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학년 때 교생실습을 나갔다. 여자고등학교였다. 범생이 스타일도 있고 날라리 스타일도 있고 표 안 나게 나름대로 공부하고 나름대로 놀기도 하는 애들도 있고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애들도 많은, 평범한 학교였다. 십대의 끄트머리를 보내고 있던 그들은 무리지어 앉아, 이십대 초반의 한껏 긴장한 교생들을 꼬라보기도 하고 대놓고 외모나 패션 품평을 하기도 하고 어쭙잖게 아양을 떨어서 아이스크림같은 걸 얻어 먹거나 수업 시간에 교묘하게 사담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미성년 시절을 벗어나기를 손꼽아 바라고 있던 그들은 다수 집단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사회 속으로 내던져지기 전 불완전하고 긴장된 모습으로 예행연습을 하고 있던 교생들을 놀리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하고 선망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무관심했다. 어느 나이대나 10년을 주기로 끊었을 때 후반부에 속하게 되면 그 나이대가 권태로워 빨리 다음 단계로 가고 싶어하거나 아니면 애써 그냥 그대로 머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한테 배정된 담임반의 조종례에 들어갔는데 며칠이 지나는 동안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예쁘장하게 생겨서 눈에 띄었던 그애는 좀 지나서는 너무 무기력해 보여서 눈에 밟혔다. 누구와도 어떤 우정도 쌓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분위기. 일주일마다 한 줄씩 오른쪽으로 옮겨감으로써 짝이 바뀌도록 했었는데 창가 자리에 앉게 될 때면 창 밖만 응시하던 아이. 자주 엎드려 있어서 늘 피곤해 보이던 아이. 친한 친구가 없으니 농땡이를 부리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보충과 야자를 빼먹고 튄 애들이 감독선생님에게 대거 걸린 일이 있었다. 모두 12명이었고 조례 후 담임이 그 아이들을 교무실이 있는 중앙 현관으로 따라오게 했다. 12명에 그애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나는 교생실 창문을 통해서 담임이 그애들을 어떻게 체벌하는지 몰래 엿봤다. 곧 1교시가 시작될 시간이라 담임은 한 명 한 명한테 사유를 묻고 손바닥을 세 대씩 때린 뒤 (그땐 체벌이 존재했다) 한 명씩 교실로 돌려보냈다.
그 담임은 막무가내로 지랄맞은 선생님은 아니었고 엄함 속에서도 다정함을 다 감추지 못하는, 결혼한 지 얼마 안됐고 어린 자식을 키우고 있어 기본적인 자기 삶이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어서 학생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풀이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기 있던 아이들도 체벌을 받을지언정 수긍하고 공감하고 반성하는, 요상하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풍겼다. 담임은 유부남이었지만 웬만한 총각 선생님보다 인기가 많았다. 한 명씩 한 명씩 교실로 돌아가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 마지막이 된 그 우울한 아이는 끝내 자기 차례가 되자 울음을 터트렸다. 의아할 정도로 격렬한 울음이었다. 앞에 이미 11명의 아이가 손바닥을 기꺼이 맞고 교실로 돌아갔고 그 어느 누구도 아프다고 하거나 운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 아이의 그런 공포라고 할만한 반응에 담임은 적잖이 당황했다. 왜? 무슨 일 있니? 라는 나직한 담임의 질문에도 그 아이는 점점 더 발작적으로 울 뿐이었다. 1교시 시작종이 울렸다. 담임은 여전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만 울어라"라고 했다. 그만 울고 교실로 돌아가라고. 그러면서 나직하고 비밀스럽게 말했다. "교실에 돌아가서는 너도 손바닥 맞았다고 해라." 아마도 담임은 걱정됐겠지. 전교에서 떠들썩할 정도의 문제아는 없는 반이었지만 그래도 목소리 크고 여론 주도하는 아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우아라거나 품위라거나 이런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 전의 야생마같은 나이의 여고생. 갸날픈 외모에 비해 입이 걸고 말끝마다 욕설을 내뱉고 예닐곱 명씩 무리지어 다니는 아이들이 그 반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왜인지 너무 심하게 울던 그 아이는 손바닥을 맞지 않고 교실로 돌아가게 됐고 담임의 염려는 현실이 됐다. 누가 보고 말을 옮겼던 것인지 1교시가 끝나기도 전에 소문이 났고 그 아이는 '담임 앞에서 눈물바람해서 지혼자 안 맞은 애'가 됐고 4교시가 끝나기 전에 '7반 담임이 편애하는 애'가 돼 있었다. 그날 학교가 파하기 전에 다른 반 애들까지 와서 그애 자리 주변을 맴돌며 실수인 듯 실수 아닌 듯 그애의 책상이나 걸상을 발로 툭툭 차고 들으라는 듯이 "누가 국어 앞에서 질질 짰냐" 라는 둥의 시비를 걸었다. 그애는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짧은 교생 기간이었지만 내가 그애를 눈여겨본 것은. 우선은, 보충과 야자를 튄 12명의 아이들은 그애 한 명을 제외하곤 두 그룹으로 나뉘어 놀러갔다. 한 그룹은 그룹 중 한 아이가 주선한 성당 남사친과 그 친구들을 만나 단체미팅을 한 뒤 다같이 노래방에 갔다. 다른 한 그룹은 그 그룹 중 한 아이의 엄마가 하던 식당에 가서 다같이 밥을 먹은 뒤 아트박스에 가서 펜을 사고 영화를 보러 갔다. 그저 몸이 좀 안 좋았나 보다 생각했었지만 놀랍게도 혼난 그 날도 그애는 조용히 몰래 보충과 야자를 안 하고 도망갔다. 거의 울먹이는 얼굴로 발소리도 내지 않고 신속하게 학교를 빠져 나가는 그애를 봤다. 반 아이들 사이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번 걸렸을 뿐이지 자주 그랬다고.
그런 말도 돌았다. 쟤, 쟤네 아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고 너무 충격적이기도 해서 나는 그 소문을 외면해 버렸던 것 같다. 하긴, 외면하지 않았어도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자조도 든다. 뭔가 해결하지 못한 숙제같은 걸 안은 기분이었으나 정신없고 짧았던 교생 기간은 끝났고 대학교로 돌아와 나는 다시 일상을 살아갔다. 각자 교생을 다녀왔던 학교 이야기, 학생들 이야기, 선생님들 이야기로 이후 한동안 과 친구들과 떠들썩했는데 과 친구 중 하나가 친동생이 내가 들어갔던 담임반에 있었다는 말을 했다. 나는 호기심과 염려를 누르지 못하고 그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 외로워 보이던 아이의 안위를 물었다. 그렇게 해서 그 아이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외동이었고 엄마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암에 걸리셔서 때에 따라 경중의 차이는 있었으나 편찮으셔서 늘 누워 지내는 상태였고 아빠는 역 근처 국민은행 앞에서 구두닦이를 하신다고 했다.
아이 엄마의 병이 길어지면서 아이 아버지는 천인공노할 욕망을 아이한테 드러냈다고 한다. 아이의 가족은 친척이나 이웃과 교류가 없었으며 아버지의 직업 또한 누군가와 깊이있게 사귈 수 있고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친아버지에게 유린을 당했고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보충수업도 못 하고 일찍 집에 가서 마치 아내처럼 아버지의 수발을 들고 어머니를 보살펴야 했다고 한다. 그날 아침 담임의 체벌 앞에서 그 아이는 손바닥 맞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현실을 너무나 말하고 싶어서 온몸으로 울었던 건 아닐까. 그저 친구들이랑 노래방에 가느라고, 팬시점에 가느라고 보충과 야자를 땡땡이친 여느 다른 아이들이 가슴 사무치게 부러웠던 건 아닐까.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친아버지이기 때문에 자신도 수치스러워하고 숨겨야 했던 상황. 다행히 의아스러울 정도로 격하게 울던 그애를 눈여겨 보던 담임의 거듭된 관심에 결국 털어놓았고 사회 시스템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