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가게의 뒷문

by 강나린

살면서 판매직을 딱 한 번 경험해 봤는데 이십대 때 갓 시드니에 갔을 때였다. 대학생 남매를 둔 한국인 부부가 하는 옷가게였는데 일주일에 세 번, 오후에 다섯 시간씩 3개월쯤 일했다. 가게는 차이나타운 근처에 있었다. 평일 이틀, 토요일 하루 이렇게 일했는데 보통 매장에는 나랑 여사장만 있었고 토요일에는 거기다 대만인 알바생이 한 명 더 있었다. 사장 남편은 물건 정리, 셔터 올리고 내리기, 여사장 픽드랍 정도의 일을 했기 때문에 내가 마주칠 일은 별로 없었다. 8평쯤 되려나? 거리의 모퉁이에 있는 작은 옷가게였는데 부띠끄를 표방하는 곳이라 인테리어가 고급진 편이었고 판매물품들도 비교적 고가였다. 우리 가게 옆으로 비슷한 크기의 옷가게가 두 개 더 있었는데 원래 한 개의 업장이었던 곳을 셋으로 쪼갰던 것인지 세 가게가 화장실을 같이 썼다. 가게 안 구석에 작은 창고가 있었는데 창고를 지나가면 뒷문이 있고 뒷문을 나가면 외부에서는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 있고 거기에 화장실이 있었다.


우리 가게 옆집은 젊은 중국인 여사장이 하는 옷가게였는데 악마를 숭배하는 로리타들이나 입을 법한 킹키한 고스룩을 취급하는 곳이어서 우리 가게랑은 아주 스타일이 달랐고 그 옆집은 사장이 한국인이었다. 우리 사장이랑 연배도 비슷하고 취급하는 스타일도 비슷했다. 속으로는 어쩔 수 없이 약간 경쟁 관계였을 것 같은데 겉으로는 둘이 친하게 지냈다. 오후가 되어 알바생들이 출근하면 둘은 같이 나가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근방의 다른 한국인 자영업자들을 만나 친목 도모도 하고 그랬다. 옆옆집 사장은 고등학생과 초등학생 딸 둘이 있었고 일손이 바쁜 날엔 고등학생 딸이 와서 돕기도 했다. 나는 3개월밖에 알바를 안 했지만 그 사장들은 이웃으로 10년 넘게 장사를 한 사이라고 했다. 그집 사장은 남편이 회사원이라 셔터 여는 것부터 모든 것을 그 여사장이 다 혼자서 처리했다. 세 가게가 화장실을 공유했기 때문에 청소 비용이나 관리 등에 관해 가끔 상의할 일이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난 꿈에도 몰랐다.


어느날 우리 사장이 열흘 정도 한국에 옷을 하러 간다고 했다. 가게에 가져와 팔 것을 사 오는 것이다. 사장이 자리를 비우는 기간 동안 내 근무 시간이 조금 늘어났고 내가 일하는 주3일 내내 그 대만인 알바생이랑 같이 일하게 됐다. 그땐 아직 현금을 많이 취급할 때였기 때문에 사장 남편이 마감과 가게 문 열고 닫기를 맡아서 했다. 그 기간에 대만인 동료와 친해져서 마치고 같이 맥주도 한 잔씩 하고 그랬는데 어느 날 그 동료가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거다. 우리 사장 남편이랑 옆옆집 사장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에이 설마, 하고 안 믿었다. 그런데 그렇게 넘기기에는 그 동료가 너무 확신에 차 있었다. 가게가 차이나타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중국인 손님이 많아서 옆옆집도 중국인과 대만인 알바를 썼는데 그집 알바생이랑 친구라고 했다. 그리고 내 동료는 우리 가게에서 2년 넘게 일해오고 있었다. 전혀 엉뚱한 동네에서 그 둘이 같이 있는 걸 목격한 적이 있고 둘이 다정해 보이더라고 했다.


나는 석연치 않았지만 그날 이후로 사장 남편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땐 내가 어렸기 때문에 그런 중년의 남녀가 연애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음.. 저런 얼굴과 살을 부비고 혀를 감을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했던 거다. 유부남 유부녀임을 고려한 윤리 때문이라기보다는. 젊음의 무지와 오만함이었겠지. 외적인 아름다움만이 절대적으로 유일한 기준이라 여겼던 시절이었고, 도덕심 이런 걸 떠나서 살 부비고 침을 더럽게 여기지 않고 맨몸을 처량하게 바라보지 않을 수 있어야 어쨌든 연애를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시기였고 내 눈에 그 둘은, 특히 사장 남편은 상당히 기준 미달같아서 너무나 의아했던 것이다. 과묵하고 점잖은 사람같기는 했다. 어느날 마치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을 때 사장 남편이 창고에 들어가서 한참을 나오지 않는 거다. 손님이 두어 명 구경하고 있었는데 대만인 동료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눈짓으로 창고를 가리켰다. 나는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창고에 들어가 봤지만 사장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내용물을 알 수 없는 상자들로 가득찬 창고를 겨우겨우 가로질러 뒷문을 살짝 열었다. 내가 문을 열자 내 쪽에서 쏟아져 나온 불빛이 컴컴하던 그 공간을 확 비췄고 어둠 속에서 화다닥 당황하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아무것도 못본 척하고 화장실에 잠깐 들렀다가 가게로 돌아갔다. 두 그림자는 사장 남편과 옆옆집 사장이었고 둘은 무슨 일 때문인지 다투는 것 같았다. 친밀한 사이에서의 다툼 같은 느낌이었다. 뭐 때문에 서운하다 뭐 그런. 서운한 게 있는 사이는 친밀한 거니까. 이후 사장 남편은 특별한 말은 안했지만 왠지 내게 쩔쩔매는 것 같은 인상이었고 나는 어느 정도 확신했다. 사장이 돌아오면 말해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 사실 그만두겠다고 이미 말을 해둔 상태였는데 사장의 한국행 때문에 가게 보기에 공백이 생기면서 예정했던 기간보다 길게 일을 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두려울 것이 없었다.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사는 사람들이 장성한 자녀가 있고 배우자와 경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왜 바람을 피우는 것일까? 삶이 너무 안정적이라 무료해서일까. 그런 사람들에겐 어떤 병적인 인자가 있는 것일까. 다 나쁘지만 차라리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젊은 사람이 바람을 피운다면 그쪽이 내게는 그나마 이해가 된다. 나이가 적다는 건 자주 판단 미숙과 그로 인한 치명적인 잘못을 야기하기도 하니까. 그리고 배우자와 같이 한 시간이 아직 얼마 안됐으니까 같이 헤쳐나간 시간도 적을 테고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할 수도 있고 상대방을 잘 모르는 건 차치하고라도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타협 능력이나 회복 탄력성이 있는지조차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자신이 얼마나 유혹에 약할 수 있는지 윤리관이 부족한지 스스로도 몰랐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정당하다는 게 아니라 비교적 더 어리석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사장 남편의 바람은 꽤 오래됐었나 보다.


우리 가게하고 옆옆집 가게는 약간 경쟁 관계에 있었지만 외부의 적에 대해서는 공동체 의식도 있는 관계였다. 차이나타운 쪽에 4~5층 규모의 쇼핑센터가 서너 개 있었고 쇼핑센터마다 밀리오레 식으로 옷가게들이 오밀조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기왕이면 우리 가게에서 팔면 좋겠지만 만약에 손님이 찾는 게 없는 경우 옆옆집으로 안내하기도 했던 것이다. 아예 소비자 인파를 다른 쇼핑센터 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보다는 서로 도우면서 쇼핑객들이 다음에도 우리나 너희 가게에 오게 하는 게 길게 봤을 때 나은 전술이라 여겨졌다. 우리 가게와 옆옆집 가게가 서로를 홍보해 주는 방법은 우리네 건 메이드인코리아야 였다. 그니까 차이나타운 쪽으로 쑥 들어가지 말라구 걔넨 다 메이드인차이나만 갖다 놔 이거였다. 웃기지만 중국인 쇼핑객들에게 이게 먹혔다. 하루는 우리 가게에서 원하는 걸 못 찾은 손님을 옆옆집으로 보냈는데 그 손님이 돈을 많이 썼던가 봤다. 옆옆집 사장이 마침 그날 와 있던 막내딸 손에 귤을 보냈는데 귤을 전해 주고 가게를 나간 아이를 거리에서 불러세워 뭐라고 뭐라고 말하는 사장 남편의 모습이 가게의 통유리창을 통해 보였다. 어린애니까 이웃 아저씨라고 용돈이라도 쥐여주는 건가? 정겹네, 생각하면서 무심히 봤는데 순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뭐라고 얘기하는지 전혀 들리지는 않았지만 뭔가 이상하리만치 애틋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언뜻 닮았다는 생각까지 드는 거였다.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여기며 그냥 넘기려고 했는데 날이 갈수록 그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윽고 며칠이 지나 사장이 돌아왔고 내가 일하기로 한 마지막날이 됐다. 며칠을 망설였지만 그 때의 나는 이상한 정의감 같은 것에 사로잡혀서, 그 나이의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의 어떤 롤러코스터같은 게 있어서, 말을 해 주는 편이 오히려 결과적으로 더한 파국을 야기한다고 해도 꼭 말을 해줘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딱 그냥 내가 본 것만 얘기했다. 사장은 황당해 하는 것 같기도 기분 나빠하는 것 같기도 했다.


"너네 차례로 왜 이러니?"


그러더라. 대만인 동료도 벌써 예전에 언질을 줬던 모양이었다. 나는 결단코 추측을 말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본 것만 담백하게. "같은 여자로서" 어떤 정의감같은 것에 도취되어. <올드보이>처럼 별뜻 없이 소문의 진원지가 될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이후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결정을 할지도 모른다. 사장은 내게 잘해줬으니까. 모르겠다. 나는 일을 그만두었고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왠지 찝찝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그 가게가 있는 길모퉁이는 한동안 일부러 피해 다녔다. 이후의 이야기는 뉴스와 한인잡지, 그 대만인 동료를 비롯한 지인들로부터 시간차를 두고 건너 들은 내용이다. 그저 상상력 풍부한 젊은 알바생의 오해로부터 남편의 명예를 지키고 싶어 남편을 추궁했던 사장은 오히려 후련하다는 심정으로 진실을 털어놓는 남편 앞에 망연자실하고 곁에서 살갑게 이웃사촌으로 지냈던 사람에게 긴 세월 바보 취급을 당했다는 생각에 배신감과 분노를 참지 못하다가 결국 옆옆집 사장과도 드잡이를 했고, 옆옆집에 쫓아가 그러한 현장을 만들 때 하필이면 그집 고등학생 딸이 시내에 친구들이랑 놀러왔다가 엄마 가게랍시고 들렀을 때라 딸을 통해 옆옆집 사장의 남편에게까지 이야기가 흘러 들어갔다. 옆옆집 사장과 그녀의 남편이 어떠한 관계였는지는, 다정했는지 남보다 못하게 지냈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추궁과 고백 그 사이에서 둘째 딸의 친자 관계에까지 의심의 눈초리가 향했던가 보았다. 그러나 그 모든 걸 다 떠나서라도 옆옆집 사장의 남편이나 내가 일하던 가게 사장이나 공통적으로 원했던 것은, 분노와 배신감과 모멸감에 치를 떨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분명히 바랐던 것은, 아마도 배우자가 그냥 그건 바람이었다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지만 처음엔 그저 교통사고같은 거였다고, 내가 돌아갈 곳은 당신 뿐이라고, 그런 반성과 후회였을지 모른다.


어떤 인연은 질겨서 저만치 멀어져도 다시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이어지기도 하고 또 어떤 인연은 한쪽에서 바락바락 인연을 이어가려고 애를 써도 마른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흘러나가듯 속절없이 아스라지기도 한다. 옆옆집 사장과 우리 사장의 남편은 젊디젊은 청춘의 시절에 어학연수를 하러 호주에 왔다가 같은 영어학교를 다녔고 연애를 했다고 한다. 나도 해 봤지만 애틋했을 것이다. 타지에서 의지할 곳이 필요했겠지. 지금처럼 비행기 타는 게 흔치 않을 때고 세계 어디에 있어도 온라인으로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으니 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만난 관계에는 어떤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다른 어떤 만남도 결국엔 그렇듯이. 둘의 비자 기간이 다를 수도 있고 한쪽은 가족이 있는 고국에 돌아가고 싶은데 다른 한쪽은 타국에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싶을 수도 있다. 각각의 선택에는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픈 부모님이나 아니면 외면하고 싶은 개인사같은.


연인이었지만 남자는 남아서 정착을 위해 독립기술이민에 도전했고 여자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락은 끊겼다. 남자는 고생 끝에 기술심사까지 갔으나 녹록치 않아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는데 당시 자기를 좋아하던 한 여자가 아는 법무사를 소개해 줬고 그 법무사가 이민성에 어필하는 것까지 도와준 덕분에 어찌어찌 심사를 통과했고 정착할 수 있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그 여자와 연인이 됐고 결혼해서 살게 됐다. 둘은 식당을 열어 돈을 벌었고 두 아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잘 키워냈으며 먹고 살만하게 되어 식당은 팔고 품이 많이 들지 않고 많은 직원을 거느리지 않아도 되는 작은 숍을 운영하게 됐다. 한국으로 돌아갔던 여자는 결혼을 했으나 이혼했고 한때 좋은 시절을 보냈던 호주에 여행 왔다가 한 남자를 알게 됐다. 그 남자의 적극적인 구애와 더불어 당시 한국에 만연해 있던 이혼한 여자에 대한 편견에 진절머리가 났던 터라 그 남자와 결혼해서 역시 호주에 정착하게 됐다. 많은 세월이 지나 중년이 되어 사업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여자는 그렇게 작은 옷가게를 하나 인수하게 됐고 우연히 젊은 시절 못다한 인연을 거짓말처럼 만나게 됐다. 이것이 대략적인 그들의 이야기다. 옆옆집 가게 사장의 둘째 딸이 내가 일하던 가게 사장 남편의 애였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세월을 훌쩍 넘어 더이상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고 자신의 감정이나 결정에 따라 그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가족이 생긴 상태에서 우연히 다시 인연이 된 그 전연인들은 그런 기가 막힌 우연에 신기해 하며 서로의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축복해 주는 대신 젊은 시절 못다 피운 연정을 불태웠다는 사실이다. 남의 눈을 피해 도둑처럼.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어느 정도의 분노와 슬픔이 그런 일을 하게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게 우연일 뿐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일하던 가게의 사장 부부는 그러고 곧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운전자는 여사장이었다.


그렇게 한때는 돈 많은 젊은 중국인 아가씨들이 바글바글하던, '메이드인코리아'임을 자랑하던 두 '한국 사장이 하는 한국산 옷가게'는 문을 닫았다. 옆옆집 사장도 곧 가게를 내놓고 사라졌다.



글을 마치며,


사족이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가게 이름 때문에 더 극적인 이야기다. 흔히들 가수가 자기 노래 제목 따라 운명이 흐른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이 이야기를 두고두고 기억하는 이유는 두 가게의 상호명이 너무나 각자의 운명을 대변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혹시 그때 그 시절 시드니 차이나타운 근처에 있던 옷가게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여기서는 밝히지 않겠지만 각 가게가 선택했던 그 짧은 영어 단어만큼 각자의 운명을 단박에 정의하는 단어가 없다고 생각될 만큼 지금도 기가 막히다. 그 두 사장들은 가게 이름을 정할 때 그들의 운명을 알았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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