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까지 일기예보를 예의 주시하며 여러 번 날짜를 변경하다 결국 오늘로 확정한 패러글라이딩. 일기예보 상으로는 가장 맑은 날이 돼야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오히려 우리가 스위스에 도착한 이래 가장 흐린 날이 되었다. 원래 예약했던 어제는 날씨가 좋았는데. 일기예보는 산 날씨를 정확히 맞출 수 없다는 그들의 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비 오는 날에도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낙하산이 젖어 할 수 없다고 나온다. 탑승자도 비에 젖어 평소보다 무거워지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단다. 연이어 나온 다른 검색 결과에 따르면, 약 11,000명 중 한 명 꼴로 사망한다고 나온다. 아, "사망"이라니! 조심해야 할 일의 예상 범주를 크게 뛰어넘는 단어를 접하니 덜컥 겁이 났다. 아이들과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니, 조금 있으면 맑아질 테니 예정대로 진행한단다. 아니, 산 날씨는 알 수 없다고 할 때는 언제고. 신뢰도가 급 떨어졌다.
거금을 들여 예약한 거라 너무 쉽게 취소할 수도 없고, 날씨가 안 좋아 딱히 달리 할 것도 없어 일단 가보기로 했다. 도착했을 때도 날씨가 안 좋으면 환불해주겠지,라고 생각했다.
호텔을 나설 때의 모습이다. 안개가 자욱하다.
인터라켄 동쪽 역 (Interlaken Ost)에 도착해 기다려도 우리를 픽업해야 할 빨간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아, 비행 취소하고 환불하려나 보다' 하고 속으로 살짝 쾌재를 불렀다. 이 기쁜(?) 소식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미안, 좀 늦었어, 금방 도착할 거야" 이런다. 아, 굳이 안 와도 되는데,라고 아무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결국 주뼛주뼛 언제 환불해주려나 눈치만 보는 사이, 나도 모르게 빨간 버스에 올라 등록도 하고, 짐도 맡기고, 패러글라이딩 용 신발로 갈아 신고, 파일럿들과 인사도 하고, 서명도 마치고 말았다. 산 위에 올라가면 햇볕이 뜨거울 수 있으니 선글라스도 가져가세요, 란 말에 희망과 선글라스를 가슴 깊이 품었다. 아내와 아이들도 하나하나 다 챙겨줬다. "산 위는 햇볕이 쨍쨍하대. 선글라스를 꼭 껴야 해, "라고 신이 나서 말했다.
모든 절차를 마친 후, 조그만 승합차에 파일럿 및 다른 (한국) 손님들과 함께 끼여 앉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창밖을 보니 여전히 안개가 짙었다. 아니 고불고불 오를수록 더 짙어지는 것 같았다. 평소에도 겁이 많은 둘째가, 꼭 맞잡은 고사리 손에 힘을 준다. 손에 땀이 흥건하다. 무서운 건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위로가 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내가 아빠다.
"엄청 재밌을 거야."
더 길게 말하면 목소리가 떨린다는 사실을 들킬까 거기까지만 했다. 대신 고사리 손을 한 번 더 고쳐 잡았다.
승합차에서 내려 점프 지점까지 5분 정도 산을 타야 했다. 안개가 전설의 고향급으로 자욱했다. 같이 오르는 내 파트너 파일럿에게 이렇게 안개가 꼈는데도 비행이 가능한 건지 살짝 물어봤다. "으음 어려울 것 같아"란 말을 기대했지만, "괜찮다"는 말이 돌아왔다.
안개가 자욱했고, 둘째가 잔뜩 겁을 집어 먹었다.
산을 오르는 도중 낙하산을 등에 짊어진 또 다른 무리와 마주친다. 우리가 가려는 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이다. 우리 쪽 파일럿과 그쪽 파일럿이 독일어로 몇 마디 주고받더니 갈 길을 재촉한다. 상대팀 손님 몇 명이 그쪽 파일럿을 따라 우리를 지나친다. 눈길이 마주쳤는데 흡사 2차 대전 독일군 포로의 눈빛이다.
결국 점프할 곳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모여 있는 낯선 사람들로 인해 더 긴장이 된다. 아까 그 팀은 이 점프 지점이 너무 위험해서 다른 곳을 찾아가던 길이었던 건가. 모두들 안개가 자욱한 한쪽 계곡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다. 우리 쪽 파일럿이 미리 와 있던 파일럿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안개가 가득한 계곡
우리 가족은 이만됐으니 취소하겠다, 라는 말을 언제 꺼낼까 매 분 고민하는 사이, 문득 이 파일럿들은 이 동네 출신이라 하늘길을 세세하게 잘 알아서 서로 부딪히거나 산속으로 곤두박질 칠일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머리를 스친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1도 단위의 각도까지 조절하며 능숙하게 비행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 순간, 한 파일럿이 오른팔을 들어 크게 반원 비슷하게 그리며 다른 파일럿에게 외친다.
"아,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고?"
... 라니! "오른쪽 48.7도"도 아니고 그냥 대충 오른쪽이라고? 왼쪽만 아니면 괜찮다는 거냐. 속으로 마구 머리를 쥐어뜯는다. 아까 머리를 스쳤던 희망은 말 그대로 스쳤을 뿐이다.
나는 특히 둘째 딸 파트너 파일럿이 마음에 안 들었다. 가장 젊고 혼자 반바지 차림에 모자도 어설프게 썼다. 말투도 어눌하고 바보같이 헤헤, 하고 웃기만 하는 게 영 미덥잖다. 경험 많아 보이는 내 파일럿과 바꿔달라고 할까 고민하다, 이미 패러글라이딩 날짜도 막판에 바꿔 실패한 것을 생각했다. 융프라우와 쉴트호른 날짜도 어긋났다. 요즘 계속 막판에 바꾼 패가 안 맞아떨어진다. 게다가 이번에는 실패해선 안 된다. 누군가 한 명 떨어진다면 그건 내가 되어야 한다.
떨어진다, 는 말이 한 번 떠오르고 나니 좀처럼 그 끔찍한 상상을 떨쳐낼 수가 없다. 그런데 사실 비행 공포증이 있는 나에겐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다. 비행기에 탈 때마다 그래 왔듯이, 안전하게 착륙하는 상상을 한다. "재미있었어?" 하고 물으면 아내와 두 딸이 엄지를 치켜드는 거다. 상상으로 또 다른 상상을 밀어낸다.
약 30분을 기다렸을까, 아내의 파트너 파일럿이 다가와 다음 스케줄 급한 것이 있는지 물어본다. 전혀 급한 일이 없었지만, 있다고 하면 환불해줄까 싶어 다급하게 대답한다.
"응, 우리 루체른에 가야 해."
"몇 시에?"
"아, 그건... 모르지..."
로컬 기차이기 때문에 사실 정해진 출발 시각은 없다. 둘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 어색함을 연결 고리 삼아 원래 가장 궁금한 걸 물어본다.
"그런데, 이렇게 안갯속에 비행하는 게 안전한 거야?"
"그럼, 안전하지 않으면 우리가 안 나가지."
아, 생각해보니 그렇다. 비행은 같이 하는 것. 이 사람들이 그깟 몇 푼 벌겠다고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목숨을 걸 리가 없다. 아, 그렇지 그렇지.
그 순간 첫 팀이 출발한다. 다다다다, 하고 달리다가 급경사 언덕 아래로 사라지는가 싶더니 위태롭게 떠오른다. 그리고 안갯속으로 사라진다. 아니, 어디가 어딘 줄 알고 저렇게 날아간단 말인가. 게다가 "오른쪽"으로 가는 것 같지도 않은데.
하지만 안갯속으로의 전력질주는 계속된다. 불과 몇 초의 간격을 두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하나둘씩 다다다다, 하고 뛴다. 그리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하나같이 위태롭게 떠올라 안갯속으로 사라진다.
그중에 한 팀을 시선으로 끝까지 좇다 보니, 안개가 희미하게 걷혀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신기했다. 다시 시선을 넓혀보니 안개가 꽤 걷혀 저 멀리 우리가 착륙할 인터라켄 마을이 보였다. 감탄과 안도가 복잡하게 섞인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안개가 걷히니 인터라켄이 보인다.
라파엘 (둘째 딸의 미덥지 못한 파트너 파일럿)이 나타나, 이제 곧 우리 차례라며 하이파이브를 한다. 장비를 차려입고 헬멧에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나니 아까와는 다르게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라파엘 뒤로 이미 수십 개의 낙하산이 하늘을 날고 있다.
그렇게 얼마 안 있어 둘째 딸이 다다다다, 하고 출발하고 아내가 달리고 첫째 딸이 날아올랐다. 우리 말고 다른 팀도 모두 날아오르고, 그렇게 북적대던 이륙 지점에 결국 나와 나의 파일럿만 남았다. 왜 내가 마지막이어야 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마지막이었다.
"뒷바람이 있어 잠시 기다려야 해."
그렇게 잠시 약 1분 정도 대기했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파일럿은 바람을 읽느라 바빴고, 나는 앞선 세 여인을 눈으로 좇느라 바빴다.
"자아, 출발!"
소리가 들리자마자 전속력으로 뛰었다. 머릿속에는 안전하게 착륙해서 엄지를 높이 치켜들고 기다리고 있을 세 사람을 만나는 장면만 가득했다.
8일 차 여행 일지
막상 타보고 나니 좋아한다. 근 2주 간의 유럽 여행 중에 가장 재미있었다고 한다.
첫째와 루카스
둘째와 라파엘
그렇게 상상해댔던 안전 착륙 후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루체른행 기차에 오른 모습. 이 사진 찍고 약 10분 후, 모든 가족이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다.
루체른에서 가장 유명한 사자상. 벨기에의 오줌싸개 동상에 이어 실제로 보면 가장 실망스러운 구조물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무척 인상 깊었다. 실제로 돌을 깎아 19세기에 완성한 작품으로,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당시 부패한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를 끝까지 지키다 전멸한 스위스 근위대를 기리는 조각이다.
성난 군중에 밀려 프랑스 근위대까지 도망간 상황에서, 루이 16세에게 고용된 스위스 근위대가 끝까지 목숨까지 버리며 지킨 것은 스위스 용병으로서의 신의였다고 한다. 당시 스위스인들은 숙박업 또는 용병업 아니면 먹고살 길이 없었는데, 이를 잘 아는 프랑스 군중들이 어차피 피차일반 힘든 처지를 이해해 항복을 권유했다고 한다. 다만 용병으로서 신의를 잃으면 후세가 먹고살 길이 막막해질 것을 두려워한 스위스 용병들은 항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서로 싸우게 되면 양쪽 모두 적지 않은 목숨을 희생해야 될 판. 가족과 후세가 걱정인 한쪽과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다른 한쪽이 선과 악으로 나누기 힘든 처절한 싸움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결국 스위스 용병은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전사했다고 한다. (내용 출처: 나무 위키)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마크 트웨인이 세계에서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극찬한 이유가 느껴진다.
(마지막 이미지 출처: 나무 위키 - 윗 사진과 비교하면 그 거대한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리뷰가 좋아 찾아간 파노라마 박물관. 사자상을 보고 역 쪽으로 걸어오는 길에 있다. 설명을 위한 아이패드도 동이 나고, 직접 가이드를 해주겠다던 직원은 중간에 사라져 버렸다. 우리끼리 돌아봤지만,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감탄해(줘)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애매했다. 아내의 주장에 따르면, 스위스에는 밖에서 볼 것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박물관 같은 시설은 발전할 수 없다고 한다. 대번에 동의하진 않았지만 꽤 설득력이 있었다.
하품이 쩍 하고 절로 나온다. 아이들의 반응은 솔직하다.
아이스크림 (젤라토)을 먹을 때는 다시 에너지 철철. 그건 물론 나도 마찬가지.
루체른 시내와 유명한 Chapel Bridge (Kapellbrücke).
저녁은 퐁듀의 구이판, 라클렛 (Raclette). 원래는 치즈를 불에 직접 구워 벗겨 먹는 건데, 이런 방법도 있었다. 커다란 치즈를 집에 두고 먹는 사람이 줄어들어 나온 현대판 개량형이라고 한다.