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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Jul 12. 2022

당신의 문학 속에 내가 있기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가 쓴 '상실의 시대'를 읽었을 때,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까웠다. 마약 같다고 할까,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었다. 하나의 소설에 이렇게나 빠지는 게 신기했다. 버스 뒷 자석에 앉아 책의 남은 두께를 가늠했다. 어두운 저녁이었고, 버스 창으로는 가로등 불빛 아래 가로수가 보였다.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키의 팬이 되었다.


그의 장편 소설은 대부분 읽었다. 가끔 나만의 세계를 가지고 싶을 때 그의 소설을 찾는다. 나를 쉽게 여기는 회사 사람들을 잊고 매일을 노력해도 매번 반복되는 일상의 과제를 멀리하고 싶을 때, 그의 이야기를 읽는다. 그렇게 책을 읽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일상을 살아갈 힘이 생긴다. 현실의 사람들과 웃고 떠들 수 있는 힘, 찾아오는 갈등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공이 보통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성공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돈이 없어도 행복한, 그런 울타리를 가진 사람도 아니다. 고독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그런 주인공이 하나의 사건을 만나 이야기가 전개된다.


고독하고 불안할 때가 있다. 주말 아침 몸이 침대에 붙어 조금도 움직이기 싫은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일 때, 그런 기분이 든다. SNS를 둘러보며 누구든 연락해 주길 바라지만 먼저 다가가기는 싫고 잠이 깨서 배는 고픈데 라면이라도 먹자니 그마저도 귀찮을 때, 인생이 뭘까 싶은 생각이 든다. 불안하고, 고독하다.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는 건 그가 그리는 주인공이 나와 닮았기 때문이다. 치장을 벗어낸 보통의 인간, 고독하고 외로운 나약한 존재, 그게 바로 나다. 그의 소설이 세계적인 인기가 있는 이유도 인간은 대개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겉모습과 강해 보이는 외양과 달리 고독과 불안을 힘들어하는 작고 초라한 존재, 그게 바로 사람이다. 하루키의 문학 속에는 내가 있다. 그리고 인간이 있다.


주말 아침 내 안의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건다. 나를 좀 봐달라고, 내가 여기 있다고, 너는 어떠냐고, 그래서 우리는 어떠냐고, 묻는다. 어두운 방에서 그와의 시간을 보낸다. 신기한 건 그런 시간이 있어야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회사 일을 하고, 친구들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락할 수 있다. 웃고, 장난치고, 너스레 떨 수 있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안의 고독과 마주할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의 존재를 인정할 , 우리는 살아갈  있다. 당신의 문학 속에 내가 있기를 바란다. 나의 문학 속에도 언제나, 당신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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