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파랑새

by 추세경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백지 위에 옮기는 일이다. 오늘 하루 느꼈던 일이든 살면서 가져왔던 감정이든 내 안의 무언가를 단어와 문장, 문단이라는 형태로 만든다. 어떤 이들은 잘 살아야 좋은 글을 쓴다고 믿는다. 삶이 곧 글이라고, 수목원의 버드나무 같은 삶을 살아야 다른 이가 쉬어갈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에는 글쓴이의 삶이 담긴다는 것이다.


작가는 어떤 글감으로 무엇을 표현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글쓰기를 처음 할 때는 이게 비교적 쉽다. 왜냐하면 글쓰기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마음에 표현하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살면서 힘들었던 이야기, 누군가를 사랑했던 이야기, 고독했던 기억, 행복하고 벅찼던 일들을 아낌없이 풀어낼 수 있다. 마음속에 숙성된 재료가 많고 그것들을 세상에 내놓으면 된다.


하지만 그런 소재들을 모두 사용하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했던 말을 또 하는 것 같고, 비슷한 주제로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노트북 화면은 화장실 타일처럼 하얗게 비어 있는데 그 안에 무언가를 채우자니 생각이 쉬이 나지 않는다. 뭐라도 써보겠다고 책상에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아무것도 쓰지 못할 때도 많다. 결과물이 없어 허무하기도 하고 평생 어떻게 글을 쓸지 막막하기도 하다. 흔히 이야기하는 '창작의 고통'을 느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누구나 한 권의 책은 쓸 수 있다고 했다. 누구든 살면서 응축된 자기만의 감상이 있어 그런 것들을 모으면 한 권의 책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10년이고 20년이고 글쓰기를 계속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 반짝했다 사라지는 작가들은 수 없이 많다고, 어려운 건 '오랜 기간', '끊이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이라고 말이다.


거의 3년째 글을 쓰다 보니 하루키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건 나만의 의미를 만드는 일이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건 빈 화면 앞에서 텅 빈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의미에서 오는 무력감과 거기서 오는 '창작의 고통'을 수 없이 버텨야 한다. 그러려면 해수욕장의 폭죽처럼 잠깐의 반짝이는 열정이 아니라 글을 쓰는 자기만의 이유와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집요한 고집이 필요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의 소재가 되는 글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결국 정답은 우리의 삶에 있다.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글의 소재를 찾아야 한다. 책을 읽어도 좋고, 영화를 봐도 좋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느끼는 감상도 좋고 일상에서의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한 통찰도 좋다. 그렇게 보고, 읽고, 느끼고, 배우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마음속에 잘 정리해야 한다.


물론 우리의 일상은 만만하지 않아서 별생각 없이 지나가는 날도 많다. 회사에서 기계처럼 일만 하다 집에 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쳐 쓰러져 잠에 드는 날도 많다. 어제와 오늘을 구분하기 어려운 지루한 매일을 보내기도 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연인과의 이별이나 슬픈 가족사, 인생에 몇 번 없을 특별한 일들이 글감이 될 것 같지만 (글쓰기의 관점에서는) 아쉽게도 그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은 대개 잔잔하고, 고요하다. 그런 하루는 혼자 간직하는 일기는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공개하는 '글'이 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이 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연결의 힘' 덕분이다. 글쓰기는 생각의 덩어리를 글자라는 도구로 표현하는 것이다. 새로운 글을 쓴다는 건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일인데 새로움이라는 건 곧 창의성에 기반한 창작이다.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건 세상에 없던 개념을 만드는 게 아니라 원래 존재하는 것들의 새로운 연결이고, 들어 보지 못한 것들의 새로운 나타남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의 신선한 융합이다. 따라서 별거 없어 보이던 어제와 무의미해 보이던 오늘의 일들은 은유적으로 또는 상징적으로 연결돼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작가라는 건 그런 연결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결국 오래도록 글을 쓰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스스로의 일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창작의 점들을 모을 수 있다. 별거 없어 보이는 하루하루도 마음에 '분명' 무언가를 남기고 있다. 그걸 알아야 한다. 두 번째는 그런 점들을 연결할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색의 시간이란 글쓰기를 위해 지루함을 버티며 머리를 싸매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들을 감내하다 보면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눈을 쏘듯 불현듯 떠오른 영감으로 하나의 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내 꿈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도 글을 쓰는 것이다. 무늬가 예쁜 원목 책상에 앉아 돋보기안경을 쓰고 창틈에 비치는 햇살을 바라보며 글을 쓰는 것, 그게 내 꿈이다. 33살에 겪은 일이든 43살에 겪은 일이든 생이 주는 의미를 받아들이고 나만의 해석을 덧대어 또 다른 의미를 만드는 일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와 촘촘히 연결된 사회관계 속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글을 쓰는 것, 그거 하나라고 믿는다. 오늘도 모니터 앞에서 글을 쓴다. 타자기에 손을 올리고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린다. 하늘은 푸르고, 나뭇잎이 바람에 나부낀다. 나는 날 수 있을까. 어디로 날아갈 수 있을까. 글 쓰는 파랑새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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