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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Jul 01. 2022

돈 기브업

취업 준비를 했을 때였다. 군대에서 모은 돈을 주식에 투자했다. 며칠 만에 수익이 났다. 핸드폰 몇 번의 터치로 수십만 원을 번 것이다. 실력도 없고 아는 것도 없었지만 운이 좋았다. 초심자의 행운이었다.


수익을 실현한 날은 취업 준비 센터에서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데 창밖으로 포장마차가 보였다. 어묵을 파는 아주머니가 계셨고,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묵은 하나에 500원이고 아주머니는 어묵을 팔아서 생계를 한다. 내가 주식으로 번 돈은 수십 만원이고 어묵으로는 수백 개가 넘는 돈이었다. 이 돈을 벌려면 그녀는 하루 종일 어묵을 팔아야 했다. 그녀의 노동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좌에 남은 수익과 아주머니가 팔고 있는 어묵의 개수,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마음에 들어왔다. 기분이 이상했다.

 

누군가는 500원짜리 어묵을 팔아서 먹고 산다. 하지만 누군가는 보다 큰돈을 쉽게 번다. 수백 만원일 수도 있고, 수천 만원일 수도 있다. 수억, 수십억 원 일 수도 있다. 그러려면 어묵은 수 십만 개를 팔아야 한다. 마음이 씁쓸했다. 나 또한 먹고살기 위해 입사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입은 없고 지출만 있는 일상이었다. 취업 준비 센터는 자기소개서를 첨삭받는 곳이었다. 자기소개서는 취업 시장에서 나라는 상품을 광고하는 전단지였다. 아주머니는 어묵을 팔고, 나는 내 노동을 팔아야 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을 외치지만 공평한 세상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의 출발선은 다르다. 각자는 자기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금수저가 쥐어지고, 누군가에게는 흙수저가 쥐어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순위를 나누고 서열을 매긴다. 비교하고, 비교당하고, 그 속에서 상처받는다. 자본주의 시대인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이념은 돈이다. 사람들은 모든 걸 돈으로 판단한다. 그게 누구든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돈 앞에서 작아지는 건 당연하다.

 

최근에 주식 시장이 폭락했다. 그간의 수익이 손실로 바뀌었다. 투자 수익이 줄어드는 건 괜찮지만 저축했던 돈이 사라지는 걸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손실을 본 이유는 탐욕 때문이었다. 수익이 계속되니 욕심이 생겼고 커진 욕심에 더 큰 위험을 안았다. 기대 수익이 큰 만큼 위험하다는 게 투자의 진리다. 그걸 몰라서 그랬다는 건 아니다. 알았지만 마음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탐욕에 눈이 멀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이제는 괜찮다. 직접 겪지 않았으면 절대로 배우지 못할 값진 경험을 했다. 더 늦은 나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인생은 길고, 그래서 괜찮다. 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기도 했다. 어떤 정도의 자산이 있어야 돈 앞에서 의연할 수 있을까. 많을수록 좋은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돈이 없는 건 상상할 수 없다. 투자를 그만두어야 할까, 그건 아니다. 이렇게 저렇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돈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돈을 버는 것이다. 노동으로 돈을 벌고, 투자로 그걸 늘린다. 생계에 어려움 없는 자산을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는 돈이 최고가 아니라는 인식을 훈련하는 것이다. 돈보다 소중한 건 사람이라고, 건강이라고, 사랑과 우정 그리고 행복이라고 되새겨야 한다. 지난날 포장마차 아주머니의 노동에서 값싼 우월감을 느꼈던 이유도 그녀의 노동을 돈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시 그게 생산성이 낮은 일이라도 그 가치를 그저 돈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 돈의 크기가 지상의 가치는 아니고 경제적인 효율성이 사회의 정의는 아니다. 생계를 한다는 건 그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녀의 노동은 그 자체로 귀중하고, 소중하다. 그걸 알아야 한다.

 

살다 보면  앞에서 작아지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짐한다.  앞에서 의연한 사람이  것이다. 그런 사람이  것이다. 10 후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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