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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Mar 23. 2022

돼지 농장의 진실

영어 단어를 외울 때였다. 학원 교재로 단어장을 샀다. 첫 페이지에 있는 단어 중 아직도 기억나는 게 있다. 'propaganda'라는 단어다. 한국말로는 '선전'을 뜻한다. 지금도 이게 기억나는 이유는 '선전'이라는 말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국어로도 모르겠는 단어를 영어로 외우다니, 이게 왜 첫 장부터 있지, 어렵네, 라는 생각을 했다. 유광 표지의 빨간색 단어장과 첫 장부터 어려운 단어, 16살 때의 일이다.

 

선전은 <주의나 주장, 사물의 존재, 효능 따위를 많은 사람이 알고 이해하도록 잘 설명하여 널리 알리는 일>이다.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알린다는 말이다. 여기서 ‘사물의 효능’을 전하는 건 영어로 ‘advertise’에 가깝고 ‘주의나 주장’을 알리는 건 ‘propaganda’에 가깝다.

 

최근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후보들에 대한 선전이 난무했다. 선거에서 후보자에 대한 평가는 진영에 따라 나뉜다. 누군가에게는 미래를 이끌어갈 영웅이, 다른 편에게는 파렴치한의 범죄자가 된다. 인간적으로 어떤 결함이 있 살면서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후보자를 포함하여 가족의 신상까지 모두 공개된다.

 

문제는 사실이 아닌 정보도 많다는 것이다. 왜곡된 정보가 사실인양 선전된다. 대형 매스컴을 통해, 전문가의 입을 통해, 유튜브와 같은 SNS를 통해 우리 귀에 들어온다. 그런 정보에 자꾸 노출되다 보면 어느새 그걸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 자극적인 헤드라인 우리 마음에 들어와 그게 진실인양 자리 잡는다.

 

하지만 뉴스를 열심히 봐도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일반 사람들이 든 정보를 일일이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정치가 업이 아닌 이상 자기 상을 해내기 바쁘다. 관심을 가지고 뉴스를 봐도 그게 올바른 정보인지 파악할 여력은 없다. 진실을 추구하는 뉴스도 있겠지만 사실 자극적인 내용이 눈에 더 쉽게 들어온다. 선거 기간에는 그게 더 심하다. 을 왜곡하는 전이 난무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인 <동물농장>을 읽으면 선전의 무서움을 알 수 있다. <동물농장>의 줄거리 이렇다. 농장의 동물들은 주인이었던 인간을 쫓아낸다. 그들은 자유를 찾지만 이내 그 안에서도 역할이 나뉜다. 머리가 좋은 돼지들이 동물들의 리더가 된다. 하지만 그들은 권력을 탐하고 동물들을 인다. 돼지들이 권력을 부리는 방법은 인간과 다를 게 없다. 농장은 결국 예전으로 돌아간다. 곳엔 자유도 없고 평등도 없다. 하지만 동물들은 여전히 자유롭다고 믿는다. 인간이 없다는 것, 그 이유 하나 때문이다.

  

'퀼러'라는 돼지는 여론을 조작다. 착취당하는 동물들에게 지금은 자유로운 세상이라고 거듭해서 말한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한다. 돼지들을 의심하는 세력이 보이면 그들은 사실 인간들의 편이라 말한다. 그렇게 동물들을 속인다. 순진한 동물들은 ‘스퀼러’의 말을 모두 믿는다. ‘스퀼러’의 말은 그게 무엇이든 진실이 된다. 농장의 역사는 그렇게 쓰인다.

 

동물농장은 소련의 전체주의를 풍자한 소설이다. ‘스퀼러’를 보며 과연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떤지 생각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렇다. 지금이 전체주의 시대는 아니지만 ‘스퀼러’로 비유되는 거짓 선전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힘이 있는 세력은 여론을 만든다. 사람들은 만들어진 여론을 믿는다. 그것을 진실이라 여긴다. 21세기 대한민국에도 그런 일 존재한다.

 

하지만 다행인 건 지금은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이번 대선 결과만 해도 그렇다. 1등, 2등이 각각 49%, 48% 의 득표를 얻었다. 1등만이 당선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여론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힘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걸 의미다. 독재의 반대말이 민주주의라면 이번 선거 결과는 민주주의다운 결과였다. 민주주의는 각자의 편향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다. 왜곡된 정보가 많더라도 그 힘이 반반이기 때문에 우리는 균형 감을 가질 수 있다. 게 다행이다.

 

플라톤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가장 저질스러운 사람들에게 지배를 당한다고 했다. 선거 기간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는데 투표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정치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크다는 것, 그 사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생활하기에도 바빴고 그런 상황에서 가끔 눈에 띄는 뉴스는 자극적인 선전 전부였다.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그냥 느낌대로 투표했다.

 

대선을 겪으면서, 그리고 시기가 묘하게 ‘조지 오웰’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접하는 모든 정보를 있는 그대로 믿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무하는 정보와 선전 속에 진실을 볼 수 있는 나만의 관점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가지 다짐을 한다. 정치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볼 생각이다. 정치인들이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볼 생각이다. 선전에 휘둘리지 않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그들을 평가해볼 생각이다. 달에 앞면이 있다면 뒷면도 있다. 실을 바라보는 힘을 길러 나의 소중한 한 표에 힘을 더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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