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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Jan 05. 2023

잠은 행복의 보약일까

폭염이 계속되던 2013 8월의 여름이었다. 대학교 ROTC 후보생으로 하계 군사 훈련을 위해 훈련소에 입소한 상황이었다. 하루는 야간 행군을 하는 날이었는데 밤에 있을 훈련을 위해 오침 시간이 주어졌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낮잠을 자라는 지시였다. 행군에 대한 걱정보다는 눈앞에 주어진 낮잠 시간에 기분이 좋았다. 뜨거운 햇살을 암막 커튼으로 가리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점심 식사 후에 찾아온 식곤증이 오히려 반가웠고, 그걸 벗으로 잠에 들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세 시간이 지나 있었다. 기억에 남을 만한 깊은 잠이었고 침대에서 일어날 때도 몸이 엄청 개운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다. 그 순간, 하나의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잠이라는 건 양보다 질이 중요하구나, 하는 것이었다. 깊은 잠을 잤다는 실감과 더할 나위 없이 컨디션이 좋다는 것, 그 둘의 조합으로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앞으로는 하루에 네 시간만 자겠다고, 어차피 잠이라는 건 얼마나 '깊게' 자는지가 중요한 것이니 하루에 네 시간 정도만 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훈련소에서 당장 실천하기는 부담스러웠지만 훈련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면 바로 행동에 옮겨볼 생각이었다.

 

퇴소를 하고 이내 실천에 들어갔다. 되도록 새벽 두 세시까지는 깨어 있으려고 노력했다. 늦은 시간까지 책이라도 한 글자 읽으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몸이 피곤해야 잠도 깊게 잘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기상 시간은 일곱 시였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잠을 별로 자지 않아도 컨디션이 괜찮았다. 하루에 네 시간만 자도 컨디션이 그전과 다를 게 없었다. 이게 웬걸, 시간은 금이라고 하는데 인생의 금광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공짜 돈이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한 달이 되지 못해 그만두고 말았다. 작심 삼주 라고 할까, 삼주가 지나자 몸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학교 강의 시간에는 꾸벅꾸벅 졸았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밀려오는 졸음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눈은 떼끈 했고 머리는 멍했다. 사소한 일들에 짜증이 났고 밤늦게 까지 깨어 있기도 힘들었다. 숙면의 힘을 믿었지만 결국 허사였다. 수면의 질도 중요했지만 잠을 자는 양도 무시할 수 없었다. 더 이상 그렇게 살 수는 없었고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나에게는 한 가지 철학이 있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상태에 대한 믿음인데 그 둘이 서로서로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아플 수 있고, 마음에 병이 생기면 몸에도 병이 생긴다,라고 믿고 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몸과 마음은 이어져 있어 마음을 괴롭히는 정신 자극, 즉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게 어디든 우리 몸은 아프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어느 순간 이걸 깨달았고 이런 관점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니 과거의 나의 상태에 대한 새로운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

 

때는 2017년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역을 했던 해였고 생계를 결정할 취업 준비를 했던 시간이었다. 지원한 회사들에 면접까지 마친 12월, 인생에서 처음으로 우울증에 걸렸다. 마음이 텅 비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는 기분, 꺼진 모니터 화면 같은 마음이었다. 우울증에 걸렸던 이유에는 가정사도 있었고 개인적인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이 글에서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불규칙한 수면 습관도 내가 우울증에 걸렸던 원인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런 내 상태가 온전히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고 믿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의 신체적인 건강이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의연하게 감내하지 못해서 발생한 일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군에서 전역하기 전에는 매일 같은 시간에 잠들고 매일 같은 시간이 일어났다. 하루에 7시간 이상 숙면을 취했고 운동을 거르는 날도 없었다. 더없이 건강하게 생활했다. 하지만 전역을 하고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취업준비를 할 때는 운동도 전혀 하지 않았고 수면 습관도 불규칙했다. 특히 취업 준비가 끝날 쯤에는 해방감에 취해 몸에도 안 맞는 술로 밤을 지새우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몸 건강에 나쁜 일들을 반복하는 와중에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가 생겼고 그런 스트레스를 몸과 마음이 견디지 못했다,라는 것이 새로 맞춘 퍼즐이다.

 

최근에 어떤 교수의 강연을 들었는데 그가 하는 이야기는 이랬다. 노트를 펼쳐 놓고 오늘이 행복했는지를 매일 확인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수면 시간을 적어보라고 했다. 그렇게 매일 행복과 수면에 대한 기록을 하다 보면 행복하다고 느낀 날과 그날의 수면 시간에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을 거라고 했다. 다시 말해 잠이 부족하면 그 하루를 불행했다고 느끼고 잠을 충분히 자면 그 하루는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있다는 나의 믿음과 수면과 행복에 대한 교수의 주장을 합쳐보면, 사람은 잠을 잘 자야 건강하고,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잠은 몸에도 보약이지만 행복에도 보약이라는 것이다. 오류가 있는 섣부른 일반화 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걸 일상을 통제하는 하나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틀린 생각일지 몰라도 아직까지는 이게 맞다고 믿고 있다.

 

물론 잠만 잘 잔다고 무조건 행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행복의 방정식, 그 복잡한 문제에 대한 정답이 그저 ‘잘 자는 것’ 하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불면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너는 잠을 잘 못 자니까 불행한 거야, 그러니까 잘 자야 해,라고 한다면 그건 꽤나 무책임한 대답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너는 우울하니까 우울증에 걸린 거야, 그러니까 우울해하지 말아야 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은 평범한 하루를 살다가도 발목을 접질려 불행한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기쁜 마음으로 퇴근했는데 친구에게 서운한 말을 들어 저녁 내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퇴근은 했지만 회사 스트레스로 잠을 설칠 수도 있다. 그런 일들을 무시하고 단지 잠만 잘자면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조금 머쓱한 주장이다.

 

하지만 잠을 잘 자는 습관, 규칙적인 숙면의 습관이 행복을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어서 생기는 불행은 수 없이 많은 것처럼, 잠을 잘 잔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잠이 부족해서 찾아오는 불행도 생각보다 많다. 몸의 건강은 행복을 위한 기본 중에 기본이고 몸이 건강하려면 좋은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이다.

 

자는 시간을 아까워해서는 안된다. 하루에는 최소 7~8시간은 반드시 잠을 자야 한다. 그래야 더 활력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고 그래야 더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자는 시간을 아꼈던 어린 날의 열정은 그 자체로 존중하고 싶지만 이제 와서 그걸 하라고 한다면 지금은 그럴 수 없다고, 그건 어리석은 욕심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죽으면 어차피 평생 잘 건데 왜 그렇게 자,라고 묻는다면, 살아있을 때 행복하게 위해서는 잘 자야 해,라고 답하고 싶다. 오늘도 잘 자려고 한다. 깊은 잠을, 편안하게, 잘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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