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특별한 해였다. 2017년 6월 30일, 스물여섯 살에 시작한 28개월의 군생활이 끝났다. 전역을 한 것이다. 대학에서의 ROTC 후보생 기간을 합치면 54개월이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게 2013년 1월이다. 방학마다 훈련이 끝나면 이제 4년 남았네, 아직 3년 남았네, 하던 게 어느새 끝났다. 무탈한 군생활이었다. 몸도 건강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전역하고 두 가지 활동을 했다. 하나는 새벽 수영이었다. 종로에 있는 수영장에서 새벽 강습을 들었다. 아침 6시에 가서 7시까지 수영을 배웠다. 수강생은 별로 없었다. 시간도 일렀고 시내에 있는 수영장이었다. 나 말고는 대개 출근 전의 직장인들이었다. 보통 수영장에 가면 활기가 넘친다. 형형 색색으로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때 다닌 수영장은 그러지 않았다. 사람들이 없었고, 조명도 어두웠다. 물은 유난히 파랬다. 정적이 가득했고, 강습하는 강사의 목소리만 벽에 울렸다. 그런 곳에서 수영을 했다. 팔을 저었고, 호흡을 했다. 귀에 물이 들어왔고, 허벅지는 당겼다. 물안경을 벗고 수영장을 바라보면 시간이 멎은 것 같았다.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수영을 마치고 집에 갈 때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반팔 반바지에 덜 말린 머리로 집에 가는 데 거리에는 사원증을 매고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많았다. 수영장 옆에는 대기업 본사가 있었다. 그곳에 출근하는 직원들과 동선이 겹쳤다. 나는 집에 가고, 그들은 회사에 갔다. 여름 햇살에 길가에 핀 나뭇잎은 푸르렀다. 내 인생은 어디로 흐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었다.
글쓰기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강사는 소설을 쓰고 연극을 제작한다는 분이었다. 강남의 어느 오피스텔에서 수업을 들었다. 2달 정도 강의를 들었는데 기억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글쓰기, 특히 소설에는 뚜렷한 주제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추레 아비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비가 추레하면 가족들이 집을 떠난다고, 그런 주제를 가진 소설이 우리나라에는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라는 단편이 있다. 추레 아비라는 주제는 처음 듣는 통찰이었지만 마음에 깊이 남았다. 그걸로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세상에는 많았다. 톨스토이의 소설인 <안나 카레니나> 은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세상에는 추레 아비가 더 많을까, 그렇지 않은 아비가 더 많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수영을 배우고 글쓰기를 배웠던 두 달의 시간은 특별했다. 살면서 처음 맞은 자유의 시간이었다. 학생 때는 학교가 소속이었고 군인일 때는 군대의 소속이었다. 재수할 때는 소속은 없어도 수능이라는 목표가 있었다. 정해진 공간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 안에서만 살았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언가에서 벗어나 있음이 처음이었다.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걸 즐길 수는 없었다. 전역으로 인한 흥분은 사라지고 어느새 미래에 대한 불안이 찾아왔다. 덩그러니 주어진 자유의 시간은 새벽 수영장의 고요와 비슷했다. 적막했고,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친구들은 회사에 다니며 월급도 받고 해외여행도 다녔다. 연애도 했고, 차도 샀다. 그런 걸 보자니 이대로 살면 이방인이 될 것 같았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결국은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새벽 수영도, 글쓰기도, 두 달 만에 그만둔 상태였다. 자유를 즐길 능력이 나에게는 없었다. 그게 벌써 6년 전이다.
자유와 행복에 대해 생각해본다.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실현하는 자유가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자신의 욕망을 아는 것이다. 전역하고 맞은 자유의 시간, 그 두 달 동안 내가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의 욕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꿈꾸는 삶을 추구하면서도 반대로는 안정적인 삶을 바랐다. 고난을 버티고 가난을 벗 삼아 결국에는 성공하는 삶, 그런 삶을 살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족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주고 안정적인 연애를 할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싶었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결정을 해야 했고 결국은 안정적인 삶을 택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떠냐면, 행복하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 후회는 없다.
엄마는 아직도 미안해한다. 당시에 내가 한 선택을 당신 탓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지 못해 내가 꿈을 접었다고 하신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 더 안정적인 환경이었으면 뭐라도 한번 도전하지 않았을까,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변명이다. 결국에는 내가 바라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니었다. 애초에 안정적인 생활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게 내 진짜 속내였다. 엄마가 나에게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나에게 행복한 삶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내 힘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조금 더 발전된 내일을 위해 지금 이 순간 작은 노력을 할 수 있는 것, 그게 행복이다. 때때로 수목원을 걸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결론은 '그렇다'이다.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엄마 아빠의 안부를 묻는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맛있는 걸 먹고, 축구를 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렇게 일상을 채우고 있다. 이게 나의 행복, 확실한 행복이다. 이런 내 삶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