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기란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안고 엄마 혼자 지하철을 탄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만에 하나 아이가 정말 순하고 얌전하거나 때마침 깊은 잠에 들어 평온하게 지하철을 이용하게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이는 혼자만의 희망사항일 뿐 어찌 생각한 대로 모든 일이 흘러가겠는가.
계획에 없던 외출이 생기지 않았다면 그녀의 하루는 여느 때와 같이 흘러갔을 터였다. 아이는 옹알이를 하며, 얌전히 이불 위에 누워 놀고 있었고, 집안일을 마쳐두고 잠시간의 휴식을 취하던 그녀는 곧 찾아올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슬슬 움직여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 소리. 오랜 기간 가깝게 지내던 지인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가벼운 안부전화이길 바랐지만 거절하기 어려운 다급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서게 된 그녀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었다. 혼자 얼른 다녀올까 하는 생각에 잠시 아이를 돌아보았지만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는 아이의 모습에 이내 고개를 내젓고는 능숙하게 아이의 옷을 갈아입혔다. 갑작스러운 외출에 신경 써서 이쁘게 입히진 못해도 따뜻하게만은 입혀야 했기에 벌써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한 그녀는 정작 본인은 외투 하나를 대충 걸쳐 입고는 급히 집을 나섰다. 퇴근 시간이 다되었기에 지하철에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한 그녀는 아이를 등에 업고 부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지하철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올라 있었고, 그녀는 행여 아이가 어디 부딪히거나 긁히지 않을까 조심하며 어찌어찌 지하철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많은 승객으로 인해 아이를 업고 서 있는 게 불편했지만 다행히도 아이는 울지 않고 눈을 빛내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편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따금 무엇이 불편했는지 칭얼거릴 때도 있었지만 엉덩이를 토닥이며 몸을 가볍게 흔들며 달래주자 이내 방긋 웃으며 칭얼거림을 멈추곤 했다. 그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무렵 자리에 앉아있던 한 학생이 일어서며 그녀에게 자리를 권했다.
"아뇨, 아뇨 괜찮아요 앉아 계세요."
거절에도 여러 차례 자리를 권하는 학생에게 아이를 업고 울지 않도록 달래려면 서 있는 것이 더 편하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학생은 권하는 걸 멈추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진 못하였지만 자신을 신경 써준 그 마음씨에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자신의 아이 역시 저 핵생처럼 다정한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학생과의 잠깐의 이야기가 그녀에게 힘이 되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주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는지 치하철에 오를 때부터 유모차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근처 자리의 할머니들이 입을 열었다.
"아이가 참 이쁘게 생겼네 태어난 지 얼마나 지났어요?"
"어유 이뻐라 요즘 아이 보는 게 힘든데 여기서 이런 이쁜 아이를 보네!"
"아이 엄마가 고생이 많아 애보느라 힘든데 잘 챙겨 먹고 다녀요."
기다렸다는 듯 밀려오는 말들의 흐름 속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따스한 말 한마디가 마치 따스한 차 한잔을 마셨을 때처럼 긴장과 피로감으로 굳어있던 그녀의 마음에 은은히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