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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chu Pie Jul 20. 2020

비영리법인계의 유니콘

일단, 사업계획상으로.

비즈니스맨을 꿈꾸던 내가 비영리법인을 운영한다는 그림이 그려지질 않았다.  어떤 미래가 그려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 위해, 부끄럽지만 비영리법인을 운영하는 CEO는 얼마 버는지 알아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비영리법인이 자회사를 두는 등의 방식으로 수억 심지어는 수 천억 원의 매출을 이미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모두들 이미 시작했기 때문에 멈추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좋은 서비스를 개발하고, 그리고 그에 걸맞은 비용을 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사용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서비스를 가다듬고, 다른 곳에게서 배우기도 하고, 때로는 경쟁도 하는 모습에서 스타텁의 단내가 느껴졌다.  그렇다.  비영리법인도 비즈니스였다.


결국 비영리법인도 사용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아가는 칼 같은 프로페셔널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다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반가웠다.   


의외로 무궁무진한 수입 구조

만약 비영리법인을 세우게 된다면 그것은 어떤 매출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그려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조사한 것을 토대로 모든 것을 상상해서 적어보기로 했다.  그것이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우선, 레스토랑.  


우리와 함께 커뮤니티를 돕는 일에 앞장서 주고, 그래서 도시락 단가를 많이 깎아 주기도 하는 최고의 파트너들이다.  그러나 비즈니스 측면에서 봤을 때, 우리 캠페인의 최고 수혜자이기도 했다.  예측 가능하고 엄청나게 큰 주문을 받는 것과 다를 바 없었고, 그로 인해 주문 당 수익률을 최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일반적인 로컬 레스토랑은 주문 당 약 5% 정도 남긴다고 한다.  10불짜리 스파게티를 주문했다고 하면, 인건비 등등 다 빼고 50센트 남는 것이다.  (Source: Paul Shufelt)  마진이 이렇게 낮은 이유 중에 하나가 주문 사이즈가 작기 때문인데, Uber Eats—미국의 배민이다. 한국에서는 경쟁에 밀려 작년에 철수했다—에 다녔던 직원에게 물어보니, 미국에서는 보통 주문 당 평균 1.5인 분이 배달된다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 주문은 건 당 50-100인 분이고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레스토랑 입장에서는 마진의 폭이 크게 넓어지는 것이다.  친한 셰프 형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시락 배달 건마다 수수료를 낼 의향이 있는지 여쭸더니, 5% - 10% 까지는 낼 의향이 있다고 했다.  Uber Eats와 같은 음식 배달 서비스는 레스토랑으로부터 25% - 35% 정도의 수수료를 떼어가고 주문 사이즈도 작은 반면, 우리의 경우 주문의 크기는 50배 가까이 크면서도 수수료는 최대 1/7 수준이니, 레스토랑 입장에서 좋은 딜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레스토랑 수수료가 첫 수입 모델이 되었다.  배달 건마다 수수료를 받는다면, 일단 '일 한 만큼' 수입이 linear 하게 증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한 시작이었다.  이런 식으로, 비영리법인의 비즈니스 구조를 조금씩 더 그려봤다.


그 외에도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가 있었다.  B Corp처럼 네트워크가 커지면 돈을 받고 스폰서들을 모을 수도 있고, 기부자들에게 운영비 명목으로 팁을 걷는 방법도 있었다—100불 기부에 5% 팁을 더한다면 총 105불을 받아 5불은 운영비로 사용하는 것으로, 크라우드 기부 사이트인 GoFundMe가 사용하는 방식이다.  또한, 우리가 가진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영리 사업을 직접 진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케이터링 시장 같은 경우, 작고 영세한 공급자가 엄청나게 많은 동시에 소비자는 여러 공급자를 써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해 그 둘을 모아주는 훌륭한 플랫폼의 필요성이 큰 시장이다.  이 시장만 해도 2018년 기준 $130B (약 150조 원)이 넘고 매년 6%씩 성장한다.  비영리법인이 잘 성장하게 된다면, 로컬 레스토랑 네트워크 등을 활용해 케이터링 플랫폼 비즈니스를 자회사로 운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매출 구조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많은 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업계획서에 말 그대로 '그려 본' 비즈니스 모델


비영리법인계의 유니콘

비즈니스 구조를 그려보고 나니, 그 중장기적 정체성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어 졌다.  


사실, 로컬 레스토랑에 기부금을 전달하고 그 레스토랑이 음식을 만들어 병원이나 노인에게 전달하는 모델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처음 영감을 준 frontlinefoods.org를 비롯해 Facebook 및 샌프란시스코 시정부까지 모두 생각하고 있었고, 메이저리그 야구팀인 Pittsburgh Pirates가 피자 400판을 병원에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캠페인이 일회성이거나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사실 이 수작업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큰 부분을 차지한다.  병원이나 노인 복지 회관과 필요한 음식에 대해 조율하고, 로컬 식당을 찾아 가격을 맞추고, 계약서를 쓰고, 배달 일정을 잡고, 배달이 잘 되는지 확인하고, 송금까지 하는!  이 일련의 과정을 매번 직접 전화 또는 이메일을 통해 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만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난 비영리법인인 만큼, 그 모든 수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그 플랫폼을 우리도 사용하고, 동시에 이미 이런 일을 진행하고 있는 다른 비영리법인, 정부, 그리고 기업 등에 제공하면 될 일이었다.  그들이 가진 레스토랑 및 병원, 노인 센터 네트워크를 자동으로 이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기술을 잘 활용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레스토랑 수준의 맛있는 음식을 더욱 빠르게 제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굶주림의 문제 역시, COVID-19이 끝나도 줄어들지 않을 큰 일이었다.  COVID-19으로 인해 부각됐을 뿐이다.  전 세계에 이미 약 8억 명의 굶주린 사람들이 있고, 놀랍게도 미국에만도 음식이 필요한 사람이 약 4천만 명이 있었다.  그중에 아이들이 약 천 5백만 명, 노인이 8백만 명, 그리고 산불이나 홍수 등의 재난이 터졌을 때 활약하는 First Responder (소방관, 의료진 등)들이 약 3백만 명이었다.  이들의 1%에게 하루에 한 끼만 제공해도 일 년에 $2.2B (약 2조 6천억 원)이 필요했다.  엄청난 금액이지만 미국 적십자사가 일 년에 약 $2.8B (약 3조 3천억 원)을 운용하니, 그렇게 허황된 금액도 아니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1%만 책임져도 가히 비영리법인계의 유니콘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됐다.


요약하자면;

1) 풀어야 할 문제의 스케일이 크고,

2) 자동화 기술을 이용해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꽤 그럴듯한, 유니콘스러운 중장기적 모델이 나왔다.


사업계획서의 일부분. 5년 내 $70M (약 840억 원)에 이르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뜬구름 잡는 소리'의 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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