상에 없던 색』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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