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 '내 인생의 3박 4일' 명상 프로그램을 마치고
동남아 배낭여행을 마친 11월 초, 한국에서 잠시 머물기로 했다. 망원역 근처 어딘가에 숙소를 예약해 둬서 거기로 향하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붉은빛과 노란빛이었다. 10년 만에 맞이하는 한국의 가을은 괜히 낯설고 설렜다.
하루는 이모랑 공원을 산책을 하면서 국내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템플스테이를 해보라며 추천해 주셨다. 예전부터 절에서 지내는 삶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이 있었기에 바로 솔깃해져 버렸다. 이모랑 헤어진 후 템플스테이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전국 각지 절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꽤 많이 리스팅 되어 있었다. 쉼이 목적인 '휴식형'과 말 그대로 뭔가를 체험하는 것이 목적인 '체험형'이 있었는데, 나는 당시에 체험형에 마음이 갔다.
템플스테이 포스트를 열심히 둘러보던 중 전라북도 남원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실상사에서 운영하는 3박 4일 명상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예전부터 명상에 관심이 있었고, 언젠가 명상 마스터에게 명상하는 법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루에 8시간 명상 공부라는 힘든 스케줄과 예상보다 높은 참가비를 보니 살짝 흠칫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은 강한 예감에 이끌려 며칠 고민 끝에 마음을 굳히고서는 참가비를 입금해 버렸다. 처음으로 절에서 지내볼 생각에 기분 좋은 긴장감이 들었다.
폭설 속에서 시작한 템플스테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템플스테이 당일 새벽 5시 반,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열어보니 대설주의보 문자가 몇 개 와있었다. 전날부터 눈이 꽤 내리기 시작하더니 무려 117년 만에 11월 최고 적설 치를 기록한 것이다. 지하철이 마비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일찍 출발해서였는지 생각보다 한적한 지하철을 타고 동서울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고속버스가 출발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고속도로에 눈이 꽤 쌓였었는지 버스 바퀴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달리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바퀴가 미끄러져서 사고 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목을 빼들고 버스 앞 유리창을 열심히 째려보았다. 그러다 서울을 빠져나오면서 도로 사정이 훨씬 나아졌고, 덕분에 오른쪽 유리창 밖으로 눈 내린 풍경을 마음 놓고 감상했다.
실상사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다슬기 수제비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전라도의 손맛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밥을 먹고 나서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절 근처에 운치가 좋던 카페에서 오미자라떼를 마시며 느긋하게 책을 읽다가 입실시간에 맞춰서 실상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절에 들어가는 길목의 초입에 위치한 해탈교를 건너다가는 잠깐 멈춰서 천천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기도 했다.
절에 들어서니 프로그램 안내를 맡으신 여자 담당자분께서 나를 맞이하셨다. 그분은 벽에 붙은 숙소 지도를 가리키시며 시설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해주시고 나서는 내 또래의 여자 한 분과 함께 지내게 될 것이라 일러주셨다. 사실 1인 1실을 예상했기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입실하고 나서 10분은 지났을까, 내 룸메이트로 보이는 여자 한분이 캐리어를 끌고 숙소로 들어오셨다. 외모를 보니 나처럼 미혼이겠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기혼에 자녀도 두 명 있으시다고 했다. 룸메이트도 나랑 비슷하게 다른 사람한테 큰 기대가 없으시고 남에게 피해 주는 것도 싫어하는 분이셔서 불편함 없이 지냈다.
잠 못 이룬 나날들
첫날에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샤워를 하러 세면장에 갔는데 문이 잠겨있고, 어떤 분께서 샤워를 하고 계신 듯했다. 숙소에 돌아가서 룸메이트분과 이런 식으로 해서 7-8명이 어느 세월에 다 씻냐, 시스템이 좀 이상하다는 내용의 대화를 했다. 그러다 세면장 문이 열리는 '딸깍'소리가 들렸고, 샤워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나는 잽싸게 세면장으로 들어가서 샤워를 시작했다.
한창 샤워를 하던 중, 갑자기 문 밖에서 '똑똑'하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쪽으로 가서 최대한 정중한 말투로 저 있어요,라고 외친 후 샤워를 이어갔다. 그런데 노크 소리가 멈추기는커녕 점점 격렬해지는 것이었다. 이상한 기색이 들어서 몸에 수건을 대충 두른 후 문을 살짝 열어보니 수업을 같이 듣는 도반 두 분이 떡하니 서계셨다. 느낌이 싸해서 들어오라고 하는데, 그중 한 분이 잔뜩 성이 난 채로 말했다. 사람이 몇인데 혼자서 세면장을 다 써버리면 어떡해? 억울한 마음에 한바탕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나름의 사정을 침착하게 설명을 하고 나서 사과를 드렸다. 나의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화가 사그라들지 않으셨는지 그분은 어떠한 대꾸도 없이 굳은 표정으로 세면장 밖을 나가셨고, 나는 그저 어리벙벙했다.
난데없이 벌어진 세면장 사건에 많이 놀랐던 걸까. 나는 그날 두 눈을 감은 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온전히 나 홀로 지새워만 하는 어둠의 시간은 언제나 괴롭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깊은 수면에 빠진 룸메이트와는 너무나 대조되는 내 모습이 스스로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그것도 이렇게나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절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나는 그날 이후로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방바닥이 너무 뜨거웠나? 잘 모르는 사람과 같이 자는 게 불편했나? 세면장 사건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받았나? 어쨌든 나는 외부 자극에 꽤나 크게 영향을 받는 인간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수업은 스님께서 진행하셨고 처사님 두 분께서 수업 진행을 도와주셨다. 수업 참가자는 나까지 해서 11명 정도였다. 우리는 함께 스님 말씀을 듣고, 사찰에서 자체 제작한 책자 내용과 불경을 읽고, 시를 읊고, 노래를 듣고, 물음에 답을 하고,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우리는 사띠(마음 챙김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를 확립한다는 의미에서 정수리 위에 작은 쇠그릇을 얹어놓고 수업을 듣곤 했는데,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집중력이 깨지면 그릇이 떨궈지면서 짧게 와장창 소리가 나곤 했다.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있으면 다리가 저려와서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 앉으며 통증을 덜어내려 애쓰기도 했다.
사람들 앞에서 펑펑 울어버린 날
셋째 날, 그러니까 사실상 마지막 수업이었다. 스님께서 책자에서 어느 페이지를 펼쳐보라 하시면서 쉬는 시간 동안 해당 페이지에 적혀있는 몇 개의 질문에 답을 적어오라고 하셨다. 우리는 각자 답을 가지고 수업시간에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발표를 할 거라고 하셨다. 처사님께서는 이번 시간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예요, 라며 덧붙히셨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서 첫 번째 질문을 읽어보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변화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보았다. 첫 번째로는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고 싶다는 것. 두 번째로 생각난 건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때마다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 성에 차는 완벽주의를 버리고 싶다는 것. 세 번째로 생각난 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 가지의 답변은 모두 근본에서 조금은 빗겨 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금세 진짜 답변이 생각났는데, 바로 나와 아빠와의 관계였다. 마지막으로 나의 가장 진실된 답변을 적어보았다.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싶다.
쓰고 나니 막상 생각할 거리가 많아졌다. 괜히 허튼짓하는 걸까? 너무 깊은 구석을 사람들 앞에서 공개하는 게 이상한 짓일까?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나게 고민을 하다가 언제나 그래왔듯 마음이 가는 대로 하기로 했다. 까짓 거 조금 창피하더라도 앞으로 볼 일 없는 사람들이니까, 하는 배짱이였다.
드디어 오후 수업이 시작됐다. 교실에 들어가니 평소와는 달리 앞에 서로 마주 본 의자가 두 개 놓여있었다. 곧 사람들 앞에서 아빠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에 심박수가 올라갔다. 스님께서 먼저 발표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보세요, 하고 물으시기에 나는 스님의 눈을 피해 시선을 엉뚱한 데다 두었다. 두 사람의 발표가 끝난 후 스님께서 인자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호명하셨다. 올게 왔구나, 속으로 생각하면서 앞에 놓인 의자를 향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터덜 터덜 걸었다. 의자에 앉은 후 반대편에 계신 스님과 편히 눈을 마주쳐보았다.
"내 인생에서 변화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싶습니다."
"언제부터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졌나요?"
"십 대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 돌발 질문을 받는 순간 눈물 폭탄이 팡! 하고 터져버렸다. 한번 터져버린 눈물은 전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제어 불가한 수준의 감정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천천히 내쉬어보는 숨소리의 떨림은 어릴 적 내 마음속 고통의 깊이였다. 내 두 손은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휴지로 닦아내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에 대한 신념은 무엇인가요?"
스님의 다음 질문을 듣고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정신없이 울다가 한참 후에 대답을 했다.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
눈물은 멈출 길을 몰랐다.
"그 외에 다른 게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용기가 없는 사람."
조금의 거짓도 없는 솔직한 답변이었지만 문득 아빠를 너무 욕보인 게 아닌가 싶어서 조금 죄송스러웠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버린 나의 발표 시간이 끝나고 제자리로 돌아와 주변을 차츰 의식하면서 창피함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살면서 다른 사람 앞에서 이 정도로 울어본 건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당시 따돌림 문제로 상담할 때 이후로 처음이다. 내 옆자리 도반분께서 안쓰러워서 못 견디겠다는듯한 눈빛을 보내시면서 "손은 괜찮아요?" (손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다) 하고 물으시는데 마치 모두에게 동정을 받아야 할 대상이 된 것 같았다. 나 자신이,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은 수업시간 내내 울다가 웃다가를 수없이 반복하며 내 감정은 양극단을 제멋대로 오갔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도반들 중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안쓰러우면서도 희한한 사람' 정도로 기억하지 않을까.
슬픔을 손님 대하듯
(보통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꿈을 꾼 것 같았던 수업시간이 끝나고 저녁을 먹으러 공양간으로 갔다. 같이 수업을 듣는 친근한 이미지의 어머니 도반분께서 "실컷 울고 나서 먹는 밥이니까, 엄청 맛있겠네!" 라며 웃으셨고 나도 덩달아 웃었다. 가볍게 툭 던진 농담 속에 삶의 내공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수업을 보조하시는 처사님 두 분 중 한 분과 마주 보고 앉아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칠 때쯤 처사님께서는 내게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몇 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너무나 큰 상실감에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우셨는데, 어느 날부터는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슬픔을 나에게 잠시 찾아왔다 지나가는 손님처럼 대해 보세요. 그 말씀이 내 뇌리에 크고 또렷하게 다가왔다. 어릴 적 나는 어떤 일을 겪고 나서 슬퍼서 눈물이 나면 항상 스스로를 다그치는 식으로 대응했었다. 왜 느닷없이 바보처럼 눈물이 나는 거지? 울어서 뭐 해, 그만 울자, 하면서. 하지만 슬픔을 이런 식으로 방치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마 그때에 억눌러왔던 나의 슬픔이, 그 상처가 수업 시간에 툭 하고 건드려지면서 격하게 반응해 버린 것일 테다. 슬픔을 슬픔으로 느껴주는 것. 나에게는 그것이 명상의 시작일수도 있을 것 같다.
절에서는 보통 마음이 비워진다고들 하던데, 나의 경우는 정확히 정반대였다. 얼마나 마음이 복잡했으면 스님에게 받은 책 선물도 놓고 돌아오는 바람에 처사님을 피곤하게 했다. 그래도 이번 시간을 통해 불교의 지혜를 '깨달았다'라고 하기엔 너무 장황한 듯하고, '엿보았다' 정도로 해둘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는 살아가다가 슬퍼지면 슬픔에게 잘 오셨어요, 충분히 머물다 가세요, 하며 손님처럼 대해볼 것. 그러다 보면 스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언젠가 내 안에 고여있던 썩은 물은 전부 다 흘러 보내지고, 새로운 물로만 가득 차는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