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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몰랐던 것 두 가지

Recharge 2일 차: 에펠탑 > 개선문 > 샹젤리제

by Chuchu Pie

2일 차 하이라이트

어제 오후에 도착했기 때문에 오늘이 첫 Full Day in Paris였습니다. 그리고 17년 전 마지막으로 파리를 방문했을 때와는 달랐던 아니면 몰랐던 두 가지를 느꼈습니다:

1)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보는' 즐거움보다는 '먹는' 즐거움이 커졌다,
2) 그래서 말인데, 홍합탕 (Moules et Frites)을 먹을 때는 감자튀김 > 홍합 > 화이트 와인 순으로 먹어야 맛있다.


시차 적응이 잘 된 건지 그 반대인지는 몰라도 일곱 시쯤 벌떡 일어났습니다. 상쾌한 파리에서의 첫 아침!이라 운동이 하고 싶어져, 둘째 (약 30킬로)를 어깨에 목마 태우고 스쿼트 100개, 윗몸일으키기 등 코어 150개, 팔 굽혀 펴기 약 120개로 아침을 시작했죠. (다섯 세트로 나눠서)


하지만 그래서인가. 오후 한 시쯤부터 다리가 풀리기 시작하더니, 극약처방이라고 생각한 밀맥주 한 잔이 그냥 극약이 되어, 약 세 시쯤부터는 시차 적응에 완전히 실패한 좀비의 몰골을 하고 다녔습니다. 아내가 샹젤리제 거리의 화려함에 점점 에너지를 찾아갔다면, 저는 깡충깡충 뛰어 댕기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점점 힘을 잃어 갔습니다.


결국 마지막으로 구경하러 들린 Louis Vuitton 매장에서는 한쪽 의자에 앉아 둘째를 무릎에 앉혀 놓고 둘이 신나게 상모를 돌렸습니다. 딱 한눈에 보기에도 구매의욕이 0인 손님 둘이 가게 한쪽 켠에서 신나게 졸고 있는 겁니다. 매장 내 에스컬레이터 옆에 서서 안내하는 한 아리따운 금발의 여직원과 여러 번 눈이 마주쳤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눈길 한 번 줬다 미소 지었다 고개 한 번 뒤로 꺾었다를 반복했습니다.


1) 먹는 즐거움

제가 힘을 다시 찾은 건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하루 종일 에펠탑 꼭대기, 개선문, 샹젤리제 구석구석 돌아다녔지만 그 날의 클라이맥스는 사실 동네 레스토랑이 될 줄이야! 갑자기 17년 전에 프랑스 현지인 친구가 사 줬던 홍합탕이 먹고 싶어, 그냥 "Paris Mussels"라고 검색해서 찾아간 동네 레스토랑 Le Suffren. 그러나 이게 개인적으로는 오늘 하루 최고의 코스였습니다. 전채로 시킨 French Onion Soup (양파와 치즈가 가득한 수프), Melon with Parma Ham (멜론에 햄을 쌈 싸 먹는), 그리고 Mushroom Targeliatelle (파스타 같은 면)와 Moules et Frites (홍합탕) 모두 그릇까지 흡입하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어요.


맛있게 먹다 보니 에펠탑 따위 기억도 안 났습니다.


알고 보니, 처형께서 여행 전에 아내에게 신신당부하셨다고 합니다. 먹는 거 못 먹게 하지 말라고. 남자들은 나이가 들 수록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에 큰 행복을 느낀다고. 사실, 꼭 남자만의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처형의 통찰력에 감사할 뿐입니다. 먹는 것에는 특별한 관심이 1도 없었던 저였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맛있는 음식의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2) 감자튀김부터

그래서 말인데 홍합탕 이야기를 꼭 해야겠습니다. 홍합탕에 감자튀김이 같이 나오길래 그냥 메뉴가 너무 심심해서 끼워 넣은 건가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거들떠도 안 보고 당연히 홍합부터 폭풍 흡입. 그렇게 반 냄비 정도 정신없이 먹고 나서야 좀 여유가 생겨, 옆에 덩그러니 놓인 감자튀김에 시선이 갔습니다. 큰 기대 없이 몇 개 집어 먹고 바로 다시 홍합으로 고개를 파묻었는데, 아니 이럴 수가, 홍합이 그새 돌변했습니다. 거짓말 많이 보태서, 냄비 아래쪽 홍합에는 꿀을 발라놨나 싶을 정도로 달라졌습니다. (쓰고 보니 참 표현이 올드하네요)


감자튀김의 먹먹한 감자 향이 입안에서 홍합의 구수함을 몇 배로 증가시켰습니다. 홍합의 포텐이 불꽃놀이처럼 퐝퐝하고 터졌어요. 그렇게 혀를 입 안에서 슬로비디오로 한 번 돌리니, 이번엔 그 홍합이 머금었던 지중해 짭조름한 향에 감자튀김의 포텐이 터졌습니다. 맥도널드 풍의 감자튀김이 입 안에서 미슐랭 3 스타급 les frites로 둔갑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리고 그 입속 '가면무도회'는 마지막으로 쏟아져 들어온 화이트 와인을 기점으로 광란의 '나이트클럽'으로 돌변합니다. 모두가 가면을 집어던지고 상모 돌리듯 고개를 흔들며 춤을 추고 천장에서는 화이트 와인을 뿌려대는.


이대로 두다간 끝이 안 날 것 같아, 여기서 그만둬야겠습니다.


하여간,


홍합탕을 먹을 때는 감자튀김 > 홍합 > 화이트 와인의 순으로 먹어야 맛있습니다.




2일 차 여행 일지

브런치는 호텔 앞의 작은 카페인 Zia에서 했습니다. 불어를 아주 잘하는 아리따운 호주 여성이 운영하는 조그만 카페입니다. 리뷰가 좋아서 갔는데, 리뷰보다 더 좋았습니다. 라테와 아보카도 토스트, 그리고 Dutch Baby Pancake라는 이 집 signature 음식이 일품입니다.


에펠탑은 기대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대로였습니다. 꼭대기까지 줄을 세 번 서는데, 에펠탑 입구 (동쪽 입구가 좀 더 한산합니다), 에펠탑 오르기 전, 그리고 정상에 오르는 엘리베이터 이렇게 세 번입니다. 이 중 에펠탑 오르기 전 줄은 미리 예약한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선 반면, 현장 구매 줄은 오히려 더 짧아 허탈했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2층부터 계단을 통할 수 있습니다. 130년 전에 한 땀 한 땀 끼워 놓은 볼트와 너트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어 아무래도 엘리베이터로 내려오는 것보다는 더 나았습니다. 내려오는 중간중간에 에펠탑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에펠탑이 원래는 약 20년 정도만 쓰고 해체할 계획으로 만들어진 건데 130년째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에펠탑을 나와 (줄 서는 것까지 총 두 시간 반이나 썼다는 게 좀 아까웠습니다) 개선문으로 향했습니다. 까르네 t+ 30장을 샀는데, 파리는 지하철도 좋지만 버스가 아무래도 편리하고 재미있습니다. 개선문 앞 샹젤리제 거리를 가로지르는 신호등 중간에 빠져나와 아래와 같이 사진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개선문 정 중앙에서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많아 종종 사람들이 줄을 서는데, 물론 저처럼 사진이 젬병이면 그렇고 그런 spot이 될 뿐이니, 파이팅.


샹젤리제 거리로 들어설 때쯤 좀비 모드가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걷다가 지쳐 Flora Danica라는 한 덴마크 음식점에 들렀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뭘 먹었는지 사진을 봐야 기억할 정도입니다. 극약이 되어버린 밀맥주도 보입니다.


바로 그 Le Suffren의 음식들입니다. 다 맛있었지만, 특히 홍합탕과 감자는 입 안에서 광란의 파티를 열었죠. 꼭! 감자튀김 > 홍합 > 화이트 와인 순으로 먹어야 합니다!


지친 하루가 먹는 즐거움으로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걸어 돌아가는 길에 밤의 에펠탑이 보이고, 그런 것에는 전혀 상관없는 아이들이 장난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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