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영화 대사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조금씩이라도 변해 간다. 바위도 깎이고, 불국사 금돼지도 사람 손 닿는 곳만 반들반들 윤이 나게 변하는데, 생명 있는 것은 말해 무엇하랴, 하물며 자라고 나이 들고 늙어가는 사람임 에랴! 모습도 변하고 식성도 변하고 성격도 변하고 모든 것이 변한다. 나도 돌아보면 계속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는 꽃에 관심도 두지 않던 내가 요즘 유독 꽃에 눈길이 가는 것도 변해가는 모습 중의 하나다.
지인의 따님 결혼식에 다녀왔다. 요즘 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식은 조금만 늦으면 끝나 버릴 정도로 번개같이 진행되는데, 이번 결혼식은 천천히 여유 있게 진행되는 결혼식이었다. 같이 온 분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진행되는 결혼식을 보는데 유독 식장을 가득 채운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꽃 같이 화사하고 아름다운 신부만큼이나 예쁜 생화들이 결혼식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보기에는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데 식이 끝나면 저 꽃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버려지나? ' 아까운 생각에 자꾸 꽃에 눈이 갔다. 그런데 식이 끝나고 식사시간이 되자 하객들이 여기저기서 포장된 꽃다발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물어보았더니 예식장에 장식된 꽃들 가운데 원하는 꽃을 가져오면 싸서 가져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옛날 같으면 꽃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내가 테이블을 돌며 아직 남아있는 꽃들 가운데 예쁜 꽃들을 한 다발이나 챙겼다. 옅은 분홍과 노랑, 하얀색의 장미와 빨간 동백꽃 , 그리고 안개꽃까지 한 다발 챙겨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꽃의 양이 너무 많아 꽂을 데가 마땅찮았다. 고민하다 페트병 두 개를 잘라 물을 가득 붓고 꽃을 꽂았다. 거실에 꽃이 놓이자 마치 등불이 밝혀진 듯 거실이 환해지고 은은한 향기가 집안에 맴돌았다. 기분까지 꽃처럼 환해졌다.
몇 년 전에도 생화가 너무 좋아서 사다가 꽂아 놓곤 했었지만 생화를 늘 집에 두기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화분을 몇 개 사다 거실에 놓아두었다. 그렇다고 화분의 꽃을 살뜰하게 돌보는 것도 아니어서 곧잘 죽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몇 개의 꽃화분은 포기하지 않고 집에 둔다. 이 모든 변화가 몇 년 사이에 생긴 것이다.
원래 나는 꽃에 전혀 시선조차 주지 않던 사람이었다. 엄마는 옛날부터 꽃을 좋아하고 뭐든지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었다. 내가 중학생때 정원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을 때 엄마는 정원에 사과나무도 한그루, 배나무도 한그루, 여러 종류의 꽃들도 심었었다. 나는 엄마의 정원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 날 중학교 수학여행을 갔다 와서 우리 집 가까이 왔을 때, 너무나 좋은, 그 때까지는 맡아보지 못한 향기가 코끝을 강렬하게 스쳐서 깜짝 놀랐다. 향기에 취한다는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어디서 나는 향이지?' 꽃의 정체를 확인해 보니 그건 우리 집 대문 바로 앞에 엄마가 심은 천리향나무에서 나는 향기였다. 내가 수학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봉우리이던 꽃이 며칠 새 만발해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리향의 그 향은 정말 강렬하게 뇌에 각인이 돼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천리향의 향만 맡으면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서던 열다섯살 어느날의 풍경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그러나 그 뒤 우리 가족도 많은 일을 겪으며 그 집을 떠났다. 나는 가끔 천리향의 강렬한 향기를 떠올리긴 했어도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꽃을 봐도 그저 무심할 뿐, 눈길 한번 새로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나가다 꽃이 있으면 잠시 발길을 멈추고 다시 한번 쳐다보면서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화분을 하나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천리향 화분도 사서 거실에 놓아두고 봄이면 천리향의 향기를 즐긴다. 그렇다고 아직까지 꽃이 들어가는 건 무조건 좋아해서 꽃문양 옷까지 사는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대체 왜 나이가 드신 어른들은 꽃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일까? 왜 옷 문양까지 알록달록 꽃무늬 선명한 원색 옷들을 좋아하는 걸까? 예전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일이 요즘에는 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건 '생명'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 때문이 아닐까? 살아있는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꽃이 아닌가, 그것도 작은 씨앗에서부터 조금씩 자라는 생명의 변화과정을 보여주다가 어느 날 절정의 아름다움을 꽃으로 피워내는 걸 보면 생명의 신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는 절정이 지나면 꽃은 미련 없이 진다. 그게 끝이라면 그렇게 부럽지만은 않을 텐데, 마치 죽은 것 같은 화분이 다음 해에는 다시 생명을 잉태하고 꽃을 피워낸다. 그 사실이, 절정을 보인 뒤에 진다 해도, 다시 피워 올릴 수 있는 꽃의 '생명력'이 나이 들어가면서는 더욱 부러워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이 들어가면 유독 꽃에 눈길이 가고, 꽃을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닐까?
결혼식에서 가져온 꽃다발의 꽃들이 오랫동안 싱싱함을 유지하길 바라면서 얼음까지 넣어주는 수고를 감내하며 하루에 한 번씩 물을 갈아 주었다.
새삼 화병에 꽂혀있는 꽃들을 보다가 문득 이제는 나도 안개꽃처럼 나이 들어가야 하는 나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꽃을 꽂는 솜씨가 없어도 화려한 꽃송이 뒤에 푹 꽂으면 꽃 전체를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꽃, 어느 꽃과도 다 잘 어울리면서 모든 꽃을 감싸안는 꽃, 튀는 주인공을 욕심내지 않고 주인공을 받쳐주는 배경으로 만족하는 안개꽃,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아름다운 청춘들의 배경이 되는, 그런 안개꽃처럼 나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예식장에서 가져 온 꽃이 질때쯤 화분의 천리향이 꽃을 피웠음 좋겠다. 우리 안개꽃처럼 나이 들어가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