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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벵겐: 기차 타다 숨이 멎겠다

Recharge 5일 차: 프랑스 파리 > 스위스 벵겐

by Chuchu Pie

5일 차 하이라이트

아내가 우주여행을 떠났는데 산소가 떨어지는 바람에 죽을 뻔한 것을 살려 주는 꿈을 꾸다 보니 늦잠을 자버렸다. (늦잠을 꿈속에 나온 아내 탓으로 돌리는 나란 남자) 아침 10시 23분 기차라 여유 있다고 생각한 게 실수였다. 거만하게 알람마저 생략하고 잠들어버린 것이다!


처음 써 보는 유레일 패스를 들고 생소한 프랑스 파리의 기차역에서 헤맬 약 30분을 계산에 넣으면, 적어도 9시 50분 정도까지는 역에 도착해 있어야 했다. 구글을 보니 호텔에서 자동차로 22분 거리. 즉 9시 28분에 차에 타면 되는 거다,


...라고 생각했을 때가 이미 9시 30분이었다. 게다가 난 아직도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


09:30 am (출발시각 53분 전): 일단 앉은 채로 우버를 잡으려니, 부를 수 있는 Van (짐이 많아 6인승 이상을 타야 한다고 생각했다)이 현재 없다고 나온다.
09:32 am (출발시각 51분 전): 어쩔 수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란 생각으로 Uber X를 부르니 도착 예정 시각이 이미 기차 출발 시각 후로 나온다.
09:35 am (출발시각 48분 전): 얼른 취소하고 프랑스 자체 Uber 격인 Kapten을 깔았지만 이것은 카드 인증 과정에서 이미 막혀버리고 만다.
09:40 am (출발시각 43분 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이번엔 Uber Berline (미국으로 치면 Uber Black이다)를 부르니 벤츠 E-Class 어쩌고 저쩌고, 가 잡힌다. 가격은 약 26 유로로 Uber X보다 약 5 유로 비쌌다. 선택권이 없었다. 트렁크가 커서 우리 가족 4명의 어마어마한 짐을 실을 수 있기만을 바랬다.
09:50 am (출발시각 33분 전): 드디어 우버에 탔다. 다행히도 짐이 다 들어간다. 도착 예정 시각을 보니 10:15 am이라고 나온다. 차에 앉아 열심히 유레일 패스 사용법, 파리 역 내 지도 (Paris Gare De Lyon: 파리와 리옹을 연결하는 철로의 파리 쪽 역이다. 생각보다 많이 넓다.)를 익혔다.
10:12 am (출발시각 11분 전): 생각보다 차가 덜 막혀 파리 역에 예정시각보다 3분 일찍 도착했다. 그런데 이건 GPS 상으로 도착한 것일 뿐, 아직도 우리는 역 근처의 교통체증에 막혀 차 안에 갇혀 있었다.
10:15 am (출발시각 8분 전): 도저히 안 되겠어서 차에서 내려 뛰기로 결정했다. 열차 번호와 좌석, 출발 시각을 일러준 뒤 아이들과 와이프를 같이 먼저 보내고, 한 손에 커다란 트렁크 한 개씩 잡고 나도 따라 뛴다.
10:22 am (출발시각 1분 전): 우여곡절 끝에 기차에 탔다. 뭔가 우워워워워하고 막 난리법석을 피우다 보니 기차에 올라와 있는 기분이었다.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짐칸에 물건을 옮겨놓으려는 순간, 기차가 우리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닫고 출발한다. 정말 숨이 멎을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목적지는 스위스의 벵겐 (Wengen). 교통의 중심지 인터라켄 (Interlaken)에서 융프라우요흐 (Jungfraujoch: Jungfrau 봉우리에 이르는 기차역 이름)까지 가는 길목에 있는 소도시인 라우터브루넨 (Lauterbrunnen)으로부터 약 10분 정도 떨어진 더 소도시. 자동차로는 갈 수 없는 청정지역이다. 지난 5월에 스위스에 다녀온 직장 동료가 알려준 곳으로, 아주 작지만 있을 것 (슈퍼마켓, 레스토랑 등)은 다 있는 균형 잡힌 도시다. 파리에서 벵겐까지 기차로 가려면 환승을 3번 해야 했었는데 (스위스 바젤, 인터라켄, 라우터브루넨) 모두 각각 5분, 7분, 10분 정도의 여유밖에 없었다. 큰 트렁크 양 손에 하나씩 들고 아이 둘 데리고 그리고 와이프와 함께, 오늘 하루 종일 프랑스 스위스 지역 역을 잘도 뛰어다녔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벵겐.


몇 걸음도 채 떼지 않았는데 힐링이 된다. 하루 종일 뛰어다녔던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도대체 이 도시는 같은 지구 상에 있는 사람 사는 곳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5일 차 여행 일지

스위스 바젤 (Basel)에서 인터라켄 (Interlaken)으로 향하는 기차로 갈아타고 나서부터는 여유가 생겼다.


인터라켄 동쪽 역 (Interlaken Ost)에서 라우터브루넨 (Lauterbrunnen)으로 갈아타고, 다시 벵겐 (Wengen) 행으로 갈아탄다. 라우터브루넨은 70개가 넘는 폭포로 유명하다. 수백 미터 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눈으로 좇다 보면, 나는 아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높아 아찔하다. 쏴아, 하고 떨어지는 폭포 소리가 물방울이 자유 낙하하며 질러대는 비명소리 같다.


라우터브루넨으로부터 벵겐까지는 오르막이다. 벵겐 자체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이다. 기차는 덜컹거리며 힘겹게 오르느라 숨이 차고, 승객들은 압도적인 경치에 숨이 멎는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 그냥 눌러앉아 살고 싶다.


그림 같은 마을이다. 같은 그림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약간 흐린 날씨에 간간히 촉촉하게 비가 내려 오히려 더 고즈넉했다.


저녁 식사는 (당연히) 퐁듀, 그리고 말고기 스테이크와 치즈 마카로니. 말고기 스테이크도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지만, 퐁듀는 말을 이을 수 없을 정도였다. 동네가 조용한 게 다들 퐁듀 먹고 벙어리가 되어서...


저녁 식사 후 동네 구경. 한 바퀴 다 돌아도 20-30분 정도 걸릴 작은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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