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멈추지 않기 위해 치열했던 것을 나만 몰랐다.
사실 나는 퇴사 준비 중이었고, (누구나 그렇듯이...) 빌리언 달러 비즈니스를 꿈꾸고 있었다. 꽤 오랜 기간 준비해왔고, 이제 막 개발을 앞둔 시점이었다. 유니콘 기업도 만들고 싶고 억만장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영리법인이라니.
배고픈 비영리법인을 시작하게 되면 전혀 다른 꿈을 꾸게 될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특히, 도움을 받았을 때의 기쁨보다 그것을 잃었을 때의 슬픔이 크다는 측면에서, 비영리법인이라는 것은 한 번 시작하면 멈추지 말아야 했다. 인도에 학교를 여러 개 세운 친구로부터 '뺨을 맞아가며' 배운 매서운 진리였다. 멈추려면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그만큼 무거운 일이었다.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있는 사이에도 캠페인은 잘 돌아갔다. 결국 2차 캠페인을 시작한 지 약 3주 만에 전체 누적 모금액이 6만 불 (약 7천2백만 원)에 이르렀다. 배달 완료한 도시락이 1,200개를 넘었고, 도시락 하나당 평균 $12 정도 했기 때문에 아직 4,000개 정도의 도시락을 더 배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르익어 가는 분위기 속에 20명 남짓의 타이거 팀은 아주 조금씩이지만 지쳐가고 있었다. 파트타임으로 바쁜 일상을 쪼개 한 달 이상 집중력을 유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2차 캠페인 종료를 앞두고 가진 전체 회의에서, 3차 캠페인은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많이 아쉬웠지만 이해가 됐다. 그렇게 2차까지 함께 했던 타이거 팀 및 비영리법인과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동시에,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간도 가까워졌다.
이대로 멈추거나, 또 다른 비영리법인을 세워 독립하거나.
안개가 자욱한 산을 오른다고 생각해보자. 지금 디딜 한 발짝이 어느 산봉우리를 향한 것인지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안개가 끼었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볼 수가 없다. 다만 저쯤에 산봉우리가 있고, 대충 이쪽이 맞지 않을까 어림잡아 볼 뿐. 처음부터 산봉우리가 다 보이면 좋겠지만, 안개가 자욱하다.
비영리법인으로서의 독립이라는 한 발자국이 향한 산봉우리가 어떤 모습일지 대충이라도 짐작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거의 평생을 바라봐오던 산봉우리와 너무 달랐기 때문에, 그곳과 나 사이를 갈라놓은 안개가 더욱 짙게 느껴졌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부끄럽지만...
비영리법인의 CEO들은 얼마나 버는지 구글로 찾아봤다. 비영리법인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성공'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해보고 싶었다. 정말 초딩 수준의 사고방식이지만, 한 번쯤은 해볼 만한 검색 아닌가 난 그저 늦었을 뿐, 이라고 자위했다. 검색해보니 평균이 $105K (약 1억 2천만 원) 정도라고 나왔다. 억대 연봉이긴 하지만, 실리콘밸리에 대입하자면 갓 대학 졸업한 엔지니어 수준도 안 됐다—이들의 평균 연봉은 $118K (약 1억 4천만 원)이다. 그래, 아니다. 아예 제일 많이 버는 사람은 얼마나 버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사실 내가 만약 비영리법인을 운영한다면 이왕 하는 김에 아주 잘할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가장 많이 버는 사람은 Banner Health라는 곳의 Peter S. Fine Fache. 연봉이 $1.3M (약 15억 원), 보너스 포함 전체 연수입이 무려 $25M (약 300억 원)에 이르렀다.
그래 다행이다.
다행이라니!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영리법인의 부조리에 대해 질타하고 있었는데. 나의 알량한 욕심을 본인에게 들킨 순간이었다. 이렇게 돈을 많이 받으니 비영리법인이 그렇게 욕을 먹지,라고 바로 생각을 (어쩔 수 없이) 바꿨다. Banner Health나 Peter의 입장에서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 혼자 그렇게 나의 욕심을 숨기기 위해 남을 탓했다. 속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찾아냈지만 겉으로는 그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욕심과 이성의 아이러니가 이어졌다. Peter나 Banner Health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쨌든 결국 배고프게 살거나 아니면 욕을 먹거나 정말 이 두 가지의 선택지 밖에 없는 건가. 그저 단순한 흑백 논리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쯤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 사람의 전체 수입이 Banner Health 매출의 0.4%라는 것이다.
매출이라니. 비영리법인에 매출이 있어도 된다는 말인가.
조금 더 찾아보니, 비영리법인에게 있어 매출이란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작게는 자원 봉사자들 밥값이라도 지원하기 위해 스티커를 팔기도 하고, 크게는 아예 자회사를 만들어 몇 백억 원의 매출을 내고 있는 곳도 많았다.
Mozilla Foundation (Firefox 브라우저를 만드는 회사인데 알고 보니 비영리법인이었다)이 좋은 예인데, Mozilla Corporation이라는 영리법인을 자회사로 만들어 연간 $450M (약 5천4백억 원)의 매출을 내고 있었다. B Lab이란 곳도 있었다. 사회적 기여도가 큰 영리법인에게 'Certified B Corporation'이라는 증명서를 내어 주고 돈을 받는 모델이다. 한 마디로, 돈 받고 '잘했어요'라고 칭찬해 주는 거다. 회사 규모에 따라 일 년에 천 불에서 오만 불 이상까지 다양한 금액을 받는데, Danon이나 Patagonia와 같은 익숙한 기업들도 B Corp들이다. '스타텁의 하버드'라고 불리는 YCombinator에서도 소수지만 비영리법인을 키운다. 그리고 지원 안내에는 "서비스 비용을 받아 운영비를 충당하는 비영리법인을 선호한다"라고 분명하게 쓰여있다.
(Source: B Corporation)
리스트는 찾으면 찾을수록 끝이 없었다. 비영리법인이 자회사를 두고 치열하게 매출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은 나만 모르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렇다. 모두들 이미 시작했기 때문에 멈추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고민하고 좋은 서비스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그리고 그것에 걸맞은 비용을 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사용자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듣고, 서비스를 가다듬고, 다른 곳에게서 배우기도 하고, 때로는 경쟁도 하는 모습에서 스타텁의 단내가 느껴졌다. 그렇다. 비영리법인도 비즈니스였다.
수입 킹 Peter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분의 수입은 Banner Health라는 비영리법인 매출의 0.4%였다. 영리법인 CEO의 평균 수입이 회사 매출의 4.6%인 것에 비하면 상당히 겸손한 편이다. 미국 비영리법인 경영진의 평균 수입은 매출의 1.0% - 1.4%라고 하니 얼추 맞았다. 조직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해 더욱 큰 임팩트를 내게 되면 경영진에게는 그에 맞는 대가가 돌아오는 것은 매 한 가지였던 것이다. 결국 비영리법인을 통한 임팩트를 키우면 될 일이었다.
물론 퍼센트 하나만으로 따질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적게 받아도 많이 받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비영리법인 운영을 꼭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속삭임이 되어 돌아왔다. 억만장자까지는 아니지만, 뭐 어차피 지금 보다는 훨씬 나은 것 아닌가. 세속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뭐 어차피 다 속세에서 하는 일 아닌가.
산봉우리가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내가 항상 바라봐오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용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아가는 칼 같은 프로페셔널의 세계. 사회적 기업도 돈이 최우선이어야 한다고 주장은 해왔지만, 비영리법인의 치열한 삶도 비슷했다. 다만 내가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내가 만약 비영리법인을 세우게 된다면 그것은 어떤 치열한 삶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어떤 매출 구조를 만들고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 구체적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조사한 것을 토대로 모든 것을 상상해서 적어 보기로 했다. 그것이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