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주 불국사를 가서 이곳저곳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극락전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멀리서 봐도 천년고찰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황금 물체가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다. 다가가 보니 그것은 예상대로 황금 돼지상이었다. 그것도 어금니가 솟아 나와 있는 멧돼지상이었다. '불국사에 황금돼지상이 있었나?'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사실 불국사에 오면 대웅전과 석가탑, 다보탑만 보면 다 봤다고 생각하고 가곤 했기 때문에 극락전 앞에 있는 이 황금돼지상은 내 눈에 띄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가까이서 살펴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유독 돼지의 등만 진짜 황금빛이 번쩍 일 정도로 반질 반질 윤이 났기 때문이다.
불국사 극락전 앞의 황금 돼지상, 등 부분이 닳아서 맨들맨들하다
자세히 보면 원래 황금돼지는 멧돼지의 거센 털을 표현 하느라 표면을 거칠거칠하게 만들었는데 유독 등만 반질반질한 이유는 다들 짐작하는 대로 사람들의 손길 덕분이다. 이 황금 돼지를 만지면 복을 받는다는 소문이 나면서 오는 사람들마다 한 번씩 다 손을 대고 간 덕분에 등이 달아서 이렇게 윤이 나게 된 것이다. 황금돼지상이 만들어진 이유를 보니 지난 2007년 황금돼지해를 앞두고 극락전에서 돼지 조각이 발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란다. 이왕 다가갔으니 나도 황금돼지 상의 반들반들해진 등을 한번 쓰윽 만지면서 든 생각, 나처럼 한번 이렇게 쓱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손길이, 어쩌면 1초도 되지 않을 이 짧은 시간이, 단단한 쇠로 만들어진 물체에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그러나 사실 나는 항상 그 '바람의 흔적'을 믿고 살았다. 그 믿음이 냉혹한 '프리랜서' 세계에서 나를 살아남게 한 비결일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글을 쓰고 있는 내게 <브런치> 에도 글을 올려 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긴 했지만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갔다. 그런데 주변에서 <브런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브런치>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진다는 반증일 터, '나도 글을 한번 올려 볼까'하고 한번 들어가 보니 회원가입부터 승인까지 절차가 좀 까다로워 그만두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드디어 본격적으로 브런치를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좋은 글들이 많았고 진짜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차분히 앉아 하나하나 항목들을 기입하며 브런치에 가입을 했다. 5일쯤 후 브런치 작가 심사를 통과했으니 글쓰기를 시작하라는 메일이 왔다.
처음 어떤 글을 올릴까, 고민하다가 새해 들어 다녀온 경주 불국사 이야기를 써서 올렸다. 미미한 조회 수가 표시됐다. 심지어 구독자수는 0이었다. 그래도 꾸준히 글을 써 오고 있었고 방송작가로 보낸 시간이 얼만데, 이렇게 미미한 반응이 좀 민망했다.
두 번째 글을 올렸다. 잠시 후 누군가 '라이킷'(좋아요)를 눌러주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특별한 법, 내 글만 보고 '좋아요'를 눌러준 첫 번째 구독자에게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그러나 반응은 여전히 미미했다. 얼마 전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배가 자신의 글을 보내왔길래 나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보냈더니 반가워하며 구독자를 눌러주었다. 서로 '구독자'가 됐다. 구독자는 겨우 '2가 됐다.
브런치에 다른 글들을 볼 때 구독자수부터 확인했다. 나처럼 미미한 구독자를 가진 사람부터, 몇십 명, 몇 백 명, 그중에는 천 명이 넘는 구독자가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몇 백 명은 젖혀 두고 이삼십 명의 구독자가 있는 사람도 부러웠다. 내 글을 계속 보겠다고 '구독'을 결심하는 이들이 몇십 명만 돼도 얼마나 큰 힘이 될까, 부러운 마음만 커졌다.
세 번째 글을 올리자 반응이 좀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회수가 몇 백 단위로 올라가더니 어느 순간 '천'을 넘어서고 구독자 수도 올라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10'을 넘지는 못했다.
그때 든 생각,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뭐? 기다리는 용기'
지금 구독자가 몇십, 몇 백 단위인 사람들도 다 지금 나와 같은 시간, 구독자 한두 명인 시간을 견뎌오지 않았을까? 이럴 때 필요한 건 중단하지 않고 기다리는 용기다. 그 생각은 다시 나의 삶으로 이어졌다.
아무도 나의 일을 평생 보장해 주지 않는 프리랜서 ' 방송작가',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걸어오면서 내가 믿었던 것도 바람의 흔적이었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은 시간에도 조금씩 무엇인가가 일어난다는 것을 믿었다. '양질 전환의 법칙'이라고 할까, 고등학교 때 물리, 과학 같은 과목을 잘 하진 못했지만, '물이 일정 정도 계속 열을 받으면 기체로 변한다'는 '양질 전환의 법칙'은 프리랜서 작가 생활을 하면서 서서히 나의 믿음으로 굳어져 갔다.
예를 들어 새로운 다큐멘터리 한 편의 구성을 할 때, 자료의 바다에서 헤매며 아무 이야기도 잡히지 않는, 이게 대체 이야기가 될지 안될지를 판단할 수 없는 시간을 거쳐야 한다.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건 자료 조사를 하는 것과 공부를 하는 것과 생각뿐이다. 그 시간들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면, 혹은 끝까지 고민하지 않으면 프로그램은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 같은 그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믿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서 하는 고민이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딴짓을 하기도 했다. 밥을 먹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러 가기도 하고, 그렇게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문득문득 프로그램에 대해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자료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이 된다. 물이 기체가 되는 시간, 아무것도 아닌 시간들이 곰삭혀져 무엇인가가 되는 시간이 온다.
살다 보니 그 생각은 비단 방송이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에 적용이 됐다. 진짜 어려운 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내가 하는 공부가 머릿속에 들어가 실력이 돼 가는지 믿을 수 없어 불안한 순간에도 필요한 것은 중단하지 않는 꾸준함이다.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흔적을 남긴다.
< 브런치>에서 내게 필요한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시간을 견디는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글을 올리기로 맘먹었다. 4번째 글을 올리자 좀 과장을 해서 휴대폰이 난리가 났다. 하루 종일 휴대폰이 울려대기 시작한 것이다. '조회수가 100을 돌파했습니다'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 심지어 '조회 수가 10,000을 돌파했습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그에 따라 구독자 수도 늘어났다. 사실 구독자수가 1,2 일 때는 주변에 알리기도 민망했지만 이쯤 되니 알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도 알리자 구독자수가 계속 올라가기 시작했다. 4번째 글을 올리고 며칠이 지나자 구독자수는 50을 넘어 있었다.
이 정도의 구독자가 있다는 것 만으로 큰 힘이 되었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 2월 6일) 카톡이 하나 왔다. 브런치팀에서 내 글 < 상도 못 받았는데 14억 원에 팔린 그림>을 2월 7일 <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뿌리겠다는 것이다. 아직 브런치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카카오톡 채널>이 뭔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내가 쓴 글이 선정된 것이 기쁘긴 했다.
2월 7일 아침이 되자, 내 글이 브런치 이름의 카카오톡 메시지로 왔다. '아, 이게 카카오톡 채널'이구나, 그런데 갑자기 휴대폰의 진동이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라이킷'과 '구독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조회수를 알리는 카톡 메시지도 바쁘게 울렸다. 결국 하루 동안 < 모지스 할머니>의 조회 수가 100,000 뷰를 돌파했다. 구독자수는 며칠 사이 300을 넘어섰다.
모지스 할머니의 삶에 감동받았다는 이들이 남긴 댓글이 다시 나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 사실 인간이 만든 것 중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내 마음속에서 나온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아 울림을 줄 수 있는 글의 힘을 생각하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알지 못하는 그들의 응원이 내가 더 열심히 글을 쓰게 하는 불쏘시개가 될 듯하다.
결국 이번에도 '아무것도 아닌 시간은 없다'는 나의 믿음은 증명이 됐다. 그래서 나는 딱히 정해진 해야 할 일이 있지도 않은 '프리랜서'이면서도,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찾아서 끊임없이 한다.
불국사 황금돼지의 반들반들한 등을 보라,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것도 아닌 시간은 없다는 나의 믿음은 믿을만한 것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