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글이 당신에게도 위로가 되길

by 추세경

말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살아본 적이 있나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을 꼽으라면 유재석이 아닐까 싶다. 배우든 가수든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그중에서도 첫 번째를 꼽으라면 유재석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BTS와 블랙핑크가 세계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역사에는 없던 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안에서 우리라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은 바로 개그맨 유재석, 그분이 아닐까 싶다.


2011년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은 가수 이적과 함께 '말하는 대로'라는 노래를 불렀다.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처음 노래를 발표했는데 당시 가요제 현장을 뜨겁게 달구던 다른 노래들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피아노 반주에 부르는 서정적인 노래였고 방황하는 청춘을 위한 메시지도 담고 있었다.


나 스무 살 적에
하루를 마치고
불안한 잠자리에 누울 때면

내일 뭘 할지
내일 뭘 할지
걱정을 했지


그리고 그걸 부른 사람이 유재석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노래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미 여러 방송을 통해 그가 어떤 노력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이 많이 지났지만 유재석은 여전히 노랫말처럼 '멈추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 그의 길을 가고 있다. 말하는 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쓸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쓰는 대로 살 수 있을까, 라는 것이다. 글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자격'이 나에게 있냐는 말이다. 1년간 써왔던 내 글의 주제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였다(#왜 나를 사랑하는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다른 람을 사랑해야 하고,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고,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나와 가장 가까운 지인들을 사랑해야 한다_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지만 여전히 나 조차도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 별거 아닌 다른 사람의 한 마디에 예민해질 때도 있고, 작은 일로 누군가를 아니꼽게 볼 때도 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편하다는 이유로 화든 짜증이든 감정을 는 그대로 표현하기도 한다. 모르는 사람에겐 한번 더 참았을 말도 그들에게는 쉽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가 그런 글을 써도 되냐, 라는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의 끄트머리에 있는 나는 딱 90년 생이다. 그래서 여느 90년대생과 같은 세대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내 인생은 내가'라는 것이. 때문에 이런저런 행동을 제약하는 자기 개발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죽도록 싫은데 새벽에 일어나면 인생이 바뀔 거라고, 그게 바로 '미라클 모닝'이니 그렇게 살아 보라고 강요하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에게 자꾸 '소확행'을 말하는 책도 별로고, 따뜻한 커피와 포근한 숙면을 아하는 사람에게 자꾸 잠을 줄이라고, 시간을 아끼라고 말하는 책도 멀리한다. 내 인생은 내 식대로 살되 그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가 지면 된다.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목표를 이루든 말든, 인생은 내가 바라는 대로 살고 싶다.


근데 막상 글을 쓰다 보니 나 역시도 그런 글을 쓰고 있었다. '감사일기를 쓰자', '나 스스로를 사랑하자', '미움받을 용기를 갖자'라는 결론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 삶에 간섭하는 게 싫은 만큼 나도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하기 싫은데 자꾸 그런 모양으로 글이 완성되고 있었다. 나 역시 글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데 자꾸 다른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득하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글을 썼다. 이런 글을 써도 될까, 싶었지만 그래도 계속 썼다. 그 이유는 애초에 나 스스로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글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사실은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내가 살아가는 방법을 다짐하는 글이었고 그렇게 더 나은 삶에 대한 의지를 담은 내용이었다. 잘살기 위해 스스로 되뇌었던 여러 다짐과 현실적인 노력, 거기서 오는 감상들을 말하는 글이었다.


따라서 내가 쓰는 글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글이 아니라 살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글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런 꿈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글이었다. 때문에 쓰는 대로 살지 못한다는 고민은 애초에 출발이 잘못된 고민이었다. 발전하고 싶은 모습을 글에 담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고 괴로워하는 건 앞뒤가 뒤바뀐 생각이었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글이라는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 글에서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건 독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글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외치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글의 시작에 독자는 없었다.




그럼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글을 쓸 거냐,라고 물으신다면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앞으로도 나 스스로를 위해 글을 쓰겠지만 이제는 독자를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읽어주시는 분들이 조금 더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고 공감을 통해 그들의 마음에도 위안이 되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읽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혼자만의 글쓰기는 더 이상은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 나는 나의 '결핍'에 대해 쓰려고 한다. 글을 통해 나의 결핍을 표현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나의 모습으로 누군가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한다. 아픔의 모양은 달라도 아픔 없이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나 보이는 이들의 해피엔딩에서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따라서 나의 인간적인 결흠이나 살아가는 불안을 드러내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글에 담는다면 내 마음을 위로하면서도 읽는 이도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결핍이 누군가의 마음 안쪽에 닿아 때로는 카타르시스까지 느낄 수 있는 글, 그런 글이었으면 좋겠다.


그걸 위해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세상의 더 많은 것들을 느껴볼 생각이다. 하여 내 글을 읽는 시간이 독자에게 절대로 아까운 시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 쓰지만 읽는 사람도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나를 위한 글이 당신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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