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세경 Jan 15. 2022

먼지가 찬란하기란 얼마나 쉽고도 어려운 일인가

겨울에는 외출이 꺼려진다. 옷을 두껍게 입어야 하고 목도리 장갑도 필요하다. 날이 추우면 손이 다. 러다 따뜻한 곳에 들어가면 손톱 밑의 살갗이 벗겨다. 잡아 뜯기라도 하면 따끔따끔 아프다. 손톱깎이로 깎을 걸 후회하지만 매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사소한 일들이 사실은 더 귀찮은 법이다.


늦잠을 잔 일요일 아침이었다. 밝게 비치는 햇살에 잠에서 깼다. 전날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고 잠에 들었기 때문이다. 워서 바라보니 햇살 빗살 모양으로 비치고 있었다. 사이사이 파란 하늘 보였다. 떠다니는 먼지들에 빛이 부딪혀 반짝거렸다. 느리게 움직이는 먼지를 보니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눈부신 햇살파란 하늘이 포근한 이불을 감쌌다. 이 덜 깨 나른했지만 마음은 따스히 행복했다. 따뜻한 일요일 오전,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군대에서 관리하던 창고가 있었다. 군장이나 방탄, A 텐트 같은 보급 품을 보관하는 창고였다. 시멘트 벽돌로 지어 좁은 건물이었다. 10평도 지 않은 건물엔 작은 환풍기 말고는 창문도 없었다. 환풍기  죽은 날파리로 가 거뭇했다. 관리가 잘 안 되는 곳이었다. 보관한다는 이유로 버려진 것도 많았다. 재산 대장의 목록과 쌓인 물건들은 숫자가 맞지 않았다. 바닥에 깔린 물건들은 색이 변하고 녹도 슬어 있었다. 그늘진 창고의 어둠 속엔 시간의 무게만이 가득했다.


산 옆에 있어 창고 안은 습했다. 문을 열면 냄새가 났다. 먼지와 습기가 함께 만드는 냄새였다. 하지만 뭔가 익숙했고, 정겹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집의 지하 창고가 생각나는 냄새였다. 주택이었던 할아버지 집은 반층 지하에 창고가 있었다. 창고엔 육개장 사발면이 박스채로 있어 그걸 가지러 내려가곤 했다. 그곳에서 자주 맡았던 냄새였다. 할아버지는 당시에 버섯 농사를 지으셨다. 할아버지의 구형 지프차 트렁크에는 버섯을 담는 플라스틱 바구니와 흙 묻은 고무장화가 포개져 있었다. 그때 맡았던 누런 흙먼지 냄새 같기도 했다. 하지만 군대 창고에서 나는 냄새는 결국 먼지 냄새였다. 그저 오래되고 눅눅한 묵은 냄새였다.


먼지는 작고 더럽다. 찮고 별 볼 일 없다. 하지만 먼지를 보고 행복을 느낄 때도 있다. 먼지가 풍기는 냄새에 정겨움을 느끼기도 한다.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존재만으로도 귀중하다는 건 무엇일까. 찬란한 존재라는 게 있을까. 그러기란 얼마나 쉽고도 어려운 것일까.

작가의 이전글 겨울의 노래를 들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