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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Aug 24. 2020

매미가 열 번 울고 내게 남은 것

방황하는 삶에 대해

장마가 시작할 때쯤, 수해와 관련된 글을 써서 올렸습니다. 역대 최장 기간의 장마가 될 줄은 몰랐고, 이렇게 많은 수해가 발생할 줄도 몰랐습니다.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나이를 실감하지 못했던 건 언제부터일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빨리 간다. '나이가 삶의 속도다'라는 어른들의 말씀도 그렇고, 나이를 먹을수록 도파민의 감소에 따라 시간을 빠르게 느낀다는 뇌과학의 이론*도 그렇고 무엇보다 매년 직접 몸으로 느끼는 바가 맞다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은 사실이다. '하루가 빨리 가는 것 같아', '일주일이 빨리 가는 것 같아' 하더니 요새는 한 달이 빠르게 가는 것 같고, 28개월을 근무하고 스물여덟에 전역했으니 어느새 군에서 복무했던 기간보다 사회에서 생활한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언젠가부터는 나이가 별로 실감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나이와 내가 착 달라붙은 느낌, 추세경이 아니라


14살의 추세경, 17살의 추세경


이라 해도 될 만큼 나이가 나를 대변하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런 느낌이 사라졌다. '딱 이때부터에요'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시기가 지나고부터는 스물다섯인지 스물여섯인지 보다는 '이십 대 중반이다'라는 느낌으로 나이를 가늠하기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스물여덟이니 스물아홉이니 보다는 이십 대 후반이구나 삼십 대가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며 나이를 느껴왔다.


서른이 된 지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은 서른 하나다. 1년 반이 지나서야 이제 조금은 스스로를 삼십 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서른한 살의 청년, 서른한 살의 사회인, 어딜 가도 자꾸 결혼 얘기를 묻는 걸 보면 정말 삼십 대가 맞나 보다. 삶의 속도도 31km가 되었을까? 모르겠다.




장마가 끝나면 매미가 운다.


매미가 우는 걸 보니 비로소 장마가 끝났지 싶다. 54일이나 지속된 장마였고 뉴스를 들어보니 역대 가장 길었던 장마라고 다. 임시 공휴일을 맞아 동네 카페에서 글을 쓰는데, 잘 안 써지기도 하고 에어컨 바람에 머리도 아파 잠시 카페를 나와 옆에 있는 아파트 단지를 산책했다. 단지 초입에는 공터가 있었고 아파트에 둘러 쌓여 그늘만이 가득했다. 거기엔 몇 개의 운동기구가 있었다. 벤치도 몇 개 있어서 그중에 하나를 골라 누웠다.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니 이게 얼마 만에 본 맑은 하늘인지 하얀 구름이 반가웠다.


하늘에는 잠자리가 날았고,

'잠자리가 저렇게 높이 날았나?' 하고 있는데


'매~애애애애애애애~앰'

'매~애애애애애애애~앰'


하며 매미가 울었다. 두 달 내내 구멍 난 하늘처럼 비가 오더니, 어느새 또 장마가 가고 여름이 왔다. 땅을 덥히는 햇빛 소리와 '더 초록이 돼라~' 하면 '이 이상은 어려워요' 할 것 같은 푸른 이파리, 그 사이를 뚫고 울리는 매미 소리, 완전한 여름이었다.

벤치에 누워 매미 소리를 듣고 있으니 10년 전 삼수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했던 때였는데 그때는 1교시, 2교시하면서 50분 공부하고 10분은 쉬는 일상을 반복했다. 쉴 때는 도서관에 붙어 있는 공원을 한 바퀴 돌았지만 너무 더운 여름이면 그늘이 가린 벤치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벤치에 누워 바라보는 파란 하늘 누워 있는 나, 10년 전의 공원과 지금의 아파트 공터, 생각해보니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스물한 살의 나도, 서른한 살의 나도, 벤치에 누워 매미 우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순간, 21살의 나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변한 건 뭐고 변하지 않은 건 뭘까, 열 번의 매미가 울고 내게 남은 건 뭘까, 궁금해졌다.




1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한 개인의 사회적 역할이 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10년이면 야간 자습에 시달리던 고등학생이 야근에 허덕이는 사회인이 되기도 하, 첫 월급에 기뻐하던 신입사원이 프로젝트를 맡는 과장님이 되기도 다. 미팅에 설레던 학생이 평생을 약속한 남편이나 부인이 되 하, 아들 딸의 사춘기를 견디던 부모들이 어느새 자란 자녀들을 보고 '결혼은 언제 하나, 애는 언제 낳나' 하며 손주를 기다리는 나이가 되기도 한다.


삼수하던 시절부터 10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4년 동안 대학을 다녔고 28개월을 군대에서 보냈다. 전역하고 3년째 회사를 다니고 있으며 이제는 본가에서 독립해 낯선 동네에 혼자 살고 있다. 황홀하다 싶을 만큼 행복했던 시간 '이런 게 절망이구나' 하며 속이 텅 비었던 시간도 있었다. 여러 사람을 만났고 여러 가지 일 있었다.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게 없는 것 같았다. 많이 변한 것 같았지만 전혀 변한 게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는


'덧없'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했던 시간과 이별을 견딘 시간, 성취했던 경험과 실패했던 날들, 그런 시간들은 어디에 가고 어느새 또 벤치에 누워 울리는 매미소리를 듣고 있는지, 무상하다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떻게 아야 할까

앞으로의 10년은 어떻게 될까


 고민이 스쳤다.

KBS 드라마 <쌈, 마이웨이>

10년이 지나면 마흔한 살이 되고 마흔이란 흔히 '불혹'이라고 불리는 나이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인데, 잘못된 일들에 미혹되지 않고 흔들리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고민해본 결과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불혹을 말했던 공자의 말씀과는 맞지 않았다.


에 혹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가끔은 흔들리고 때때로 미혹되더라도, 그런 방황에서 느껴지는 많은 감정들을 중하게 여기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원래 인생이란 런 거야', '원래 슬픈 건 그런 거야' 라며 무뎌지기보다는, 사랑을 처음 시하는 사람처럼, 처음 이별을 경험하는 사람처럼, 거기서 오는 감정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삶이기를 바란. 가끔은 사는 게 너무 슬프고 절망적으로 느껴져 그런 마음을 내가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마음에 새길 흔적들 '덧없다는 후회'가 아니라 '살아있다는 '로 남기고 싶다는 말이다.




다행히 글을 쓴 이후로는 그런 감상들을 (완벽하지는 않아도) 나름의 정제된 형태로 마음에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힘들기도 하고 애도 써야 하지만 그렇게 남기는 사는 날에 대한 기록들은 감사하게 마음에 쌓여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


괴테는 <파우스트>라는 책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고 했다. 잘못된 것들에 미혹되지 않  좋지만 점점 더 빨라질 앞으로의 10년도, 보다 더 빨라질 앞으로의 20년도, 노력하는 한 방황하며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더 많은 감성을 쌓는 존재 고 싶다. 10년이 지나 또 어느 벤치에 누 날, 나온 10년이 덧없다고 느껴지면 10년간 느껴왔던 감정들로 이미 풍요운 존재가 되었음 만족하 다.


매미는 울고, 파란 하늘에는 잠자리날았다. 구름은 하얗고, 벤치에 누운 나는 눈을 감았다. 변한 건 뭘까, 변하지 않은 걸 뭘까, 매미가 열 번 울고 내게 남은 것, 매미가 열 번 더 울 그때 내게 남을 것, 그게 궁금해진 하루였다.









* 나이가 들 수록 왜 시간은 빠르게 흐를까? : http://scienceon.hani.co.kr/151419

* 여름 이미지

 : https://blog.kepco.co.kr/1304

* 달 이미지 : https://www.nocutnews.co.kr/news/4938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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